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 송년호(21호)는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 서평위원이 의견을 모아서 선정한 두 권의 '올해의 책'(<삼성을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외에도 8명의 서평위원이 나름대로 선정한 '나의 올해의 책'을 별도로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이 책, 그러니까 앨버트 허시먼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읽을 필요가 없다. 당신이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분노하는 한 말이다.
왜 분노하는지 알 만하다. 이념이 다르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다르더라도 대화와 토론 그리고 논쟁을 통해 사유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고, 책에 그리 나왔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살면서 토론은 고사하고 대화가 되는 보수를 만나보지 못했다.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몽니 부릴 줄은 알아도, 보수라는 간판을 내걸고 저질렀던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논리적 근거를 들어 반대파를 설득하려는 관용을 확인해본 적도 없다. 도대체 이 나라에 보수가 어디 있느냐, 수구라는 말도 반드시 꼴통이라는 말고 합쳐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보수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만 해도 지긋지긋한데, 그 지배의 논리를 확인하려는 책을 읽어 필요가 무에 있겠는고. 아니, 그들에게 논리라는 게 있기나 한 걸까. 분명히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이 책, 안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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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앨버트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웅진 지식하우스 |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나라의 보수에서 무슨 독창성과 자율성을 엿볼 수 있는가. 자유주의를 주창하시고, 한동안 수세에 몰리다 신자유주의를 창안하시사 세상을 다시 멋지게 지배하는 논리를 만들어낸 집단이 있지 않은가. 미국산이면 어떻고 일본산이면 어떻던가. 마구 들여야 이리저리 짜깁기하고, 침소봉대하고, 왜곡 확산하여 지금껏 지켜온 것을 한 톨도 손아귀에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 여겨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류를 보고 한탄하지 말고 본류의 논리를 알아두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법. 보수의 논리적 토대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를 격파할 날카로운 저항의 논리를 벼리고 싶은 당신은, 그러니, 그 보수의 수사를 명쾌하게 파헤친 이 책, 읽을 필요가 있다.
머리 아프게 논리 싸움을 해서 무엇하느냐고 여기는 당신은, 반성해야 한다. 흔히 이념이라 말하는 것이 먼저 사람들의 정신을 장악해야 비로소 현실을 지배할 수 있는 법이다. 아니라고?
막스 베버부터 읽어보라. 늘 현실에서는 판판이 지면서 도덕적으로 보수를 무시만 해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침투하라,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논리의 구조를 정확히 인지하라. 그러고 나서 내파하라.
이 책이 바로 그 길로 이끄는 훌륭한 안내서다. 그러니,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될 만하지만,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올해의 책이 되지 못한 책이라 칭찬받을 만하지 않은가.
당신에게 해주는 귓속말 한마디. 적어도 이 책의 분량은 독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만하니, 지금 읽는다면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안에 다 읽을 수 있을 터다. 그러니, 올해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