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부터 성장 소설, 청춘 소설류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 한 흐름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2008년)에서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년)로 이어지는, 지나간 젊은 날에 대한 낭만적 회상의 이야기들이다.

이와 더불어 김려령의 <완득이>(2008년)로 시작된 청소년 문학의 흐름, 곧 청소년 세대의 감수성과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하고자 하는 또 다른 성장 이야기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두 흐름을 하나로 합쳐 놓은 듯한 은희경의 신작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 펴냄) 역시, 2010년 말 출판 시장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입시 지옥과 취업난으로 '성장의 대업'은 아득히 멀기만 하고 '빛나는 청춘'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성장 소설/청춘 소설의 인기는 무척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이런 현상에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이 뒤엉켜 있다. 한편에서는 젊은 세대가 처한 답답하고 출구 없는 현실에 대한 근심과 연민이 깊어져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돌 문화와 '동안 신드롬'으로 대표되는 젊음에 대한 동경과 예찬이 흘러넘친다.

청소년을 교육과 계몽의 대상으로 다루는 대신에 청소년들 자신의 이야기로 거듭나야 한다는 청소년 문학의 온당한 요구는 청소년이라는 새로운 소비자층을 발굴하고 이들을 타깃으로 삼는 마케팅 전략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최근 성장 소설들이 주는 '위로'의 힘은 어쩌면 다음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이 시대가 잃어버린 젊음을 '향수'로 재생산하여 소비하거나, 젊은 세대가 겪어야만 하는 지독한 현실을 '즐길 만한' 이야기로 변형하거나.


▲ <소년을 위로해줘>(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확실히 위로가 되는 성장 소설이자, 세련되고 트렌디한 읽을거리이다. 소설 속 'G-그리핀'의 랩처럼 섬세하고 솔직한 열일곱 살 연우의 이야기는 내 안에도 들어 있는 '소년'의 감수성, "모든 불완전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경계인과 아웃사이더로서의 내면"을 건드린다.

힙합과 그래피티로 표상된 하위문화적 감수성은 "시스템 안에 들어가기를 포기한 사람"이 걸어야 하는 '마이너의 길'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그 길은 이혼녀이자 옷 칼럼니스트인 연우 엄마 신민아 씨, 여덟 살 연상인 그녀를 애인으로 둔 문화평론가 재욱 형, 그리고 작사가 '노랑머리 깡'으로 자라난 연우 자신이 감당해야만 하는 길이다. "시스템의 보호를 받기 위해 거짓으로 살아가는" 대신, 불안하고 외로워도 당당하게 자기다운 삶을 만들어가려 하는 이들의 모습은 사실 꽤 매력적이다.

"혁명이란 내가 나일 수 있는 세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더 이상 비겁해질 필요도 없는 세계"이며, 그런 세계가 정말 가능하다고 하는 이 소설의 메시지는 얼마나 마음 편하고 듣기 좋은가.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거나 '시스템 안'에 들어가려 안달하지 않고 자기 식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러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시스템은 훨씬 더 폭력적이고, 거기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생존 그 자체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우리에겐 쿨하게 '바깥'을 선택할 권한이 없으며, 그럼에도 언제든 울타리 바깥으로 밀려나고 배제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현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그려내는 '마이너의 길'은 별로 위험하거나 고달파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시스템 안'에 있으면서도 남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일지 모르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란 CF에나 등장할 법한 개성 있고 자유로운 삶의 이미지에 가까울지 모른다. 신민아 씨와 연우의 대화에서 무심결에 드러나듯,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우아하고 능력 있는 '한량'의 삶이랄까.

"연우야, 내가 바라는 너의 미래는 말야, 한량이야. 한량이라고? 응. 그거 어려운 거 아냐? 쉽진 않지. 돈 안 벌고 놀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우선 돈을 버는 방법부터 익히는 게 한량이 되는 첫걸음일 걸. 열심히 돈이나 벌어야 한다면 그게 무슨 한량이야? 왜 열심히 벌어, 쉽게 벌어야지. 쉽게, 어떻게? 실력이 있으면 돈 쉽게 벌어. 실력을 쌓으라는 건 결국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 꼭 공부 얘기는 아니고. 그럼 공부 안 하고 실력 쌓는 게 뭔데?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지. 거기서부터는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

이런 식이라면, 시스템에 충실한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년을 위로해줘>는 '마이너의 길'과 '마이너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메이저의 감수성'에 바탕을 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이 독자들을 조금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 '소년'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안락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테고 말이다.

채영, 태수, 마리와의 관계에서도 주인공 연우의 삶은 치명적으로 상처받는 일 없이 안전하게 보인다. 첫눈에 반한 소녀 채영은 연우를 만나기 전이나, 3년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이후나, 오직 한결같이 연우만의 운명적인 첫사랑으로 존재한다. G-그리핀(선배 민기훈)의 그림자가 둘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긴 하지만, 그건 단지 부질없는 오해였을 뿐이고, 채영은 한 순간도 연우를 배반하거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채영과 달리 '남자들의 로망'이 될 수 없는 캐릭터인 마리가 연우의 마음을 조금도 흔들어놓지 못하는 건 물론이다. "시스템이 틀렸을지도 모르잖아요", "잘못된 게 있으면, 그런 건 바뀌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 아녜요?"라는 마리의 목소리 또한 어느 결에 흐지부지 지워져버리고 만다.

소설 전체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인 태수의 죽음조차도, 의외로 담담하게 처리돼 있다. 태수의 죽음은 '인트로'에서부터 일찌감치 예고돼 있고, 못 말리는 '보이 기질'이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처럼 묘사돼 있어, 독자에게도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장(히든 트랙)에서 이 죽음이 연우의 입을 통해 "네가 이겨내지 못한 단 한 번의 충동과 잘못된 판단, 그것만으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행동하기 전에 그걸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정리되는 장면은 무척이나 씁쓸하기도 하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전형적인 성장 이야기들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지만, 지금의 트렌드와 감수성을 적절히 배합하여 신선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세상이 그렇게나 끔찍하진 않으며 네 멋대로 살아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메시지는 '소년'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고, 우리 모두가 "낯선 우주의 고독한 떠돌이 소년"이라는 말은 '어른'들에게도 향수어린 만족감을 제공한다.

그러면 됐지, 더 이상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매력적인 성장 소설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지 의심하는 독자들에게 <소년을 위로해줘>는 이 시대 성장 소설이 지닌 모순과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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