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세금을 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돈도 별로 못 버는 나한테서 왜?!"

급여 명세서에서 소득세 내역을 확인했을 때나 간접세인 부가가치세가 자동으로 징수된 영수증을 보면서 가끔 우리 속이 끓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제목부터가 이러한 고민과 한탄을 갖고 사는 우리 보통사람을, 또 우리 월급쟁이를 정말 기쁘게 해준다. '세금을 없애고 지대를 걷자'라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인가!

신고전파 경제학과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맹점들

영국 왕립경제학회 종신회원인 로널드 버지스가 쓰고 '토지+자유 연구소'의 연구위원인 경북대학교 교수 김윤상이 옮긴 <세금을 없애고 지대를 걷자>(시대의창 펴냄)는 이른바 '경제학'으로 불리는 기존의 주류 경제학 이론을 공급 측면 학파와 수요 측면 학파로 양분해 설명하고 있다.

전자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또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이 학파는 경제 불황을 논의할 때 주로 기업의 잠재 생산 능력이 저하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으며,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적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여 시장의 경쟁성을 높임으로써 기업 경영의 효율화 및 경영 환경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자의 학파는 이뿐만 아니라 고용 및 임금의 유연화 역시 기업과 경제의 활기를 높여주는 좋은 방안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후자의 수요 측면 학파는 일반적으로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지칭한다. 수요 측면을 중시하는 이 학파는 경제 불황의 원인 및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에 관해서 전자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주장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경제가 어려워진 것의 원인을 주로 설비 투자 및 소비 수요의 침체에서 찾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후자는 불황기에 고용과 임금을 삭감하게 되면, 디플레 스파이럴(Deflation spiral)로 불리는 경제적 악순환이 초래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한다.


▲ <세금을 없애고 지대를 걷자>(로널드 버지스 지음, 김윤상 옮김,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이와 같이 공급 측면을 강조하는 경제학과 수요 측면을 강조하는 이 두 학파는 그동안 경제학의 주류 자리를 서로 번갈아가며 독점해왔는데, 그렇다면 이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945년 이후 경제학의 주류 자리를 차지하게 된 수요 측면을 중시하는 학파는 정부의 몸집을 엄청 크게 만들었는데, 비대해진 정부는 시장의 빠른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가 점점 어려워졌고, 1970년대 초반에는 경제 성장도 침체될 뿐만 아니라 이에 물가까지 급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으면서 그 주도권을 공급 측면을 중시하는 학파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렇다고 공급 측면을 중시하는 학파가 그 이후 경제를 잘 관리해왔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2008년에 발발한 세계적 규모의 미국발 금융 위기가 금융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 완화의 귀결임은 지금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으며, 이 학파는 이미 1929년의 그 전설적인 대공황의 큰 실패를 맛본 경험마저 가지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두 학파의 실패는 원유 등의 원자재 값 상승이니 큰 정부 탓이니 규제 완화로 인한 금융 시스템의 방만함 탓이니 지나친 시장의 자율성 때문이니 등등, 상당히 다양한 원인에 의해 설명될 수 있지만, 그 실패의 결과는 이 책에서 설명하는 두 가지로 귀결된다.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

경제학과 이에 기반을 둔 경제 정책이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그 두 가지 결과, 즉 현대 선진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가 고실업이며 둘째가 인플레이션인데, 이 책의 저자는 이 두 가지 중대한 경제적 문제의 원인을 바로 '잘못된 조세 제도'로 지목하고 있다.

즉 고실업과 인플레이션을 해결해내기 위해서는 위의 두 학파가 내세우는 경제 정책적 처방이 아닌 '잘못된 조세 제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세금이 왜 필요한지, 또 어떤 기준으로 세금을 걷는지를 해명하는 학문인 '조세론'마저 더 근본적으로는 조세 그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러니 경제 문제의 원인을 조세 제도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활동하기 위해서 조세가 필요악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또 이를 전제로 현대 경제학이 구축되었으며 현대 국가 역시 작동해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돈이 없는 정부가 어떻게 우리의 생활 안전과 사회 서비스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위의 두 학파로 대표되는 지금까지의 경제학이 '조세만이 정부의 수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조세가 아닌 과연 어떤 수입을 기반으로 하여 공공사업을 해야 하며 또 국민의 생활 안전과 사회 서비스를 책임져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는 이와 같은 파격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중농주의 학파와 헨리 조지의 경제 사상에서 찾고 있다. 중농주의 학파는 생산을 중요시하였으며, 이들은 그 생산은 토지에서 창출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일반적인 순환 개념에 의거하여 지주에게 세금을 물릴 수 있는 토지세를 선호하였다.

또 헨리 조지는 중농주의 학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일반적인 상품과는 다른 토지의 자연적 존재에 관심을 기울였고, 지대와 지가의 상승분이 고스란히 노동에 대한 대가 저하로 이어지는 점에 주목하여 토지세만을 유일한 세금으로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경제학적 논리들과 신자유주의의 시초인 마셜의 이론에 따르면, 토지에 대한 조세는 일반적인 조세 제도와는 구분된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토지세를 '토지 가격에 대한 공공적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열쇠'로 규정하고 있는데, 토지 가격을 만드는 요소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보고 있다.

