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1980년대 초에 휴대전화가 나오는 소설을 썼다면 분명 SF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연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 21세기가 되고서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삶의 풍경은 20세기와 큰 차이는 없다. 신혼여행을 우주 정거장으로 가지도 못하고, 저마다 하늘을 나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 돈이 많은 극소수의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20세기 로스앤젤레스의 모습에다 사람들 손에 휴대전화만 들려놓으면 21세기다, 라는 말도 들어본 것 같다. 그런데 단순히 휴대전화가 있고 없고의 차원은 물론 아니다. 휴대전화, 혹은 컴퓨터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등장함으로써 우리네 삶과 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에 근본적인 변화가 왔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1980년대라면 약속이 엇갈린 연인이 서로 평생 오해를 품고 헤어져 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휴대전화로 즉각적인 안부 확인이 가능하다. 또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쇼셜 네트워크 서비스 덕택에 사회 구성원 사이의 소통 양상도 근본적으로 변했다. 지금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기술은 체제의 혁명적인 급변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요컨대 21세기적 미래상이 실제로 구현되는 것은 우리가 20세기에 그려왔던 것처럼 우주여행이니 자가용 비행기니 하는 거시 기계 장치 분야가 아니라 마이크로한 안쪽 우주(inner space)로의 방향인 셈이다. 근미래의 신기술로 주목받는 유전공학, 나노기술 등도 다 이런 쪽이다. 물론 우주여행이나 공중 부양 자동차도 멀지 않은 미래에 대중화가 될 가능성은 없지 않겠지만….

사실 과학소설(SF) 팬이라면 미래상에 대한 이러한 괴리는 익숙하다. 1980년대 중반에 윌리엄 깁슨이 장편 <뉴로맨서>를 발표하고 나서 컴퓨터 네트워크와 가상 현실이 순식간에 21세기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그를 두고 브루스 스털링은 '진부한 미래는 이젠 안녕!'이라고 고한 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 진부하지 않은 새로운 미래의 모습이 점점 우리의 현실로 되어 가는 상황에서 정작 우리 자신들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가? 아니, 본질적인 변화가 정말로 진행되고는 있는가?


▲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듀나 외 지음, 사이언티카 펴냄). ⓒ사이언티카
SF는 20세기에 그랬듯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위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다양한 해답을 시도하는 장르이다. 그리고 21세기의 한국이라는 인문 지리적 토양에서도 그 다양한 시나리오의 스펙트럼은 꾸준히 생산된다. 사설이 길었는데, SF 단편 소설을 묶은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사이언티카 펴냄)를 읽는 나의 입장은 대략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듀나, 김창규, 박성환 이 세 작가는 길게는 십 수 년 이상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던, 한국 창작 SF 계의 소중한 자산이다. 자연히 그들의 이전 작품들을 떠올리면서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을 읽었다.

듀나의 '수련의 아이들'은 아이디어나 문체나 정서가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큰 차이가 없다. 이번에도 아이디어는 돋보이고, 듀나식 하드보일드의 아우라도 여전하다. 꼼꼼한 디테일 역시 변함없는 웰메이드라는 느낌을 준다. 아쉬운 점은 마무리가 좀 급해 보인다는 것인데, 아마 작가는 분명 '수련의 아이들'에 대해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향한 '그곳'과 그들의 의지, 또 그들의 우주관에 대해 언젠가는 새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김창규는 액션 스릴러에 대한 창작욕을 늘 품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SF적인 제재와 결합되는 작품들이며, 그중에는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문명'이라는 테마와 잘 어울릴 법한 탐구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 책에 수록된 '백중'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 소품이다. 인공지능과 귀신, 신선한 병치이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인공지능은 오시이 마모루의 '고스트'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다. 그것의 전 단계라고나 할까?

김창규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개 아픈 기억을 품은 채 회색빛 일상을 살며 외부의 신선함에 대해서는 나태하거나 적대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결말에 가면 대개는 어떤 식으로든 수용 내지는 화해를 한다. 작가 본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인지 때때로 궁금할 때가 있다.

박성환의 '관광지에서'는 작가의 예전작인 '레디메이드 보살'처럼 불교와 관련된 테마를 다루어 흥미로웠다. 물론 주제의 핵심은 불교 그 자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여겨지지만, 이른바 'SF의 토착화'라는 수용 관점에서 보자면 상당히 주목할 만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진지한 읽기를 요구하는 결말 부분의 묵직함도 좋았다.

또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은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화려한 비주얼 묘사를 기본으로 깔고 있어서 오히려 시각적으로는 막연한 느낌이었는데, '관광지에서'를 읽으면서는 생생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고요히 잠든 노인'의 침묵이 이후 수천 년의 '야단법석'을 압도한다는 화두를 곱씹어 볼 만 하다.

김현중의 '물구나무서기'와 정보라의 '사랑 그 어리석은'은 아이디어와 플롯의 수평적 결합이라는 차원을 극복하려는 접근이 돋보였다. 비록 완성도나 짜임새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시도가 쌓이면 곧 이 작가들은 더 주목할 만한 이야기들을 내놓으리라 기대한다.

김린의 '우주와 그녀와 나'는 아름다운 '판타지'로서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솜씨가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여운이 꽤 남는다. 백상준의 '시공간-항'과 조나단의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나병우의 '달에게는 의지가 없다'는 나름대로 깔끔한 소품들이다. 전통적인 SF의 틀에 충실한 이런 작품들이 양적으로 풍부해질수록 창작 SF의 저변은 튼튼해질 것이다. 설인효의 '전화 살인'은 그 나름의 독자적인 계보를 지니고 있는 '미스터리와 SF의 결합'이다. 결말이 좀 나이브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다.

나는 SF가 아이디어의 유희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SF의 대표적인 미덕으로 꼽는 '경이감(sense of wonder)'은 엄밀히 말하자면 시적 감동인데, 과학기술의 미래가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세계상, 그리고 SF적 상상력이 형상화 할 수 있는 다른 세계, 다른 생각은 그런 시적 감동의 차원에서 이야기와 융합되어 구현되어야 한다. 그것이 SF가 시대가 변해도 계속 문학으로서, 예술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이 책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에서는 수록작의 일부나마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에서 SF를 창작하는 작가들은 늘 그랬듯 열악한 상황에 있다. 그래서 더더욱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가 펴내는 웹진 <크로스로드>의 존재가 소중하다. 작품을 선별하여 꾸준히 온라인으로 발표하고, 또 해마다 이렇게 작품집까지 내는 과정을 여러 해째 이어오기가 순탄치만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앞으로도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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