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책장을 덮고, 서평을 쓰려니 막상 이 책을 나에게 턱 하니 안겨준 <프레시안>이 참 얄밉단 생각이 든다. 이토록 묘한 만남이 어디 있단 말인가. 20년 전의 해직 교사가 쓴 글을, 20년 후의 해직 교사가 읽고 평을 쓰게 되다니.
결코 얇지 않은 책을 사흘 동안 앞으로 뒤로 읽고, 되새기고, 읊조렸다. 책장 사이사이 눈물도 많이 배었다. 지하철에서 문득 펴들었다가 이내 코끝이 시큰시큰해져 머쓱한 마음에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몰래 소매로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그렇게 이 책,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이상석 지음, 박재동 그림, 양철북 펴냄)는 20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을 살고 있는 나와 마주했다.
2008년 12월, 일제고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했다. 교직 생활 2년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기에 말도 안 되는 징계 앞에서도 기죽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누구보다 더 씩씩하게, 아직 한참 어린 해직 막내니까 '뭘 해도 잘 살 수 있다' 며 호기롭게 여겼다.
그러나 생각보다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수업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던 나였다. 학교에서 모질게 짓밟혀도, 잘 시간 아껴가며 다음 날 가르칠 것 고민하는 순간이 참 행복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과 마음 주던 아이들을 억지로 빼앗겼으니 상처가 없을 리 없었다. 깊은 상처 앞에서 내가 택한 방법은 '도망'이었다. '선생님'으로 살았던 지난 2년 8개월의 세월을 마치 잊어버린 듯 지내는 것.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잊고, 지우고, 벗어나려 발버둥 치며 조금씩 기억은 흐려지고 마음은 무뎌져만 갔다. 그런 그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이 책 앞에서 나는 결코 담담할 수가 없었다. 서평이라는 것은 책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한 평을 조목조목 하는 것인데 나는 도저히 평을 쓸 만큼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 오롯이 나의 이야기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있었던 아이들과의 삶을 오밀조밀 풀어낸 장에서는, '나도 아이들과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혹은 '아, 부럽다! 나도 교실에서 딱 저렇게 해봤으면 좋겠구나!' 하며 공감하고 감탄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이상석 선생님의 교실이 얼마나 따스하고 감동이 넘쳤는지 마치 그 반 아이가 된 듯이 느낄 수 있었다. '교사도 인간이다'라는 말보다 '교육자는 인격적으로 완성되어야만 한다'라는 명제가 너무나 당연시되는 이 사회에서 인간적으로 완성되지 못해 늘 고뇌에 빠져야만 했던. 너무나, 너무나 인간다운 한 교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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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이상석 지음, 박재동 그림, 양철북 펴냄). ⓒ양철북 |
모든 내용들이 그러했지만, 특히 '교사'란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견뎌야 했던 고통의 세월을 담은 장에서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감히 교직 생활 30년의 세월에 견주겠냐마는, 그 짧은 시간 교사로 살면서도 그 아픔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선생 해보겠다고 제 시간 아껴가며 수업을 고민하고 교실 삶을 꾸려보아도 그 꿈은 이 땅의 교육 현실 앞에서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입시 외에 다른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 경쟁 교육,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는 교사를 향한 동료 교사들의 질시어린 눈빛, 권위로 찍어 누르려고만 드는 교장의 모습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꼭 같은 틀로 찍어놓은 것 마냥 그대로다.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이며 억압적이고, 보수적이고, 권력에 휘둘리는 교육 현장에서 발버둥 치며 마지막으로 남은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려는 처절한 노력 앞에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잘 살아보겠다며 뭐든 해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고작 2년 8개월을 채워먹은 나는, 무겁기 짝이 없는 현실에 짓눌려 지치고 길들여져 갔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현실은 너무나 무거웠다. 작게는 동료 혹은 선배 교사들의 시디 신 눈초리부터, 뼛속까지 스며드는 외로움, 크게는 이놈의 엉망진창인 교육 정책까지.
