박지리의 <합★체>(사계절 펴냄)는 <내 귀는 짝짝이>(히도 반 헤네흐텐 글·그림, 웅진주니어 펴냄)와 <얼굴 빨개지는 아이>(장 자끄 상뻬 글·그림, 별천지 펴냄)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깊이 앓아본 적 있는 '신체 콤플렉스'의 고민을 익살과 재치, 상식을 뒤엎는 기발함으로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책을 읽는 동안 무거운 머리를 내려놓고 작가의 손끝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쇼쟁이 난쟁이 아버지의 키 작은 일란성 쌍둥이 아들 '합'과 '체'가 그들의 적들(키가 작다 하여 '난쟁이'니 '둘을 더해야 일인분'이니 하며 놀려대는 사람들)을 상대로 펼치는 열혈 코믹 투쟁사를 함께 즐기며 그냥 신나게 킥킥거리기만 해도 된다. 그만큼 가볍고 재밌다.
그러나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면 한 번 더 읽어도 좋다. 그때는 맨 앞장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작가가 던지고 있는 질문을 뚫어져라 쳐다볼 필요가 있다.
'오래 전, 한 난쟁이 아버지가 하늘로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그 공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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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체>(박지리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
1970~80년대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울린 한 난쟁이가 있었다. 달동네 낙원구 행복동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던 때, 남편을 제 몸처럼 생각하는 착한 부인과 '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대들려 했다가 바로 공장에서 쫓겨나야만 했던 용감한 두 아들과 아빠와 엄마, 두 오빠도 지켜내지 못한 자기네 집 재개발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알몸으로 적지에 뛰어든 가슴 아픈 딸을 지상에 남겨둔 채 달나라를 가겠다며 쇠공처럼 몸을 날려 굴뚝에서 떨어져 죽은 난쟁이. 그는 키 큰 사람들에게 옆구리를 걷어차이고 온몸을 짓밟힘 당하면서도 수도를 고치고 펌프를 설치하고 칼을 갈고 고층 건물 유리를 닦으며 가족들과 오순도순하게 살아갈 날을 꿈꾸었지만 끝내, 사랑하는 가족들을 슬프디 슬프게 남겨둔 채 그렇게 무참히 떨어져 죽고 만 것이다.
이후 한동안 아무도 난쟁이나 그가 하늘로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우리의 불쌍한 십대 청소년 아이들은 입시를 위해 적어도 한두 번씩은 '난쏘공'을 읽어야 했고 몇 번이고 "1970년대의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의 근거지가 철거 위기에 놓인 도시 빈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현실 참여성이 짙은 조세희의 소설은 무엇인가?" 내지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난장이'의 의미는?", "'작은 공'의 의미는?"등과 같은 문제들을 풀어대야 했지만, 그게 어떻게 진정한 관심일 수 있겠는가. 그건 문제를 내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뜨거웠던 1970~80년대 학창 시절을 돌이키며 이따금 '난쏘공'을 들먹이는 사람들이라 해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을 터.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젊은 작가가 뜻밖의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지 않는가! 어디 물음뿐인가. 수없이 고쳐 쓰고 또 고쳐 쓸 만큼 문제의 바닥까지 몇 번씩을 왔다갔다 했을 만큼 생각도 깊고 아픔과 한숨도 많았으련만, 정작 그 답은 너무도 경쾌하고 유쾌하고 통쾌하게 합, 체, 합, 체, 합체, 합★체라니! 합체할 때마다 괴력을 발휘하는 변신 로봇처럼 그렇게 통쾌하게 작가 박지리는 우리에게 '합체'라는 답을 내놓고 있다!
근래 10여년 새 눈에 띄게 슬픈 풍경 하나. 유아도 종종걸음, 십대 아이들도 종종걸음, 이십대 청년들도 종종걸음,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 칠십대도 종종걸음. 하루 종일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헐레벌떡 앞만 보며 뛰고 있는 무수한 사람과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들은 행여 옆 사람이 손이라도 내밀세라 뒷사람이 등이라도 붙잡을세라 몸을 바짝 움츠린 채 혼자서 부지런히 앞만 보며 헐떡댄다. 이때 우리 모두는 쇼쟁이 난쟁이 아버지의 일란성 쌍둥이 아들 '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난쟁이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던가, 우리의 십대와 이십대에게 '88만 원 세대'라는 딱지가 붙게 된 때로부터였던가? 우리의 젊은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깨가 움츠러들고 목이 쑥 들어가고 팔놀림도 둔해지더니 모두 난쟁이 형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 역시 같이 움츠러드는 것 또한 불가항력일 터. 이제 70~80년대 난장이로 상징되었던 '도시빈민'은 멀쩡한 도심 한가운데에도 우리 집 널찍한 대문 안에도 바글거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각개전투하며 '나만은 결코 난쟁이가 될 리 없어!'라고 믿고 싶어 하며 헐레벌떡 숨만 할딱거린다.
우석훈과 박권일 두 경제학자는 '연대'를 얘기했더랬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살 길은 연대밖에 없느니라, 연대하여 바리게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 그러나 이미 옛말이 되고 금기가 되어가는 '연대'라는 이 말이 아직도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젊은 작가는 이 지점을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연대가 아닌 합체를, 무거운 쇠공이 아닌 딱 하늘로 쏘아 올리기 좋은 가볍고 탄력적인 공을 선택했으리라. 가네시로 가즈키(<GO>, <레벌루션>의 작가)와 박민규만큼이나 참신하고 슬기로운 작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했던가?
처음 읽는 동안에는 너무 가볍고 어수룩해 이런 작품에게 '사계절문학상 대상'은 좀 과분한 것 아닐까? 라는 반문이 살짝 일어나기도 했던 작품. 한 아이의 지적처럼 "첫 장을 펴니 농구에서 지는 장면이 나와 마지막 장을 봤더니 역시 농구에서 이겨 식상했어요"라는 평을 들을 만큼 단조로운 구성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말, 뒷맛을 떨떠름하게 만드는 상투적인 에필로그 등, 마음에 꽉꽉 들어찰 만큼 완벽한 작품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한 번 읽고 두 번을 읽으며, 작가가 던진 예사롭지 않은 질문과 그 무거운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져 결국 자신만의 가볍고 경쾌한 방식으로 답을 풀어나가는 것에 그만 눈물이 날 만큼 감동을 하고 말았다.
더구나 이 작품은, 여기저기서 튕겨 나오는 적들에 맞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합'과 '체'의 박진감 넘치는 열혈 투쟁과 '키 커지고 싶어 안달이 난' 체에게 '키 커지는 비기'를 가르쳐 준다면서 합과 함께 33일간을 계룡산 동굴 속에 숨어 들어가 "합체, 합체" 를 목청껏 외치며 수련을 쌓으라고 꼬드긴 계도사의 황당무계한 코믹 행동과 그 사이사이로 흘러나오는 예지에 넘치는 번득이는 말들이 묘한 흡인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꽉 움켜잡고 놓아주질 않아, 읽는 내내 참 재미가 있다.
신체 콤플렉스로 고민을 해본 적이 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사람, 자신이 어쩐지 자꾸만 쪼그라드는 것 같은 사람, 때때로 어디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 두리번거려지는 사람, 어쩌다 한번은 게임이나 TV 시청에서 물러나 앉고 싶은 사람, 여러 일들에서 실패의 경험이 있거나 앞으로도 언젠가 실패의 경험을 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그리고 한번 읽는 것으로 양이 차지 않거들랑 다시 또 한 번 천천히 정독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