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 교사에게 노이로제를 일으키는, 원죄 의식 같은, 그런 소리가 있다.
"역사는 너무 어렵고, 외울 게 많고, 그래서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
아,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보다. 이걸 반가워해야 하는 걸까?
"고등학생은 역사를 싫어한다. 좋아하는 과목들을 꼽으라면 역사는 대개 맨 꼴찌다."
제임스 로웬의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미국사의 진실>(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의 초판 서론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미국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초판과 재판) 서론들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뭐라고 할까, 한편으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함에서 오는, 한편으로는 조금 가슴 저림과 함께 오는 웃음이었다.
"역사 교사들은 교실의 처진 분위기를 안다. 시간이 많고, 가사의 의무가 적고, 자원이 충분하고, 교장이 유연한 사람이라면, 교사는 내용을 따라가기에도 버거운 교과서를 팽개치고 독자적으로 미국사 과정을 새로 꾸민다."
 |
▲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제임스 로웬 지음, 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
그랬다. 학교에 처음 들어왔던 10여 년 전, 첫해 내 수업을 거부하는 듯한 아이들과 맞닥뜨리면서 스스로의 수업에 절망하고 나서, 그 다음해는 내 나름의 텍스트와 생각할 거리를 담은 교재를 만들어 교실에 들어갔다. 그해 진도는 제대로 나가지 못했지만, 조금 뿌듯했다. 그런데…….
"하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실망스럽다. 학생들이 자신의 역사 사랑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사는 결국 쓸데없이 애만 썼다고 생각한다. 점차 교사는 의욕을 잃고 교과서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음 시험에 무슨 문제를 낼지만 고민한다."
앞의 인용에 이어지는 글이다. 그렇다. 지금 내 모습과 같다. 고등학교로 오면서 나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도 생겼다. '입시'라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처음에는 나름대로 긴장도 하고 희망도 갖고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곧 현실을 알게 된다. 아무리 해도 성적이 안 오른다는 것, 그리고 입시에는 나름의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역사는 입시에서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현실을 알아버린 아이들을 달래거나 협박으로 끌고 가는 것, 둘 다 쉽지 않다.
안다. 자기변명일 뿐이다. 이 책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을 읽으면서 가슴 쓰렸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나온 미국사 교과서 18종을 꼼꼼히 파헤치고 비판한 책이다. 아니 단지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나름의 대안 교과서를 쓰고 있다. 대형 출판사에서 만들어 보급하고 학교나 주 교육위원회를 통해 채택된 학교 공식 교과서가 들려주지, 보여주지 않은 이야기들을 그의 책이 대신해서 깊이 있게 풍부한 자료들을 제시하며 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역사가 정말 의미 있게 다가갈 때 흥미도 함께 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 주려는 것 같다.
'1장 역사가 만들어낸 장애 : 영웅 만들기의 과정'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자.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 이야기는 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장애를 극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한 후 그녀는 무려 64년을 더 살았다. 그동안 그녀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녀는 '장애'가 하층 계급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이 문제가 사회 계급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사회주의자가 되어 사회 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교과서는 그녀의 초기 삶만을 우상화하고 나머지 삶을 무시한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경우는 어떤가. 그는 우리 교과서에서도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인물로 멋지게 등장하는 인물이다. 많은 미국 교과서에서 그는 세계 평화에 앞장 선 '위인적인' 인물로 미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백인 우월주의를 스스럼없이 드러낸 인종주의자였으며, 주변 약소국들에 대해 매우 냉혹한 제국주의 정책을 서슴없이 실행했던 인물이다. 그런 사실은 공식 교과서에는 담기지 않는다.
미국 역사 교과서에서 누구보다 주목 받는 인물인 콜럼버스는 또 어떠한가? 그가 신대륙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군사 기술을 비롯해서 관료제나 십진법 방식의 복식부기, 인쇄술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기술이 발달하고 이동과 개종이 자유로운 유럽인의 종교적 특성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임에도, 교과서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단어로 정리해버린다. 오로지 그의 '용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이다.
