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의 서문에서 "지혜(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아오른다"고 말한 철학자 헤겔. 그는 '노예와 주인의 변증법'으로 유명한 대작 <정신현상학>의 집필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서문을 써내려가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눈앞에 '시대정신(Zeitgeist)'이 어슬렁거리고 있다며 감격해한다.
그 순간 헤겔이 목격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의 깃발 아래 프러시아를 점령하여 수도 베를린의 (우리의 광화문에 해당되는) 중심가에 나타나 자신의 군대를 순시하던 나폴레옹의 말 탄 모습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이 시대의 나폴레옹은 과연 누구일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11~12일 서울에는 글로벌 경제 위기와 무역 전쟁, 환율 전쟁의 해법을 찾고자 각국 정상들이 모였다. TV에는 회담의 의장인 이명박 대통령의 분주한 모습과 함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비쳐졌다. 두 사람은 G20 회의에서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이라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진영에 서 있다.
이번에 모인 120개 글로벌 기업의 CEO들 (여기에는 삼성의 이건희,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SK의 최태원 회장 등이 끼어 있다) 역시 서울 한복판에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시대정신으로 찬양한다. 작은 정부, 부자 감세와 복지 재정 축소(긴축 재정), 대형 할인점 규제와 같은 기업 규제 철폐, 공기업 민영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지속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G20 회의와 거의 동시에 번역·출간된 장하준의 새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부키 펴냄)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자유 시장이라는 허구"에서 시작해서 "금융 시장은 덜 효율적일수록 좋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주류 경제학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들을 용감하게 펼쳐나간다.
장하준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선 새로운 시대정신의 정치경제학 이야기보따리를 독자들 앞에 풍성하게 펼쳐 놓는다.
성장과 분배, 트리클다운과 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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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부키 |
전작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순희 옮김, 부키 펴냄)에서 장하준은 주로 개발도상국들의 '성장' 이슈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것은 부분적으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도 이어진다.
장하준은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없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는 주장을 통해 가난한 개발도상국도 한국이 1960~70년대에 취했던 적극적 정부 개입과 산업 정책(industrial policy)을 취함으로써 경제 개발과 경제 성장에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3년 전에 나온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로 개발도상국 독자를 겨냥한 것과는 달리 이번 책은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 독자를 위해 기획되었다. 이 책은 G20 회의를 주최할 정도로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한국 독자의 고민, 즉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른바 '선진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장하준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실제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는데 실패"했다며 비판한다. 또 그는 부자들에게 부를 몰아줌으로써 자유 시장 경제학이 기대한 것, 즉 '윗부분에서 창출된 보다 큰 부(보다 큰 파이)가 아래로 흘러내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들 것'이라는 이른바 '트리클다운(trickle down)의 원리'도 실제로는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선진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는 부유층 감세와 금융 자본주의화를 통해서 부자들에게 부를 집중시켜 줌에도 불구하고, 정작 부자들은 생산적 투자 확대보다는 금융 자산 투기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경제 성장 지체'와 '고용 없는 성장', '늘어나는 근로 빈곤층(working poor)' 현상을 발생시켰다.
트리클다운 이론에 대응하는 장하준의 이론은 펌프(pump)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부유층에 집중된 부가-중력(즉 '자유 시장' 원리)의 자연스런 작용에 의해-가난한 계급에게 한 방울 한 방울 흘러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느리고 부족하다. 따라서 아예 전기 펌프를 설치하여 부를 콸콸 아래로 이전시키는 것이 경제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기에 훨씬 더 쉽고 빠른 길이다. 그 펌프가 바로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라는 펌프를 설치한 경제는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복지국가라는 큰 정부가 있을 경우 사람들은 자기가 일하는 기업과 산업이 시장 비효율성 문제로 인해 문을 닫는다 하더라도 정부로부터 실업수당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새 직장을 구하는데 필요한 직업 재교육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까닭에 기업과 산업의 구조 조정에 크게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국가는 기업과 산업의 효율적 구조 조정과 고부가 가치화를 보다 용이하게 하고, 그 결과 경제는 더욱 빨리 성장한다.
