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나는 반대한다>(느린걸음 펴냄)의 저자 김정욱의 강연을 들었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는 산림에서 흘러온 물이 마을을 지나 하천에 흘러갈 때까지 밭과 논에서 이용한 뒤에는 다시 마을 숲을 지나 흐르도록 했다고 한다. 아무데나 오물을 버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늘 그렇게 강과 내에 마실 물이 흐르도록 했다.

비슷한 시기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창밖으로 오물을 내버리는 일이 흔했다. 물에서 병이 옮을까봐 목욕도 꺼렸다. 오염된 물을 마실 수 없어서 물 대신 술을 빚어 마셔야 했다.

술을 즐기는 부모님, 대학 다니던 때의 치열한 음주 문화 덕일 것이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의 친구와 자리를 할 때마다 참 아쉽다. 친구이되 술친구는 못하는 아쉬움. 그러나 어쩌랴. 그들의 몸에서는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효소가 만들어지지 않으니, 술이 그대로 독약, 또는 발암물질이 되는 것을.

이에 비해 유럽인들은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효소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술을 못 마시는 사람도 거의 없단다. 유전적인 차이이다. 언젠가 좀 억울해서 친구에게 "왜 우리만 술 못 마시는 사람이 많은 거야?" 하니,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란다. 우리나라는 술 못 마시는 사람이 많은 덕에 알코올 중독자 비율이 그만큼 낮다는 것이다. 오호, 그렇군.

강연을 같이 들은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했다. 가슴을 누르는 그 날 강연의 주제는 조금 밀어두고, 그 날의 깨달음에 관한 사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이 왜 그렇게 다들 술을 잘 먹나 했는데, 오늘 탁 깨달음이 오더라고. 중국에 간 유럽인들이 중국 사람들이 엄청 깨끗하다고 했다지? 우리 조상들은 중국 사람들 더럽다고 했는데. 유럽인들이 얼마나 더러웠다는 얘기야! 병 걸릴까 무서워서 물을 못 마시니 술만 마셔야 했고. 그러니 술 못 마시는 유전자가 남아날 수 있었겠어? 나 이거 주제로 연구해야 할까봐."


▲ <1만 년의 폭발 : 문명은 어떻게 인류 진화를 가속화시켰는가>(그레고리 코크란·헨리 하펜딩 지음, 김명주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그러다가 친구들에게 혼이 났다. 그거 연구한 사람 이미 많을 테니 정신 차리라고. <1만 년의 폭발>(그레고리 코크란·헨리 하펜딩 지음, 김명주 옮김, 글항아리 펴냄)을 읽으면서 친구들 말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뇌에서 발생하는 열의 처리 문제, 체내에 염분을 보존하는 유전적 특성과 고혈압의 관계, 락토스(젖당) 내성을 갖게 된 북유럽 인들이 다른 동물에게 흡혈귀가 아닌 흡유귀(吸乳鬼)가 된 일, 자외선이 부족한 지역에서 비타민D를 합성하기 위해 짙은 색 피부를 버린 것.

농경의 역사가 길지 않은 이들은 서양식 식단을 접할 때 제2형 당뇨병이 특히 더 잘 발생하고 알코올에 의한 피해를 받기 쉬우며 태아 알코올 증후군 발생률도 높다는 것, 디스트로핀 유전자와 관련해서 높은 지능을 위해 근력을 희생했을 가능성, 피임과 낙태약으로 너무 인기가 있어서 멸종한 실피움, 문명이 상업 활동을 위한 마음 모형에 필요한 지능을 선택했을 가능성.

시인들의 조울증,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낮은데도 심장병 징후를 나타내지 않는 이탈리아의 어느 가계, 결혼과 무역, 식민지, 전쟁, 강제 이주 등에 의한 유전자 이동, 미생물 지원군을 등에 업고 아스텍 제국을 쑥대밭을 만든 코르테스, 유럽 유대인들의 높은 지능과 테이-삭스병과 같은 유전병의 관계 등 저자들이 이 책에서 든 사례들은 매우 광범하고 다양하다.

저자들이 말하는 '1만 년의 폭발'은 농경과 문명에서 기인한 인류 진화의 폭발이다.