게다가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한 후 정복자로서 벌인 행위들은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원주민들을 정복하는 것을 당연하고 필연적인 일이라 믿게 만든다.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개인을 영웅화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일까? (저자는 이를 '디즈니판 역사'라고 명명한다. 디즈니랜드에 마련된 역대 대통령 전당을 빗대어 말한 듯한데,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생겨난 배경에는 더 끔찍한 역사가 숨어 있음을 들려준다. 유럽에서 새롭게 이주해 들어온 이들에 의해서 어떻게 '신대륙'이 유린되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신대륙'이라고 표현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과 그들이 미국사에 미친 영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도 그러하다.
이런 비판적인 역사 읽기, 미국사 읽기가 그 자체로 매우 신선한 것은 아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정도의 이야기들은 새로울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이런 이야기가 공식 교과서에서 지워지는가, 그것이 어떤 의미와 효과를 가지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는 점, 분명 다른 책에서 접할 수 없는 이 책만의 특징이다.
우드로 윌슨의 진면목을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그의 죄악을 폭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바라볼 수 있어야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성숙시킬 수 있는 교육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가한 콜럼버스의, 유럽계 아메리카 인들의 잔혹한 행위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 역시 그렇다.
그것은 오늘날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갈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교육적 경험인 것이다. 이밖에도 이 책에서 다루는 미국의 인종주의 문제나 베트남 전쟁 문제도 그 진실을 숨겨서 안 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지금 현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 아니 학교에서 역사를 왜 가르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왜 이토록 절절한 가슴 아픔과 함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안내하는 역사가 학교에서는 어려운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로웬이 이 책을 쓴 이유이고, 많은 역사 교사들이 고민하는 현실이기도 한….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역사도 논쟁의 학문이다. 주어진 정답을 외우는 것보다 사실을 둘러싼 해석, 해석을 둘러싼 논쟁들에 부닥치며 스스로의 견해와 판단을 세워가는 것, 그게 진짜 역사요, 역사 공부다. 그런데 이런 역사에 대한 인식이 학교에 들어올 때는 달라진다. 왜 달라지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진실을 낙관적으로 전해야 한다. 실패에 관해서는 도덕적 교훈으로서의 가치만 강조하고 주로 성공을 이야기해야 한다."(482쪽)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미국에서 1925년 재향군인회가 밝힌 이상적인 교과서의 상이다. 다른 나라의 오래 전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 지난해 우리 대한민국에서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이명박 정부에서 벌인 치졸한 짓거리와 논리가 닮아 있지 않은가.
좋게 풀이해서, 어린 아이들을 너무 험하고 끔직한 과거 사실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통해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한 사회 공동체를 위해 학교 역사 교육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주장, 쉽게 무시할 수는 또 없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런 주장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성숙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상처 입는 이들에 대한 무례를 읽게 된다. 로웬의 이야기처럼 인종주의의 현실을 은폐하는 것은 아이들의 성숙을 막는 일이며, 그로 인해 피해 입은 이들의 삶을 무시하는 짓이다. 진실을 감추고 미화하는 역사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다. 아이들은 '교과서적인' 뻔한 가르침에 요령 것 저항한다. 그게 미국의, 우리의 교실 모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떤 역사 교과서, 어떤 역사 수업이 필요한 것일까? 그래 이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런데 그가 결론적인 장에서 내놓은 대안은, "다루는 주제의 수를 줄이고 역사적 논쟁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 이건 대한민국의 역사 교사나 역사 교육 연구자들도 줄곧 많이들 해왔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우리 학교 현실은 그리 크게 변한 것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허전하게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실 그렇다. 학교 현장엔, 우리 교육 현실엔 교사들이 핑계거리 삼을 장애, 장벽들이 너무 많다. 교육 과정을 비롯한 교과서 제도, 관료적인 학교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입시 제도 같은. 이런 장애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 그런 장애가 핑계거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게 시작일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이 책의 제목이 던지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이란 제목은 교과서=선생님이라고 할 때 교과서대로 가르치는 것이 곧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어찌 보면 단순하게 게으른 교사들을 계도하는 제목처럼도 느껴진다.
그런데 교과서대로 가르치는 것을 넘어설 때는? 이때의 선생님은 교과서가 말하는 의도된 '거짓'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교과서를 다룬 책임에도 이 책의 도발적인 제목은, 그래서 교사인 당신은 어떤 '거짓말'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것이냐고 묻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