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투병중인 딸을 면회하고는 채 서있지도 못하시던 엄마는 집에 돌아와 기르시던 화분에 물을 주십니다. 잠시 손길이 미치지 못한 새에 연약한 생명들이 말라버릴까 엄마는 잰 걸음으로 물을 길어 나르십니다. 젊은 주제에 기운이 빠져 널브러져 누워서는 그런 엄마를 보며 마음속으로 생명이라는 말을 되뇌어 봅니다. 위태로운 생명을 보살피려는 저 작은 손길, 잰 걸음, 그 안타까운 마음자리가 바로 생명을 낳고 기르는 존재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선생님이 '엄마의 말뚝'이라는 화두를 통해서 평생 되뇌셨던 그 물음에 대해서 저도 다시 곱씹어보았습니다. 문득 '엄마 노릇에 대한 선생님의 평생에 걸친 질문이 결국 작가의 자리, 혹은 작가 노릇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구나'라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선생님을 뵙고 돌아와, 투병 중인 언니의 침상 곁에서 <엄마의 말뚝>을 떠올렸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삶의 고비마다 <엄마의 말뚝>을 꺼내보고 곱씹어보는 일이 제게는 삶의 버릇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 며칠은 다른 날들과는 다른 의미로 <엄마의 말뚝>을 펼쳐보게 되었지요. 선생님을 보내고 나서, 그 빈자리를 매만지는 심정이랄까요. 선생님을 잃은 상실감을 되돌아볼 틈도 없이 원고 청탁 전화벨이 울려댑니다.


ⓒ프레시안(손문상)
애도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진대, 마감 시간은 애도의 시간을 갉아먹는군요. '지금 시점에서 글을 써야하나' 마음속에 망설임이 듭니다. 그러나 원고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선생님을 잃은 상실감에 대해 원고를 쓰는 일은 애도의 작업일까 직업의식일까 자문해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일인지라 지금 글을 쓰는 나의 행위는 과연 무엇일까, 그 윤리적 자리에 대한 물음이 떠날 수 없게 되네요. 그렇지요? 선생님이 평생 작품을 통해 글쓰기의 윤리적 자리에 대한 고민을 묻고 또 물은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을 쓰는 이의 노릇이라는 것이 바로 죽음이나 삶과 같은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는 일이면서도 그저 한갓된 직업의식에 불과한 일이 되어버릴 수 있는 위태로운 자리라는 성찰 말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 혹은 작가의 노릇이란 신성함과 속됨 사이를 어렵사리 연결하고, 오고가는 것이겠지요. 소설뿐 아니라 산문까지 다양한 선생님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선생님 작품에서 세속의 속내를 속속들이 파헤치는 날카로운 포착력에 감탄하면서 그 날카로움 뒤에 존재의 비의라던가 운명이라던가 하는 어떤 신성한 울림을 느끼게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참, 산문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니, 전집 문제로 선생님과 이러저러 논의를 주고받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선생님 에세이들이 너무 이리저리 흩어져있고, 또 다소 홀대받고 있는 점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많은 남성 작가의 전집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에세이가 함께 수록되어서, 그 작가의 작품 세계나 작가 인식 같은 것을 살펴볼 때 에세이가 참 중요한 참고 대상이 되고 있죠.

헌데 여성 작가의 경우는 별로 그런 경우가 없는 게 항상 아쉬웠답니다. 특히 선생님의 에세이는 한국의 여러 남성 작가들의 에세이와도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스스로는 에세이는 그때그때의 생각들을 쓴 것이 대부분이라 다시 모으면 그 소용이 다소 떨어진다고도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바로 그런 점이 선생님 에세이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에세이는 그때그때의 삶의 풍경이나 당대성이 너무나 강렬하게 담겨있어서, 어떤 자료보다 당대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전해주는 중요한 텍스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답니다.

물론 언제나 그 시대의 삶의 한복판에 서있는 그런 '현역 의식'이야말로 한국문학사에서 그 누구도 점한 적이 없는, 선생님만이 오롯이 만들어 오신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언제나 '나는 항상 현역 작가다'라는 의식을 투철하게 실천해 오신 선생님의 작가로서의 삶의 이력이야말로 한국문학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발자취라 할 것입니다.

누군가 "한국 작가들은 20대에는 낭만주의자, 30대에는 현실주의자, 40대에는 자연주의자가 된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지요. 또 한국 작가는 요절 아니면 변절이라는 어떤 분의 나름 '유명한' 코멘트도 있었지요. 물론 한국문학의 역사가 이렇게 표현될 수는 없겠지만, 이런 표현들이 나오게 되는 맥락이 아주 없지는 않지요. 사람마다 다소 편차가 있다고 할지라도 선생님처럼 등단 이후 줄곧, 그리고 삶의 마지막까지 현역 작가로 활동하고 독자에게도, 비평가에게도 사랑받은 작가는 선생님 이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나오기 참으로 힘들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작가가 더 많이 나와야만 한국문학이 더 풍성해지겠지요.

