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복지 국가에 관해 누구나 읽을 만한 책이 나왔다.

항상 펜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한겨레> 이창곤 기자가 새로운 책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사회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가 <어떤 복지 국가에서 살고 싶은가>(이하 <어떤 복지 국가…>)(밈 펴냄)를 쓰고 엮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복지 국가에 관한 '대중적 눈높이'의 책을 표방한다. 그리고 복지 국가의 '실체를 매만질 수 있는 책'이 되길 원한다.

<어떤 복지 국가>는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듯하다. 이 책은 복지 국가의 이론, 개념, 유형을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서 발전한 한국 복지 국가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소개한다. 상아탑의 학자들뿐 아니라 현실 정치에 참여한 정책 결정자들의 입에서 잊힌 진실을 묻는다. 세계 복지 국가의 다양한 역사에서 한국 복지 국가의 새로운 방향에 이르기까지 실천적 과제와 씨름한다.

지금은 복지 국가의 전성시대인가?


▲ <어떤 복지 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 대한민국 복지 국가 논쟁>(이창곤 지음, 밈 펴냄). ⓒ밈
한국의 역사에서 '복지 국가'는 뒤늦게 등장했다. 1880년대 독일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 제도가 탄생한 후 20세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서유럽 나라에서 복지 국가가 발전한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 늦었다. 한 때 1980년대 전두환 군사 정부가 '복지 사회'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당해하거나 외면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수많은 진보 담론이 등장했지만 '복지 국가'가 진보 진영의 목표가 된 적은 없었다. 어쩌면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야말로 본격적으로 복지 국가에 대한 관심이 확산된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만 다루어졌던 용어들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복지 국가가 한국 정치의 대세이다. 노회찬부터 정동영, 천정배, 그리고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모두 복지 국가를 말한다. 그런데 대체 어떤 복지 국가를 가리키는지 불분명하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복지를 외치기는 하지만 구체적 정책과 프로그램에서는 사뭇 생각이 다른 듯하다.

특히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노무현 정부의 '사회투자국가'는 서구의 복지 국가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최근에 등장한 '역동적 복지 국가'(정동영), '정의로운 복지 국가'(천정배), '3차원 복지 국가'(노회찬)는 또 어떤 것인지 혼란스럽다. 이창곤 기자의 책 <어떤 복지 국가…>는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이런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해준다.

어떤 복지 국가?

이창곤 기자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집권기를 "복지가 비약적 발전을 이룬" 시기이며, 복지 국가의 "토대를 형성한 시기"라고 평가한다. 그러면 앞으로 한국 복지 국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떤 복지 국가…>를 보면 진보 진영이 제시한 복지 담론의 최대공약수는 '보편적 복지'이다. 미국처럼 빈곤층 지원에 집중하는 복지 국가보다 스웨덴과 같이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를 제공하는 복지 국가를 선호한다. 이 책의 필자로 참여한 고세훈 교수, 신광영 교수, 이태수 교수, 문진영 교수 등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러나 '적극적 복지'에 대한 견해는 약간 다르다. 이상이 교수(역동적 복지 국가)와 신동면 교수(정의로운 복지 국가)는 적극적 복지를 지지하는데 비해,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일자리 공유와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노동 연대'를 주장한다. 이는 1990년대 후반 프랑스 조스팽 정부가 제안한 정책과 유사하다.

1990년대 후반 이래 '적극적 복지'라는 용어는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개념은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재분배를 강조하는 전통적 복지 국가를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사회투자국가'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와 복지 사이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사회투자국가라는 용어가 보편적 복지의 이념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과연 그런가?

원래 인적 자본과 적극적 복지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나라는 스웨덴이었다. 1930년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이론가이자 노벨 경제학자 수상자였던 군나르 뮈르달은 노동 생산성의 증가를 위해 '인적 자본'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 스웨덴에서 시작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도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기 위한 교육과 직업 훈련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복지 국가의 역사는 자본주의를 거부하기보다 자본주의를 합리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과정이다. 실제로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대대적인 국유화 방안을 포기한 것은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다.

스웨덴 모델의 역사적 진실을 찾아서

1990년 덴마크 출신 사회학자 에스핑-안데르센은 <복지 자본주의의 3가지 세계>를 출간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복지 체제를 사회민주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서는 <불평등의 경제학>의 저자 이정우 교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251~252쪽).

이 가운데 스웨덴은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 유형으로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은 사회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탈상품화가 가장 발달된 복지 제도를 채택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수당을 도입했으며 가장 평등주의적 국가로 꼽힌다. 최근까지 스웨덴의 보편주의적 복지 국가가 무너진다는 아무런 조짐도 없다. 고용 확대, 재정 압박, 사회적 형평성이라는 3중 모순(trilemma)을 가장 효과적으로 잘 대처하는 나라는 스웨덴이다.

그러나 고정불변의 스웨덴 모델은 없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스웨덴 모델의 끊임없는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1990년대 경제 위기 이후 스웨덴은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하고 상속세와 부유세를 폐지했다. 또 복지 국가의 관료화와 중앙 집중화를 막기 위한 분권화가 추진되었다. 실업 급여 지급 기간과 임금대체율도 약간 낮아졌다. 스웨덴은 독립 학교를 만들어 학교 선택권을 확대했다.