공정과 공평, 자유 시장과 국가 개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공정'과 '공평'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 준다. 장하준은 "잘 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라는 잘 알려진 사실을 지적하면서, 자유 시장 경제학은 이러한 상식적 팩트마저도 설명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장하준은 이어 미국의 버스 운전사와 한국 또는 멕시코의 버스 운전사가 하는 일은 동일한데도 임금 격차가 수배 또는 10배나 난다는 사실이 과연 공정·공평한가라는 윤리적 문제도 제기한다. 물론 이러한 나라 간 임금 격차는 각국이 국경을 개방하여 노동 이민 시장을 완전 자유화하면 금세 사라진다.
자유 시장 경제학의 관점을 수미일관되게 적용한다면 미국의 버스 운전사가 멕시코의 버스 운전사보다 10배의 임금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따라서 미국은 멕시코로부터의 노동 이민을 무제한 허용하는 '자유 시장'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정의(justice)와 공정(fairness)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전신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상품 및 서비스의 국제적 이동과 자본의 국제적 이동만을 자유화할 뿐 결코 노동 이민의 국제적 이동까지 자유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 시장 이론을 따르는 미국 정부의 멕시코 국경 통제는 날로 살벌해지고 있으며, 세계 어디서나 이 이론은 보수주의적 민족 차별과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한편으론 자유 시장 경제학의 논리적 자가당착을 보여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과 공평에 관한 자유 시장적 접근의 한계를 보여준다. 만약 한국과 미국이 무제한적인 노동 이민 시장 자유화에 합의할 수만 있다면, 한미 FTA도 그렇게 공정·공평하지 못한 협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사회디자인연구소 등 우리나라 진보·개혁 세력 일부에서 제기하는 '공정 사회' 관점의 복지국가 비판론에 대해서도 이야깃거리를 준다. 예컨대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는 복지국가보다는 정의와 공정·공평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면서 공평이 1차 분배 구조인데 반해 복지국가는 2차 분배 구조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그리하여 사회디자인연구소는 1차 분배 구조의 불공정성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에 오히려 1차 분배 구조에서의 시장 논리(즉 자유 시장)를 더욱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좌파' 정책을 구사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컨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특권적 분배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노동 시장 유연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이 이 책에서 잘 지적하듯이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서도 자유 시장에서 형성되는 '청소부'와 '사장님' 간의 임금 격차는 한국과 미국만큼이나 크다. 즉, 김대호의 표현에 따르면 1차 분배 구조에 있어 북유럽은 미국 및 한국보다도 더 불공정한 사회이다.
그런데도 북유럽 나라들은 부자 증세와 복지 재정 지출을 통해 부를 위로부터 아래로 적극적으로 이전시키는 복지국가 펌프를 설치한 덕택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사회 정의와 공정· 공평을 달성하였다. 자유 시장에서 그 가격이 결정되는 1차 분배 구조상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유 시장을 더 강화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국가 개입 특히 복지국가적 개입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따라서 문제는 정의·공정이 먼저냐 복지국가가 먼저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정의·공정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 시장 정책을 쓸 것인가 아니면 국가 개입(특히 복지국가 정책)을 할 것인가이다.
