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말을 하는 직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도 사회에 갓 발을 들여놓거나 이제 막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사람들과 주로 대면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에서 자신의 일을 골랐을 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언제, 어떤 순간에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는지도. 내가 직면한 고민들에 대한 답을 그들은 어떻게 해소하는지 알고 싶었다.

사회 초년병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었다. 똑같이 우연찮게 직업을 선택했고, 또 그 일을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고민하는 시기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당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은 직후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취직 후 6개월 무렵부터다. 갓 입사해 부산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서다. 이 무렵이면 다른 선택을 한 대학 동기들 얘기가 들려온다. 동시에 내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내 경우도 그랬다. 어쭙잖게 언론사에 입사하고 나서 옳은 선택이었나에 대해 끝없이 되뇌곤 했다.

'언론사에 입사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랬더라도 공채였다면 더 나은 조건으로 입사할 수 있었을 텐데. 기왕이면 더 나은 언론사로 입사할 수 있었을 텐데.'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회생활을 2년 정도 할 무렵에도 또 한 차례 진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시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가 아니라 대학원으로 진학한 친구들 소식이 전해질 무렵이다. 동시에 입사 동기들 간에도 회사 내에서의 입지를 두고 격차가 벌어질 무렵이다. 대학원에 간 친구들이나, 동기 몇몇이 잘 나가기라도 한다면 고민은 더욱 커진다. 내가 잘 싸울 수 없는 링으로 뛰어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에서의 싸움에서 패해 내동댕이쳐졌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적어도 그 곳은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곳은 못 됐다. 왜 진작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불운을 탓하기보다 내 오판을 자책하게 됐다.

반면 선배들은 격동의 2~3년차 직장 생활을 끝내고도, 또 다른 고뇌의 시기가 온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심지어 한 선배는 직장 생활 자체가 매일매일 고뇌의 연속이라는 주장도 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시기는 대개 5년차 무렵이었다. 이때는 입사 동기들끼리도 사내의 입지와 관련해 간극이 꽤 벌어져 있을 때다. 좀 억울한 생각이 들 무렵이다. 무엇보다도 이때를 넘기면 직장인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다른 선택을 할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직장에서 붙박이가 돼야 한다. 또 고민할 시기가 다가온다는 얘기는 내게 묘한 위안이 돼 주었다.

그렇게 붙박이 회사인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할 무렵 생기는 고민이 바로 '사내정치(office politics)'다. 실제 기업 조직에서 이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일은 못해도 관계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우리 기업 문화에서 회사인으로의 성공이 100% 실력과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인사와 같은, 그곳에서 내려지는 결정들 또한 합리적으로 이뤄지지만은 않는다. 그보다는 사내정치라고 일컬어지는, 권력 다툼과 권력자들 사이의 절충의 결과일 때가 많다. 그 결정은 개인의 진퇴를 포함해, 직장 구성원 모두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파괴적이다.

가끔 드라마나 책을 통해 사내정치를 간접 체험할 기회가 오곤 한다. 그럴 때면 직장인 누구라도 그 세계를 힐끔거릴 수 있다. 그러나 회사 상층부의 내밀한 세계 전부가 들여다보이지는 않는다. 하급자 신분에서 그럴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차라리 그 세계를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세계는 우리가 알거나 상상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경영학이나 경제학 교과서와도 딴판이다. 차라리 퀴퀴한 냄새가 나는 시궁창에 가까운 편이다.


▲ <김 과장&이 대리>(하영춘 외 7인 지음, 거름 펴냄) ⓒ거름
8명의 기자가 취재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책, <김 과장&이 대리>(거름 펴냄)는 그 시궁창과 같은 사내정치의 세계와 사람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회사생활과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같은 처지에 있는 직장인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결정적인 어두운 이야기는 쏙 뺐다. 나는 불운하게도, 그 세계를 일찍이 들여다보고만, 전직 직장인에 속한다. 어두운 세계를 들여다봤을 당시 나는 격분했다. 그 결과 그 세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후회는 없지만 다시 입사해 같은 상황을 맞는다고 해고, 마찬가지로 할 것이다. 그러나 훨씬 더 효과적으로 싸울 것이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하고 싶은 충고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난 언젠가 그만둘 거라고 사내정치를 완전히 외면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내정치를 포함해 조직의 어두운 면을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 점을 이용해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이나 출세를 하든, 아니면 그것과 싸우든 간에, 불의 속성을 잘 알아야 불을 활용할 수도, 제대로 끌 수도 있다.

<김 과장&이 대리>는 샐러리맨들의 이야기다. 상사와 하급자의 관계, 사내 연애, 성희롱, 땡땡이치는 기술, 회식과 출장, 승진과 이직 등 직장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가감 없이 담겨있다. 상황도 그대로 묘사돼 있고 표현도 현실의 언어 그대로다. 그래서 현장감과 공감대는 있으나 그 이상의 대안과 역동성이 없어 지루한 면도 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참고 열심히 해야지'라는 결론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회사는 닫혀 있는 우리다. 우리는 매일 그 우리 속으로 들어가, 물어뜯고 물어뜯기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불행하게도 그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회사 생활을 하는 한 영원히 계속된다.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의 편을 찾아 헤맨다. 지친 마음을 달래 줄 동기와 후배, 그리고 선배를 찾아 헤맨다. 그들 품에서 비로소 살벌한 회사 생활도 해 볼만 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거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1만 명의 김 과장과 이 대리가 그 품이 돼 준다.

직장 생활은 누구나 겪어 왔던 일이다. 어떻게 경험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비탄에 잠길 일도, 최고로 기쁜 일이라고 소리 높여 외칠 일도 아니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또 즐길 일이다. 김 과장과 이 대리에게 드리고 싶은 개인적인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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