그러나 2010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은 소득세와 사회 보장성 기금 인상을 내걸었지만 참패하고 말았다. 세금 인상을 꺼려하는 중산층이 등을 돌린 것이다. 전통적인 스웨덴의 고부담-고수익 모델은 한계에 부딪힌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는 <어떤 복지 국가…>에 소개된 최연혁 남스톡홀름 교수와 이영 스톡홀름 대학교 연구원의 글에 담겨있다.

한국에서 복지 국가 만들기에 성공하려면?

<어떤 복지 국가>의 백미는 이창곤 기자가 마지막에 쓴 '한국형 복지 국가의 조건과 과제' 제하의 글이다. 그는 대안 국가와 대안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 정책, 주체를 고민한다. 그는 복지 국가가 "서민의 고통을 풀어주는 장치"이며 "진보 진영 집권의 유력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전혀 놀랍지 않게 그는 복지 국가의 최대의 관건은 조세 개혁이라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서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조세 부담율과 복지 재정 비율은 매우 낮다. 그러나 증세냐 감세냐 이분법의 논리를 회피한다. 오히려 진보 진영이 제기해온 사회복지세와 부유세를 놓고 신중한 태도를 주문한다. 대신 간이 과세 제도 폐지, 금융소득세 인상 등 조세 개혁을 통해 세원을 확대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가 오히려 개인들에게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정치적 지지를 고려하는 정교한 조세 정책을 요청한다.

복지 국가를 추진하는 정치적 주체에 대한 고민은 더욱 진지하다. 1936년 노동조합, 기업, 정부 3자의 타협을 통해서 만든 스웨덴 복지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비교하면 사실 한국에는 복지 국가를 추진할 노동조합도 진보 정당도 친복지 세력도 취약하다. 스웨덴처럼 노사 타협의 전통도 없다.

그러나 모든 국가에서 복지 국가가 발전한 경로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복지 국가를 추진한 세력은 1880년대 비스마르크 총리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이었으며, 영국에서는 1910년대 로이드 조지 총리 등 자유주의 정치인들이었으며, 미국에서는 1930년대 뉴욕의 부유층 출신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이었다. 세계 역사를 두루 살펴본 후 이 책은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해 복지 정치를 주도할 시민사회의 복지 연합과 진보·개혁 정당의 선거 연합을 제안한다. 한국적 복지 국가 모델이 필요하듯이 한국 현실에 맞는 정치 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복지 국가를 넘어서

모든 책이 다 완벽할 수 없듯이 이 책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진정으로 서구 복지 국가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단순하게 서구 복지 국가의 장점만이 아니라 오류와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구 복지 국가가 어떻게 중앙 집중제, 하향식 통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유연 안정성을 강조하는 덴마크의 활성화 방안을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국가는 사후에 빈곤에 대응하기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르마티아 센이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강조했듯이 일시적인 현금 급여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복지가 더 중요하다.

다음으로, 개인의 권리만큼 책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1950년 영국 사회학자 토마스 마샬이 <시민권과 사회 계급>에서 지적한 대로, 복지 국가의 발전을 보면 국가 권력의 확대보다 시민권의 등장이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영국 복지 국가의 발전에서 공민권, 정치권, 사회권을 포함한 시민권(citizenship)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시민권은 개인의 권리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도 요구한다. 모든 시민은 세금을 납부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역할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특히 고용은 시민권의 필수조건이다. 복지 국가는 의존이냐 자립이냐 이분법이 아니라 상호의존의 문화를 강조한다.

에스핑-안데르센이 <21세기 새로운 복지 국가>에서 강조하듯이, 전통적 복지 국가는 남성 중심적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가족이 직면한 새로운 위험 구조가 등장하면서 일하는 엄마들은 가정과 직장의 양립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양성 평등과 새로운 성 계약을 요구하는 투쟁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이다. 일찍이 1930년대 군나르 뮈르달 부부가 여성 친화 정책을 주장했듯이, 새로운 복지 국가는 취업모에 대한 공적 지원, 일자리 공급, 임금 격차 해소, 모성 보호를 추구하는 여성 친화적 복지 체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복지의 궁극적 목표는 경제적 만족이 아니라 행복의 추구이다. 영국의 공리주의자들처럼 복지를 단순하게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제도로만 본다면 매우 일차원적 복지 국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이 책의 앞에서도 밝혔듯이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적으로 밑바닥이다. 물질적 성공과 정신적 실패의 모순은 한국 사회의 한계이다.

서구의 복지 국가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가 <승자독식사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더 많이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을 만들지는 못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경제 성장에 의존하는 복지 국가도 미래가 없다. 앞으로 새로운 복지 국가는 물질적 복지를 넘어 환경 보호와 정신적 차원의 안녕을 함께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공백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복지 국가를 위한 정치 전략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창곤 기자의 통찰력과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알기 쉽게 쓴 <어떤 복지 국가…>에 이어 복지 국가 논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다양한 새 책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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