기회 평등과 실질적 공정성
공정·공평의 문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기회의 평등이냐 결과의 평등이냐의 문제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기회의 평등'을 적극 옹호하며, 공평한 기회 제공은 공정 사회를 이루는 출발점이라고 이해한다. 그들은 가난한 집 아이도 교육받을 기회를 공평하게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자립형 사립학교를 늘리더라도 가난한 아이들도 입학할 수 있는 특별전형 제도를 도입하면 기회 균등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장하준은 이 새 책에서 과연 기회를 공평하게 준다고 해서 사회가 '공정'해지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설령 가난한 집 아이들이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만약 그들이 집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을 수 없다면, 그리고 집에 공부할 책도, 책상도 없다면, 그들은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무상 급식을 제공하여 이들이 굶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공립도서관을 통해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무상으로 책을 대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나아가 가난한 집 부모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노동) 시장'('기회 균등'의 시장)이 아닌 복지국가적 개입에 의해 적절한 소득과 교육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는 한, 그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차라리 빨리 일자리를 찾아 돈벌어오라고 다그칠 것이다. 이렇듯 기회의 균등은 그 자체의 '형식적 공정성'에 불과한 바, 그것이 '실질적 공정성'으로 승화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도 필요하다.
브라질의 룰라 정부는 가난한 집 부모들이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을 전제로 정부가 소득보조금을 제공하는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의 대성공으로 사회에서의 '공정성'을 실질적으로 증진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 G20 회의의 '나폴레옹'은 바로 브라질 대통령 룰라였다고 할 수 있다.
'성찰적 진보'를 위한 정치경제학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달리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선진국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그것은 동시에 '리틀아메리카'(미국식 선진화)냐 아니면 '빅 스웨덴'(북유럽식 선진화)이냐의 두 가지 선진화 방향을 놓고 여전히 고심하는 우리나라 진보·개혁 진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장래의 진보·개혁 재집권을 구상하는 '성찰적 진보'임을 자부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대는 진정으로 '신자유주의 좌파'의 시대였다. 그것은 두 대통령과 집권 정당만이 아니라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세대 즉 386(486) 세대 전체의 문제였다. 이 세대가 '신자유주의 좌파'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양상은 다양하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386 세대는 '굴뚝 산업'을 넘어설 '지식 기반 경제론'에 열광했다(지금도 이것은 여전하다). 그들은 굴뚝 산업을 대표하는 재벌계 대기업의 이건희와 정몽구 등 구태의연한 재벌 총수가 아니라 '지식 기반 경제'를 대표하는 새롭고 '멋진 자본주의'의 대표자인 빌 게이츠와 스티븐 잡스(그리고 우리의 안철수)에 열광했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하는 정보통신 기술(IT)과 인터넷을 통해 달성될 정보화 사회 또는 탈산업화 사회(다니엘 벨과 앨빈 토플러)에서는 '상호 소통적 민주주의'와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피터 드러커의 탈자본주의 사회)가 실현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진보·개혁 진영에서 나타난 IT와 인터넷에 대한 이러한 열광과 기대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 대통령과 로버트 라이시 노동부 장관이 그러했고, 영국의 경우 토니 블레어와 앤소니 기든스의 신노동당이 그러했다. 당시 미국 민주당과 영국 신노동당이 내건 '제3의 길' 노선은 부자 증세 및 복지 국가 지출 등 전통적인 진보적 정책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무관심했고, IT 및 인터넷에 대해서는-미국 민주당과 빌 클린턴을 열렬히 후원한 빌 게이츠 및 앨빈 토플러와 더불어-열광적으로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IT 및 인터넷의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서도 영국, 미국, 한국의 '신진보주의(제3의 길)' 세력들은 실리콘벨리의 벤처 왕국과 벤처 캐피탈 천국을 뒷받침한 미국의 월스트리트와 영국 런던이 주도하는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즉 영국 보수당과 미국 공화당이 1980년대부터 추진해온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의 정책과 이론을 이들은 '신진보'의 이름으로 대폭 수용한 것이다.
서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초반 이래 386 세대 전체에서 IT와 인터넷, 탈산업화, 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열광적인 방향 전환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각종 정책들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지식 기반 경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는 도발적 주장을 통해 이 세대의 통념을 무너뜨려 버린다.
나아가 장하준은 영국 신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이 '제3의 길' 노선의 일환으로 주장해온 '사회투자국가' 이론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즉 영국의 신노동당과 미국의 민주당은 경제 성장과 연계되지 않는 노인 및 어린이를 위한 사회복지 예산은 줄이면서(복지국가 축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투자국가'라는 미명 하에 대학 교육 등 학교 교육은 대폭 강화하는 노선을 추구했다(우리나라의 경우 유시민이 그러하다).