자꾸 작아지려고만 하는 자신을 단단히 붙잡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 나에게 있어 일제고사와의 싸움이었다면, 이상석 선생님 앞에는 '교육 민주화'라는 어마어마한 짐이 놓여 있었다. 해직의 생살 찢어지는 고통, 그리고 복직을 위한 기나긴 어둠의 시간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 할까. 일제고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국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부를 돌아다닐 때마다 해직 교사인 우리들을 보면 누구보다 먼저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던 이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건강 꼭 지켜야 합니다"라며 어깨를 토닥이던 사람들. 1989년 그 지옥 같은 나날을 온몸으로 겪으며 그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
해고자 단결 투쟁을 위해 명동성당 앞에서 1000여 명의 동지들과 어깨를 걸고서 참교육을 부르짖으며 나아가던 그 뜨거운 순간. 유치장에 갇혀서도 모여 앉아,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를 노래를 부르며 목이 메었던 순간. 그 순간의 기록들을 읽으면서는 다시 한 번 '전교조' 의 존재 이유에 대해 되새겨 보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뜨거운 마음으로 태어난 조직이던가.
누군가는 '전교조는 변했다' 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참교육과는 멀어졌다' 고 말하지만 그 20여 년의 세월동안 이끌고 지켜온 것은 이 뜨거운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또 다른 누군가의 뜨거움 아니었던가. 무엇 하나 얻는 것도 없으면서 '빨갱이' 소리 들어가며 해직의 공포를 끌어안고서도 밑바닥에서 잘 살아보려 노력하는 한 명 한 명의 교사들의 힘 아니던가. 어쩜 이렇게 전교조를 둘러싼 현실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가. 이런저런 생각 와중에 또 한 차례 해직을 앞둔 300여 명의 동료 교사들이 떠오르자 그저 한숨만 새어나올 뿐.
책을 다 읽은 뒤, 나는 다시 한 번 앞 장을 펼쳐 책의 앞머리에 실린 이상석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았다.
"아! 그러나 솔직히 말합시다. 돌아간들 무얼 가지고 즐겁게 삽니까? 무슨 일에 열정을 바칠 수 있습니까? 아이들과 내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20분도 안 됩니다. 쉼 없이 돌아치는 자습, 수업, 시험, 학원, 야자, 특강….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수업, 수업도 문제 풀이 수업뿐입니다. 언제 아이들과 삶을 나눌 수 있습니까."
눈물과 감동이 있던 그 시절 이야기, 20년 전의 이야기. 지금보다 더 거센 억압 속에서도 사람 사는 재미가 그대로 살아있던 그 교실의 이야기가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꼭 다시 돌아가 그런 수업을, 그런 감동을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은, 과연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감동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교사들의 학력은 더욱 높아지고 아이들의 형편도 예전보다 나아졌다지만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삭막하다 못해 정이라고는 바싹 말라버린 요즈음인데.
야성을 가진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상석 선생님의 말씀이 고스란히 가슴에 와 박혔다. 반항할 줄 모르는 아이들, 눈빛이 이미 죽어있는 아이들, 수업 시간을 '때워야 하는 시간' 으로 아는 아이들, 배우고 익히는 데 뜻이 없는 아이들, 혹은 배우고 익히는 것을 그저 기계적으로 점수 내는 것으로만 아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앞에서 나날이 무너지는 자존심을 부여잡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것으로 족한 교사들….
해직된 지 2년이 지났다. 첫 재판에 이어 항소심도 승소하면서, 복직에 대한 희망도 점점 부풀어만 갔다. 곧 교실로 돌아가리란 기대에 머릿속에 돌아가면 아이들과 할 많은 일들도, 교실의 모습도 떠올려보곤 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거듭 꺾여만 갔고, 결국 재판은 승소임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진보 교육감의 당선에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제고사 싸움과 교원평가제, 엉망진창으로 바뀌어 버린 교육 과정과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물결 속에서 만일 당장 학교로 돌아간다 해도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또 지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거리로 내쫓길지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결코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만나고 싸워야 할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 긴 싸움의 길에 지칠 때, 몇 번이고 이 책을 펼쳐들고 읽어야겠다. 사랑과 감동이 넘치는 교실을 되찾기를 간절히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