기린 한 마리를 썩기 전에 다 먹으려고 해보라. 아내와 자식들이 돕는다 해도 불가능하다. 고기를 나눠먹는 데 드는 실질적인 비용은 0이다. 수렵·채집인들은 이기적이지 않다.

반면 농부들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최소한 그들은 씨곡이나 씨가축을 남에게 줄 여유가 없었다. 또, 재산이 생기면서 게으름이 줄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 저축을 할 수 있었다 (…) 이것은 수렵·채집인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들은 부를 축적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빈둥거리며 놀았다. 이야기하고 잡담하고 노래했다. 그들은 게을렀고 그들에게는 그게 맞는 일이었다.

게으름은 생물학적으로 합리적인 것이었다 (…) 결국 농부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여기서 다시, 먹을 게 충분히 있는데도 일하고 싶어 하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선택이 일어났을 것이다.

(…) 이 모든 농경 친화적인 행동들은 처음에는 틀림없이 인간의 기질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미처럼 부지런한 행동을 유발하는 대립유전자들의 빈도가 증가했을 것이고, 결국 몇 천 년 후에는 이기적이고 열심히 일하고 자제심이 있는 사람들이 수렵·채집인들 사이에서보다 훨씬 흔해졌다. 배짱이보다 개미처럼 행동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평균적인 삶의 척도를 높여주지는 않았다. 세상은 맬서스의 덫에 걸려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비교적 최근에 농부가 된 집단들, 혹은 아예 농부가 되지 않은 집단들은 새로운 사회적 기술적 발전들을 숙달하는 속도가 느리다 (…)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그러한 경우이고, 현재 남아메리카에 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에 대한 불만의 물결이 일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난 내가 못 그래서 그런지, 자기 생각을 방약무인하게 털어놓은 글을 좋아한다. 그런 글을 읽을 때면 꼭 겉으로 웃지는 않아도, 속으로 뇌로는 웃는다. 그것도 자주. 이 책도, 과학자들이면 대개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할 네안데르탈인 유전자의 유입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보아도 그런 쪽인데,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동안 웃음이 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례가 많은데도 좀 무서웠다.

그들은 왜 이렇게 제국주의의 침탈이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어떻게 아이큐에 관해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연구한 수많은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간단히 치워 버리는 걸까? 게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만일 이러한 차이들의 근본 원인이 (…) 생물학적 변화들이라면 (…) 농경의 경험이 일천한 사람들의 느린 현대화 문제에 대한 기존의 해결책들은 매우 문제가 많은 것이다. 오히려 근본적인 생물학적 원인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방법들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한 방법들은 세계 지배 전망을 충분히 바꿀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활기를 띨 것이다.

(…) 현재 인간 개체군들 대부분에서 과학은 존재하지 않거나 그 존재가 심히 미약하기 때문이다 (…)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나 이슬람 세계에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인종과 민족의 생물학적 평등은 필연이 아니다 (…) 역사의 실험들이 내놓은 결과의 일부는 인간의 수명과 인지 능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우리의 더 야심찬 시도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과학 연구자들이 진화의 정체나 '심적 동일성' 같은 일련의 도그마들을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더 이상 잃을 시간이 없다.

저자들로 대표되는 '그들'이 오랜 농경 문화를 갖지 않은 모든 문화권을 얼마나 철저히 대상화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생물학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나도 인간을 이해하는 데 과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우리에게는 좀 더 많은 과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엔 역시 많은 얼굴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책의 첫머리에 인종 차별주의에 매우 민감하여 '같은 몸과 마음', '인간다움을 향한 인간의 진화'와 같은 수사적 표현을 한 굴드와 르원틴을 인용한 것은 비겁했다고 본다. 그들이 다윈의 '느린 진화' 이론에 반기를 든 '진화 폭발'과 단속평형설의 거두임에랴.

인류는 '농경'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고 살아낸 이래, 지난 150년 동안 '산업사회'라는 또 다른 새로운 환경을 지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지식사회, 정보화 사회를 말한다. 책을 읽고 인간에 관해, 인간의 환경에 관해, 인간의 본성에 관해 생각이 많아졌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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