이에 대해 장하준은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회투자국가 이론의 비현실성을 비판한다. 특히 그는 대학 진학률이 매우 낮은 스위스의 생산성이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미국·한국 등보다 훨씬 높다는 '스위스 패러독스'라는 테제를 통해, 직업 및 경제 활동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않은 일반 교육의 무조건적 확대만으로는 나라와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밖에도 장하준은 우리나라에서도 진보·개혁 NGO들이 많은 관심과 열성을 가지고 전개해온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날리고 있다. 정부 보조금이 없다면 성공적인 모델로 알려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 역시 고리대금업자로 변신한다는 지적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장하준은 "금융 시장은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는 역설적 테제에서, 서유럽의 금융 허브로 발돋움하여 융성하던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어떻게 글로벌 금융 위기의 와중에서 사상누각처럼 붕괴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기획되어 이명박 정부가 여전히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금융 허브' 정책이, 우리 경제와 국민 개개인을 불안정한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얼마나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장하준이 이 책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 역시 '지식 기반 경제(신경제)' 담론과 '제3의 길' 담론이 없었다면 정책적으로 추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정신과 진보·개혁 집권 플랜
2004년 3월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의 업무가 정지되자 광화문 거리는 수십 만 명의 시위대로 넘실댔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청와대 안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읽고 있던 책은 바로 당시 청와대 경제비서관 권오규(노무현 정부에서 그 후 재정경제부 장관까지 지냈고 한미 FTA도 밀어붙인)가 추천한 영국 보수당 마거릿 대처의 일대기였다.
물론 대통령의 개인적 독서 취미까지 일일이 뭐라고 할 수는 없으며, 당시 노무현은 김훈의 <칼의 노래>도 읽었다고 한다. 문제는 당시의 수십 만 진보·개혁 세력 앞에서,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대통령이 마거릿 대처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한 청와대의 386 참모진의 모습이었다. 2년 뒤 감세 정책과 함께 한미 FTA를 밀어붙이면서 "신자유주의 좌파면 어떠냐?"라고 반문한 노무현의 행동은 한 개인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386 세대 전체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장하준 역시 전형적인 대한민국 386 세대이다. 군부 독재와 경제적 후진이 여전하던 1980년대 초반의 한 개발도상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이다. 그가 쓴 책들에는 그 나라와 그 시대의 고민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의 책들은 식민지 역사와 전쟁의 참화, 그리고 가난한 1950년대와 60년대에 태어나 경제 개발과 정치적 독재가 한참이던 1970년대와 80년대에 학교를 다니면서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한 한 젊은이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아가 그의 이번 새 책은 이제는 개발도상국 딱지를 떼고 선진국을 향해 도약하는 우리나라의 여러 고민고리들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선사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감세냐 증세냐, 제3의 길이냐 복지국가냐 등등의 고민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장하준 교수는 우리나라 386 세대의 잘못된 지향성과 허상들(미국 민주당과 영국 신노동당도 함께 공유하고 있는)에 대해 적극적으로 애정 어린 비판을 가한다. 나아가 향후 한국을 비롯한 영국의 진보·개혁 세력(영국의 신노동당)이 재집권을 구상한다면 어떠한 경제 사상적 기초 위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영국의 <가디언>이 새로 선출된 신노동당 당수에게 장하준과 점심을 하라고 권유한 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하준의 책은 민주주의를 꿈꾸고 사회 정의를 부르짖던 이 나라의 386 세대의 필독서이다. 더 정의롭고 더 공정한 세상을 꿈꾸는 모든 젊은이들과 장년층들 역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넘어설 새로운 시대정신은 G20 회의가 열린 이 나라의 길거리마다 이 책의 독자들과 함께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