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대한 상식, 없어도 불편할 건 없잖아? <뚱딴지가 아니다>(차병직 지음, 우리교육 펴냄, 이하 <뚱딴지>)의 책장을 덮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책은 법을 모르면 불편해질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단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법과 관련된 일화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책은 말한다. '민법', '표준시에 관한 법률', '연호에 관한 법률', '먹는 물 관리법', '수도법', 도시 가스 사업법', '액화 가스의 안전 관리 및 사업법', '품질 경영 및 공산품 안전 관리법', '관세법 제51조의 규정에 의한 싱가포르·중국 및 일본산 알칼리 망간 건전지에 대한 덤핑 방지 관세 부과에 관한 규칙'… 이름도 긴 이 무수한 법들이 모두 우리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우리의 생활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소위 말하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은 없는 거라고.

<뚱딴지>는 열네 살 기현이와 변호사인 이모 사이의 물음과 대답을 통해 이런 얘기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기현이는 사람들이 왜 질서를 원하는지, 정의를 꿈꾸는지 그리고 자유롭기 위해 다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시쳇말로 '쌩뚱맞게' 궁금하다. 그러나 이모는 그것이 쌩뚱맞지 않다며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그러니 제목도 "뚱딴지가 아니다"다.


▲ <뚱딴지가 아니다>(차병직 지음, 우리교육 펴냄). ⓒ우리교육
중학교에 근무하는 필자 역시 기현이 또래의 제자들로부터 가끔 '뚱딴지'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이 책은 일단 그 질문들부터 '뚱딴지가 아니'라면서, 명확한 논리의 답변을 제공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이 '사람들이 질서를 원하는 이유는?'(2장)과 같은 질문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습관적으로 '질서를 잘 지켜야한다'고 말한다. 어른들이야 그게 '좋은 것'이라 단정 짓지만 학생들에겐 의문투성이다. 왜 질서가 좋은 걸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 질서 지키기를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안 지키는 사람들을 보며 의문이 커졌을 수도 있겠다.

그런 학생들에게 질서를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뚱딴지>는 아주 쉽고 가까운 예를 든다. 가령 사진이다. 우리는 사물이 패턴을 갖고 조화롭게 어우러진 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건 사물들이 질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을 통해 질서와 아름다움을 설명하면서 책은 이렇게 나아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들이 자연의 질서처럼 일정한 순서가 있다. 세상 만물들이 질서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하여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예측할 수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그 세상과 친숙해지고 세상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 불규칙하고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지나치게 자주 일어날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고 책은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질서를 위해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며, 다만 제한할 때는 언제나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쉽고 논리적이며 명료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정의'의 문제로 옮겨간다. 공평한 게 뭘까? 정의로운 건 뭐지? '이름은 완전하고 형체는 불분명한 것?'(3장)에서 이 문제가 다뤄진다.

매일 학교에 나간 학생이 개근상을 받아야 하고 노력한 사람이 시험에 합격하는 등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일'들이 그렇게 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실망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고쳐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사람들의 실망은 절망으로, 포기로 이어진다. 정의가 세워져야만 하는 이유다.

맹자는 "나는 생명을 원하고, 또 정의를 바란다. 둘 중에서 꼭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생명을 버리고 정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고, 칸트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야 한다"고 했다. 책은 이렇게나 중요한 정의를 세우기 법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질문도 함께 던진다.

책은 4장 '자유롭기 위해 자유를 제한한다고?'에서 자유의 문제를 거론한다. 자유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남에게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하나는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자유란 자신 마음대로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는 없으므로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법제도는 사람들의 자유를 조금씩 제한하면서 사회 전체의 '안정된 자유'를 추구한다.

물론 자유를 제한하는 방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이 강한 순서대로 많은 양의 자유를 누리게 되니까 말이다. 힘의 논리만이 적용되는 곳에서의 자유는 불안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 더 센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힘의 순서는 뒤바뀌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구나 더 많은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밖에도 '함께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5장) '발견한 걸까, 만든 걸까?'(6장) '약속한 만큼 보호받는다?'(7장) 등의 챕터를 통해, <뚱딴지>는 살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 상관없다고 여겼던 법 문제들에 대해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법이 왜 중요한지와 그 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조금 허망하다. 우리 사회가 열네 살짜리 기현이보다 법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여서다.

올해 후반기 국정 핵심 목표는 '공정 사회'란다. 그런데 곧바로 총리 후보의 위장 전입 사실이 드러났고 고위 공무원들의 자녀 특채 비리가 줄줄이 캐어 올려졌다. 공정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요소인 법조차 무시하는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바르지 못했나를 생각해 본다.

진짜 공정 사회를 누려야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법에 대해 근원적인 생각을 스스로 해보길 권유하고 싶다. <뚱딴지>는 그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에게 구체적으로 와 닿을 현실 사례에 대한 아쉬움은, 저자의 다음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