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거기에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

1923년 3월 18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조지 맬러리의 간결한, 그러나 의미심장한 이 한마디는 '왜 산을 오르는가'라는 오래된 우문에 아직도 가장 적확한 현답으로 받아들여진다.

맬러리는 1924년 봄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일원으로 에베레스트 북릉을 오르던 중 앤드류 어빈과 함께 사라졌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난 1953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영국 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진 노르게이 셰르파에 의해 드디어 인류의 발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맬러리와 어빈의 행적은 여전히 인구의 관심사였다. 만일 그들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나서 하산 중 사라졌다면 세계 등반사는 고쳐져야 하기 때문이다. 1999년 5월 초 맬러리의 시신이 에베레스트 북릉 8160m 지점에서 발견되었으나 그가 등반 당시 지녔던 카메라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행적에 관한 미스터리 역시 풀리지 않은 것이다.

'맬러리와 어빈은 과연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랐을까? 만일 그들이 정상을 올랐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등정' 그리고 '증명'


▲ <신들의 봉우리>(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시작 펴냄). ⓒ시작
유메마쿠라 바쿠의 <신들의 봉우리>(이기웅 옮김, 시작 펴냄)는 바로 조지 맬러리의 행적을 좇아 시작된다. 1993년 일본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촬영 담당 대원인 주인공 후카마치 마코토는 등반을 마친 후 우연히 들른 카트만두의 장비점에서 맬러리가 1924년 등반에 휴대했던 코닥 폴딩 카메라를 구입한다.

후카마치는 이 카메라에 얽힌 사연들을 좇다가 한때 일본 산악계의 전설적인 존재였던 하부 조지와 조우하게 된다. 귀국하고 나서 그는 하부에 관해 조사하던 중 점점 그의 광적인 산에 대한 집념에 빠져들며, 다시 네팔로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동계 무산소 단독 등반에 동행한다.

647쪽에 이르는 장대한 스케일만큼이나 이 소설이 배경으로 삼는 무대 역시 광대무변하다. 일본의 산악 지대는 물론이고 유럽 알프스와 네팔 히말라야, 카라코룸 히말라야를 무시로 넘나든다. 등장인물 역시 당장이라도 숨을 헐떡이며 오버행 암벽을 넘어서 눈앞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으며 나타날 듯싶다. K2에서 눈사태로 숨진 천재 클라이머 하세 츠네오, 하부 조지의 등반 파트너 기시 분타로, 마지막 타이거 앙 체링 셰르파, 그리고 기시 료코….

지난 9월말 출간된 이 소설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작년 이맘때 같은 제목의 만화 <신들의 봉우리>(전5권, 애니북스 펴냄)로 이미 소개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 만화는 원작의 배경이 되는 1920~90년대의 등반상과 일본의 산은 물론 알프스와 히말라야의 산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고증을 통한 놀라울 만큼의 자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신들의 봉우리>에 더욱더 관심이 가는 것은 이 소설의 스토리텔링의 전개가 지금 우리나라 산악계에서 벌어지는 '등정'과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에 관한 논란과 대비되는 몇 가지의 유사점 때문이다.

'등반가 오은선의 캉첸중가 등정은 사실인가?'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오은선 캉첸중가 등정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맬러리와 어빈의 에베레스트 등정 가능성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충분한 개연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할 물증은 없다. 맬러리와 어빈이 1924년 에베레스트를 등정 후 하산 중 사라졌다면 그들은 에베레스트 초등자가 된다.

맬러리가 정상에서 찍었을 카메라와 필름은 끝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오은선이 캉첸중가 등정을 증명할 분명한 사진만 있었더라면 그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여성 최초의 8000m급 14개봉 완등자가 되었을 것이다. 바로 '세계 최초'의.

오은선의 등정 시비와 더불어 제기된 몇몇 유명 산악인이 스폰서를 독점한다는 상업 산악인 논쟁을 놓고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상황이 소설에 등장한다. 하부 조지가 스물여섯이던 1970년, 그가 속한 산악회에서 안나푸르나 남벽 원정대를 구성한다. 그러나 그는 참가비 100만 엔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히말라야 행을 포기해야 했다. 그를 제외한 원정대가 출국한 후 그는 이렇게 분통을 터트렸다.

