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이주 여성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추석을 쇠고 이주 여성의 집에 가 보니, 연휴 사이에 초급반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
"어휴, 속 터져, 속 터져.", "아무 날도 아니고 추석인데 왜 이러니?", "아이고, 답답해." 같은 생활 한국어를 가슴을 두드리거나 손가락질하는 몸동작까지 곁들여 완벽하게들 익혀 오셨다. 초급반이다 보니 평소 한글을 읽을 때는 모어 억양인데, 어째 새로 배운 말들만은 억양과 음조까지 아주 고급이다. 나는 웃었다. 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은 아시아권 국제결혼 이주의 유입국이다. 2009년 한 해만도 2만5000여 명의 한국인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매년 수만 명의 중국,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여성들이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간택' 과정을 거쳐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입국한다. 텔레비전에서는 외국인 여성들이 송편을 빚고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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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편 주문 신부>(마크 칼레스니코 지음, 문형란 옮김, 씨네21북스 펴냄). ⓒ씨네21북스 |
이런 현실이 당연해진 2010년 한국에서, 한국이 유입국이 아니라 송출국 입장인 상황을 다룬 마크 칼레스니코의 그래픽 노블 <우편 주문 신부>(문형란 옮김, 씨네21북스 펴냄)가 출간되었다. 제련소 하나 있는 캐나다 소도시, 허름한 가게에서 만화책이며 장난감을 파는 몬티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사진을 보고 고른 한국인 아내 경을 맞이했다.
'결혼 시장'에서 경쟁력 없는 남성의 환상과 욕구, 패배감이 깔린 도피가 뒤섞인 선택. 그 맞은편에는 '뭔가 변화를 원했다'고 말하는 부모 없이 자란 여성이 있다. 순종적이고 근면한 아내에게 대접 받고 살고 싶었던 소심한 남자와 모국을 떠난다는 극단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여자가 섹스를 하고 노동을 분담한다고 해서 동반자 관계가 형성될 리 없다.
몬티와 경은 서로를 마주할 때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 있을 때에야 상대를 파악한다. 몬티는 자의로 누드모델을 하는 경,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 앞에서 고함을 치는 경을 보고서야 자신의 아내가 마냥 조용한 동양 인형이 아님을 깨닫지만, 아내의 욕구를 무시하려고 애를 쓰고 또 쓴다. 그래야 동양 여자가 나오는 포르노 잡지를 보면서 달래 온 자신의 욕망을 결혼으로 마침내 충족했다는 환상 속에 살 수 있으니까. 소통 없는 거래에서 출발한 관계는 자신에 대한 좌절과 서로에 대한 폭력으로 나아간다.
한국에서 한국에 온 결혼 이주 여성들을, 말하자면 경과 같은 처지일 법한 이주민들을 대하는 나에게 이 책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경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멀리 있다. 경이 경험하는 소소한 차별과 무지는 한국인 독자가 공감할 만한 것들이다. 일본과 중국과 한국의 차이를 모른다고 우리는 얼마나 쉽게 분노하는가. 신비로운 동양이니 순종적인 아내니 하는 말은 얼마나 불쾌한가.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책이 다루는 갈등은 한국 사회가 경험하는 갈등에 비해 온건하다. 몬티는 최소한 자신의 성적 판타지에 기초해 자기 아내를 골랐고, 둘의 갈등은 둘 사이의 갈등일 뿐이다. 허나 한국의 중개 결혼은 아내 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주체적인 결정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국으로 온 결혼 이주 여성들은 한국인 남편의 아내이기 이전에 중개 결혼을 주도한 한국인 시부모의 며느리이고, 그 뒤에는 한국인의 엄마로 이 밀착된 '단'문화 사회의 다인종 구성원이 된다.
경은 영어도 할 줄 안다. 제 손으로 운전도 한다. 한국으로 오는 결혼 이주 여성 중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고백하자면, 나는 경이 영어를 할 줄 알아 남편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도입부부터 이건 어느 별나라 얘긴가 싶었고 남편의 차를 몰고 나가는 장면에서는 '운전을 하네! 이만하면 자유롭게 사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2009년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제결혼 가정의 60%가 200만 원 이하의 월 가구 소득으로 살고 있다. 한국어도 모르고 대체로 운전면허도 없는 여성들이 저소득 남성에게 시집을 오는 한국 현실에서는 경처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설명하거나 제 힘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상황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초급반 학생 중에는 한국에 온 지 4년이 넘었고 아이도 둘이나 낳은 이가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나라에서 4년을 살고도 올해 초까지 한글도 읽을 줄 몰랐다. 남편이 집에서 내보내주지 않은 탓이다. 전화를 빼앗겨 한국어 수업에 오지 못했다거나, 친정에 인터넷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집 컴퓨터에 기본으로 달려 있던 웹캠을 시아버지가 떼어 냈다거나 하는 얘기는 명절을 지나면 늘어 있는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만큼이나 흔한 얘기다.
그나마도 한국어를 좀 하거나 영어를 사용하는 필리핀 출신인 이주 여성들의 얘기밖에 우리는 듣지 못한다. 필리핀에서 온 어느 이주 여성은 영어 자기 소개서에 좋아하는 과목을 "순수 수학"과 "응용 수학"이라 썼다. "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존경하는 그는 이제 한국어로 쓰인 초등학교 2학년 수학 교과서를 공부한다. 나는 영어를 하지 못할 그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가 수학에 자신이 있고 모국에서는 기술자가 되기를 꿈꾸었음을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우편 주문 신부>에는 한국에 온 결혼 이주 여성들이 직면하는 가장 높고 두터운 장벽, 언어의 벽이 없다.
또한 우리 사회는 폭력에 훨씬 더 너그럽다. 이 책에서 갈등이 절정에 이르는 장면의 폭력은 너무나 안온하고 비교적 동등해서, 관계의 폭력적인 단절과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거대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견딜 만했다.'
경과 몬티의 결혼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부부라는 가장 내밀하고 가까울 수 있는 관계가 거래에서 출발해 관계맺음 없는 체념과 포기에 그치는 과정을 선명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우편 주문 신부>는 우리의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지금 우리는 이보다 더 깊은 곳에, 훨씬 더 깊은 진창에 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