그래서일까요. 선생님처럼 연세가 드실수록 문학적 평가가 더 높아지는 작가가 그렇게 많이 계셨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1970년대나 1980년대 비평가들이 선생님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오늘날의 비평가들의 태도는 조금은 다른 것도 있지요. 특히 선생님이 '여류작가'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이즈음의 선생님 작품의 애독자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제 또래의 글 쓰는 여성들은 선생님이 만들어놓으신 작가로서의 자리 덕택에 글 쓰는 여성으로서의 길이 훨씬 든든했지요. 글 쓰는 여성으로서 제가 성장해온 모든 길에 선생님이 동지로서 징검다리가 되어주셨듯이, 이 땅의 모든 글 쓰는 여성들에게 선생님은 크나큰 동지이셨지요. 제가 선생님 작품에 대한 비평에서 감히(어떤 점에서는 외람되지만) 선생님을 "그녀"라고 지칭하기를 즐겨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동지애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지요.

선생님의 이런 동지애는 단지 생물학적인 여성에 대한 것만이 아니죠. 선생님이 어느 글에서 표현하신 것처럼 선생님은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시니까요. 그렇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손쉽게 굴러갈 바퀴가 없는 이들,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위태로운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줄 바퀴가 없는 이들, 선생님은 기꺼이 이들의 편이 되어, 그 위태로움과 안타까움에 함께 해주셨지요. 그래서 선생님의 작품에는 언제나 그런 죽음에 맞선 위태로운 싸움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곁에서 함께하는 이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많은 글에서 그렇게 사투를 벌이는 생명의 곁을 지키는 작가 노릇의 기원이 개인적인 경험, 특히 한국 전쟁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하셨죠. 우리는 박완서라는 한 특별한 작가를 통해서 한국 전쟁이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우리 삶에 어떤 의미로 현재형으로 작동하는가, 혹은 한국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한국사회라는 것을 탐구하는 근원적인 시각이 될 수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선생님은 한국 전쟁에 대한 천착을 통해서 역사 해석이나 사회비판적인 시각만을 제시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에 대한 천착은 죽음에 대한 탐구, 아니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권리에 대한 사유로 이어졌지요.

그래서 박완서라는 작가의 자리는 언제나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권리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존재한 것이지요. 인간은 삶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곤 하죠. 그렇다면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권리란 무엇일까요. 평화롭게 죽을 권리,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죽을 권리, 부당한 권력에 의해 학살당하지 않을 권리,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정당한 권리. 바로 이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야말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근원적인 주권이라는 것이 선생님께서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남기신 소중한 전언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잃었을 때, 그 상실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죽음의 존엄함에 대해서이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애도는 시작될 수 있겠지요.

선생님을 상실한 이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저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애달파하는 것만으로는 그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그것이 선생님이 평생에 걸쳐 저희에게 전한 애도에 관한 전언이었지요. 그래서 저 역시 선생님을 상실한 것에 대해 단지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만은 안으려합니다. 문득 <엄마의 말뚝> 첫 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지요. "어머니는 아직도 투병중이시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생님 작품의 어떤 대목들은 인생의 어떤 순간이 아니면 그 진의를 생각 못하고 설핏 넘어갔다가, 바로 인생의 어떤 순간에야 비로소 그 문구나 표현, 혹은 감정의 깊은 속내를 깨닫게 되곤 합니다. 제게는 오늘 바로 이 문구가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투병중이시다." <엄마의 말뚝> 첫 편의 마지막 문장을 왜 이렇게 마무리하셨는지 이제야 비로소 거기에 생각이 미치게 되는군요.


▲ <엄마의 말뚝>(박완서 지음, 세계사 펴냄) ⓒ세계사
"어머니는 아직도 투병중이시다."라고 적는 순간, 바로 그 글쓰기의 마법적 힘을 통해서 딸은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실의 공포와 맞서 싸우게 됩니다. 선생님의 소설에서는 그 마법의 힘은 투병중인 어머니에게도 효력을 발휘하였지요. 그래서 그 작품 이후에도 오랜 시간 어머니는 투병중이셨지요. 그래요. 바로 그렇습니다. 이렇게 적음으로써 글은 위태로운 생명의 불꽃을 간직하고 보살피는 마법의 힘을 발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선생님의 글은 그런 힘을 발휘했던 게 아닌가요? 그러니 "박완서 선생님께"라고 시작하는 이 편지를 통해서 저 역시 선생님을 잃지 않고, 여전히 제 곁에 간직하는 그런 마법의 힘을 흉내 내어 볼까 합니다. 살아생전에 선생님이 그러하셨듯이 선생님은 언제나 글을 통해 모든 위태로운 생명의 곁을 지키는 그런 마음가짐을 우리에게 전해주시겠지요. 그리고 선생님의 작품이 있는 한 그 마법의 효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두서없는 편지로 작별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만나 뵙기로 한 날을 이틀 앞두고 선생님과 작별을 하게 된 터인지라 사실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깊었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며 그 안타까움 대신 생명을 지키는 일과 존엄한 죽음의 권리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삶이 그러했듯이, 선생님의 죽음도 우리 모두에게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인간살이의 깊은 의미를 새기는 하나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별의 인사 대신 선생님의 마법의 주문을 저도 살짝 빌어보고 싶군요. 그렇게 해서 그 주문이 여기 이 지구상의 한 모퉁이에서 투병중인 모든 존재에게 어떤 마법을 발휘하기를 빌어봅니다. 그리고 그 마법이 선생님이 지상에 남기시는 작별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해서 이런 마지막 문장으로 편지를 마무리해봅니다.

"언니는 아직도 투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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