"결국엔 돈이야. 나는 지금까지 모든 인생을 산에 걸었어. 그런데 어떻게 1년에 50일도 산에 들어가지 않는 인간이 갈 수 있어? 무명이면 안 돼. 유명해져야만 해. 유명해지면 스폰서도 붙고 돈도 나와. 유명해지기 위해선 결국 아무도 하지 못한 걸 해내야 해"

우리에게도 '유명'하지 않은 그러나 산에 미친 스물여섯 살의 청춘들이 지금도 쭈뼛거리며 스폰서 업체에 등반 계획서를 내미는 일은 여전히 흔하디흔하다. 그것이 단번에 거절당하는 일도 역시 흔한 일일 뿐이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것이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처럼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산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개인이 산을 오르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물음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그러나 그 물음은 인류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던져졌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혼자서 무산소로 오르는 하부 조지는 '왜 산을 오르는가'라는 진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온 힘을 다 쏟아부은 행위로 보여준다.

"거기에 산이 있어서가 아냐. 여기에 내가 있으니까야. 여기에 내가 있으니까 산에 오르는 거야."

"산에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그건 자신의 내면이다. 무리인줄 알면서 산에 오르는 이유는, 자신의 내면에 잠든 광맥을 찾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 여행이다."

"이제, 있는 힘을 다했는데 이제 안 된다면 정말로 안 된다면 안 된다면 정말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상상해. 온 마음을 다해 상상해. 상상해"

등반가 스스로의 준엄한 잣대

1997년 처음 일본에서 출간된 이 소설에서는 현재에도 통용되고 있는 몇 가지 히말라야 등반에 관한 규범을 소개하고 있다.

- '동기 등반'은 12월에 산에 들어가서 등산을 개시해야 한다. 12월 전에 베이스캠프 설치나 그곳까지의 수송 작업 등 세부적인 준비를 실시해도 무방했지만, 베이스캠프 위로의 등산은 12월에 들어서고 나서 해야만 했다.

- '단독 등반'은 베이스캠프에서 위로는 일절 다른 사람의 협력을 받으면 안 된다는 암묵의 양해가 있었다.

- '무산소 등정'. 8000m 봉이라고는 하지만 8013m인 시샤팡마 정도의 낮은 산은 원래 무산소로 오르던 산이라, 새삼 '무산소'라는 의미가 없다. 즉, 8000m 봉 무산소 단독 등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경우는 (1993년 이전까지 기록 중에서) 1980년 라인홀트 메스너의 에베레스트, 1981년 예지 쿠쿠츠카의 마칼루, 1983년 피에르 베겡의 캉첸중가, 1990년 토모 체슨의 로체 이 네 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등산은 '무상(無償)의 행위'나 '심판이 없는 스포츠'라는 말로 통용된다. 심판은 없지만 등반가 스스로가 그 행위의 가치에 대해 준엄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등산이 여타의 스포츠와 구분되는 우월성이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무산소'와 '단독'과 '최초'의 등반이 난무했었나. 13년 전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는 이 규범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연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참할 뿐이다.

유메마쿠라 바쿠는 이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하는데 20년이 넘게 걸렸다고 밝혔다. 그리고 작가 후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전부 토해냈다. 힘이 미치지 못해 아쉬운 대목도 없다. 구석구석 온 힘을 다 기울였다. 열 살 때부터 산에 오르면서 몸 안에 쌓아둔 걸 전부 다 꺼내고 말았다. 그것도 정면에서 맞서 싸우듯이 전력을 다해 산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이 이야기에 변화구는 없다. 직구. 온 힘을 다 쏟아부은 스트레이트. 이제 산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 다시 쓸 수 없으리라. 이게 최초이자 최후다. 그런 이야기를 쓰고 말았다. 이만한 산악 소설은 아마 더 이상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아무나 쓸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제 항복할 텐가."

이 소설은 이 땅 모든 산악인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장 한복판을 향해 던지는 쾌속 스트라이크다. 정말 항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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