토지에만 세금을 물린다면?

예를 들어 땅 위에 아파트를 짓고 분양한다면 토지 그 자체는 공적인 가치이며 반면에 아파트는 사적 가치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 둘을 합친 것이 바로 토지의 가격이다.

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사적 가치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 아파트는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있지만, 그 아파트가 세워진 그 토지는 공공의 소유물이므로 당연히 이에 대한 정부 수입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적인 논리이다. 이와 같은 논리를 따르게 되면, 정부는 한정된 토지에 근거한 수입밖에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자행되어 왔던 정부의 방만한 운영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토지에 대한 세금밖에 정부 수입의 원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지금 강권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같은 전시성 사업은 애초 구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그동안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 중에서 항상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했던 정부와 경제학자들의 고민 역시 줄어들게 된다. 각종 조세를 제거함으로서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할 수 있음과 동시에, 토지의 공공 가치에 대한 정부의 세금 부과로 인해 순환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고 또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또한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이 토지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낼 수 있게 되며, 또 이로 인해 사회는 더욱 좋아질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풀고 있다.

세금에 대한 시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정당한 소득을 국가가 가져가는 것에 대해 기분은 나쁘지만 필요한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뭐 이렇게 세금이 많나' 싶을 정도다. 근로소득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자동차세, 주민세 등등…. 이렇게 일상적으로 내는 세금의 종류도 많지만 이를 법인과 기업까지 확대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에 달한다.

이 책도 지적하고, 또 일반적인 조세론도 언급하고 있으며, 심지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또 관리하는 경제를 옹호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파조차 긍정하는 것이 바로 '조세가 미치는 경제 효율 저하'다. 그렇다면 위에서 본 것처럼 이렇게 많은 세금 종류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원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특히 어렵게 낸 세금으로 보건복지 활성화, 환경오염의 저하, 불평등 해소 등과 같은 공공적 정책 노력이 아닌 맹목적인 경제 성장이나 효율 추구, 이벤트성 사업에 마구 써대는 것을 보면 정말 가슴이 찢어질 정도다. 애당초 세금을 걷어가질 말던가.

봉이 김선달인들 토지를 은닉할 수 있으랴?

이 책은 정부가 세금을 걷는 것과 또 이를 지출하는 것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적인 생각을 일깨워 주며, 대안적 조세 방안으로 조세 일원화를 통해 토지에 대해서만 그 조세(사실 토지 가격에 대해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이지만, 토지세로 해석하는 것이 알아듣기 쉽다)를 부과하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임을 매우 체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토지의 사적 소유가 당연한 것으로 적용되고 또 인식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연스럽게 토지의 공공적 가치조차 사유화되고 있는, 이런 '잘못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논리적이고도 정책론적인 문제의식을 세워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경제학과 경제 정책이 간과하고 있는 '틈새'를 제대로 공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토지라는 자연물은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해왔고, 또 그 위에서 건물을 짓거나 땅을 파거나 농사를 짓거나 하는 것이지 이를 가공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물건처럼 변환시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토지 위에 인간의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여 생겨난 건물은 사적으로 소유될 수 있는 것이지만, 토지는 태고 적부터 조상들에 의해 물려내려 온 것이기 때문에 이를 누군가의 사적 소유물로 보기에는 꽤 강한 위화감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과세는 아주 명쾌하다. 소득세나 법인세 등은 정확하게 거두어 낼 수 없다는 문제점이 존재하지만, 토지는 봉이 김선달처럼 숨기거나 은닉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점 역시 토지를 세금 부과 대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이 책의 핵심적 논의를 제대로 뒤받쳐주는 것이지 않고 무엇이겠는가.

헨리 조지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설명

이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지만, 오로지 지대에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에 관한 유사한 논리와 설명을 담고 있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은 '지대=가장 효율적이면서 유일해야 하는 세금'이라는 공식을 제시한 명 고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역사적 논리와 철학적 이치로 이 공식을 설명했다면, 이 책은 조지의 작업을 넘어 기존의 경제학을 비판적으로 설명하고 또 기존의 조세 제도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그 작업을 발전시키면서 이 공식을 매우 현실적으로 설파해내고 있다. 사전 작업과 관련한 설명이 다소 긴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논리 흐름에 따른 전개는 결과에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오로지 토지에 대한 세금 부과가 자본주의 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와 모순점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자본주의적 문제에 대한 유효성 있는 '각론적인' 해결 방법이 매우 명확히 제시되어 있으며, 그것이 역사와 경제 논리에 매우 정합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신자유주의적 정책 처방을 차치하더라도, 자본주의적 모순 극복을 위해 제기되는 여러 실천적 방법들이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또 '특정 이론'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다소 이론 환원주의적인 점을 부정할 수 없다면,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토지세'의 실천은 매우 현실적이고 또 이론 환원적이지도 않다.

이 땅의 부동산 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무현 정부 때 적용된 '종합부동산세'는 '토지세'의 정신이 깃든 그 초보적 제도다. 조상이 물려준 공공적 소유물인 토지가 낳은 가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사람들의 순수한 '이성'에 정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과 자본이 투입되지 않는 공공적 토지가 누군가에 의해 독점되거나 사유되는 것을 도덕 법칙과 경제적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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