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권력이다. 울리히 렌츠가 쓴 <아름다움의 과학>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한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아름다운 이성 앞에서는 지나치게 배려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헌신하며, 바보처럼 유치하게 군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외모 차별, 동안 선호 등을 루키즘(lookism)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 남과 여, 아름다움과 젊음을 얻기 위해 무엇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페이스 오프>란 영화도 있었지만, 연녹색 빛깔의 화사한 소설을 집어 들고 무심히 제목을 생각해 보니, 기가 막혔다. <페이스 쇼퍼>(자음과 모음 펴냄). 일명 얼굴 쇼핑. 즉 성형으로 이 얼굴 저 얼굴 원하는 얼굴로 바꿀 수 있는 시대. <비포 앤 애프터> 라는 성형을 소재로 한 드라마처럼 칙릿 작가 정수현의 세 번째 작품은 성형을 소재로 한 달콤 살벌한 이야기이다. 즉, 욕망의 편의점 <페이스 쇼퍼>에 가면, 거기 멋진 가면 하나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 <페이스 쇼퍼>(정수현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1인칭 내레이션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의 화자는 바로 청담동에서 성형외과를 개업한 정지은. "고소영의 눈, 한가인의 코, 김희선의 얼굴형, 김혜수의 가슴, 이효리의 잘록한 허리를 갖고 싶어요"라고 하는 게 "뭔가 크고 시원하면서도 섹시한 고양이 같은 매력이 느껴지고 절대 질리지 않는 눈으로 부탁드려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낫다는 게 지론인 미모의 성형외과 의사이다.

그녀의 병원, '란 성형외과'를 닳도록 넘나드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머님 날 낳으셨고 성형외과 선생 날 만드셨으며,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되 성형외과에서 부활한다. 섹시한 곡을 부를 때는 도발적인 얼굴로, 청순한 역할을 맡았을 때는 천사의 마스크를. 곡마다 배역마다, 상대 배우마다 선보는 남자가 달라질 때마다 가면 바꿔치듯 얼굴을 뜯어 고친다. 그녀들에게 보톡스는 신이 내린 회춘의 비액이고, 한마디로 라생라사, 라인에 죽고 라인에 사는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미혼 여성으로서 작가는 젊은 여성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어떻게 긁어 주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문체는 감각적이고, 스토리텔링은 흡인력이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쁘띠 성형, 배꼽 내시경, 가슴 성형 수술, 악센트 PPC, 코 필러에서 성형 부작용까지 첨단 성형 정보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당의정에 쌓여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성형의 부작용이나 성형의 무의미함, 성형 받는 사람들의 심리를 세심하게 배치하여 성형에 대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든다.

특히 주인공의 어머니이자 배우인 50대 이해정을 둘러싼 성형에 서서히 중독되어가는 여배우들. 서로의 미모를 질투하고 그 비법을 알아내려 경쟁하는 40대 여배우 고보경, 20대 여배우 주혜나의 스토리 라인은 아름다움의 획득이 좋은 남자 혹은 좋은 가정 같은 구시대적 유물을 쫒는 것보다, 지극히 현실 타당한 계급 상승의 동력을 갖는다는 것을 한 눈에 헤집게 한다.

게다가 두통약과 수면제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딸 정지은에게, 그녀의 엄마 이해정은 황당하게도 재혼 기념으로 가슴 수술을 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해정은 내 얼굴과 몸을 만들었고, 나는 이해정의 얼굴과 몸을 만들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닮은 구석이 사라지는 모녀"라는 대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작가는 저마다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에 머무르며 어떤 소통도 할 수 없는 현대 가족의 파열음도 숨겨 두었다.

여기에 회춘을 위해 중국에 까지 가서 젊은이들의 피를 수혈 받았다는 강남 부유층의 피 세탁 이야기나, 자신의 피를 뽑아 혈장만 채취해서 다시 자신에게 주입하는 피 성형 과정이 곁들여 지면서, 왠지 2010년 강남의 성형 왕국에는 뱀파이어적인 분위기까지 물씬하다. 600명의 처녀를 살해해 그 피로 목욕을 하여 젊음을 유지했다는 16세기의 악녀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이야기를 반주삼아 책의 전반부는 와인, 피 성형, 피 세탁의 삼중주가 차가운 금속성의 수술대 위에 흥건하게 고여 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 이다. 칙릿 소설답게 <페이스 쇼퍼>는 더 이상의 사회 비판이나, 더 이상의 위험한 상상력의 늪에 빠지려 들지 않는다. 정지은의 성형외과 옆에는 소아과가 들어오고, 소아과를 하고 싶었던 성형외과 의사와 성형외과 의사를 하고 싶었던 소아과 선생은 점차 티격태격 사랑에 빠져든다. 영화 <니키타>를 보고 여주인공을 흉내 내어 지은이 누군가와 똑같이 장을 보면, 그 뒤에 소아과 선생이 어느 새 다가와 그녀의 장바구니를 내려다본다. 한마디로 <미술관 옆 동물원> 대신 <성형외과 옆 소아과>라는 영화 한편을 찍을 수 있을 정도이다.

두 사람의 가슴 아픈 과거, 트라우마라 불리우는 과거 사건은 독자들의 마음을 베는 법이 없이 친절하고 달콤하게 러브 라인을 돋보이는 장식이 된다. 착한 여성들을 꾀어 브로커 노릇을 하는 '시크릿 성형 카페'라는 인터넷 사이트와 연관된 비리와 음모 역시 '착한 사람은 더 착하게, 나쁜 사람은 더 나쁘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페이스 쇼퍼>는 시절에 민감하고 유행에 발랄한 재기가 넘치지만, 여기에 신경숙을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드는 것은 명백히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로 예쁘고, 최고로 지적이고, 최고로 좋은 남자를 만나 최고로 부유한 직업 여성이 되는 것. 이 불가능한 꿈의 화신으로 오늘도 수많은 페이스 셀러 정지은이 성형외과를 열고, 수많은 페이서 쇼퍼 처자들이 시크릿 카페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주)성형외과의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가.

성과 계급, 미모와 권력이 동반상승 레이스를 펼치는 오늘, 한 여자가 얼굴의 창조주로 시작하여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 가는 성장소설이기도 한 <페이스 쇼퍼>는 2010년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의 비밀스런 욕망에 대한 진단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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