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뜨겁게 달구더니, 각종 포털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가득 채우고 이내 9시 뉴스에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평생 숙원이던 '인기 가수'가 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세상을 뜨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릴 수 있었던, 재능이 넘치지만 행운이 넘치지는 못했던 한 음악가가 남긴 책 <행운아>(북하우스 펴냄)의 제목을 두고 –자신의 노래 '나는 행운아'와 같은 제목이다-역설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진원은 분명 행운아다.

공연장에서, 그보다 더 자주 술자리에서 얘기를 나눈 이진원은 그것이 말이건 음악이건 기타건 자신의 얘기를 하며 남루한 미사여구를 붙여본 적 없다. 그 자리가 어디건 상대가 누구건 하고 싶은 말을 아낀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과장하거나 꾸며서 한 적도 없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소위 '짭새' 사태, 그가 지난해 5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지나가는 경찰차를 보고 '짭새가 지나간다'고 말했다가 서교파출소에 연행됐던 사건에서도 마지막은 그날 한 번밖에 쓰지 못하고 잃어버린 LG트윈스의 새 모자를 찾아 달라 하지 않는가!

절제되어 있거나 과장되어 있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진원의 그런 화법은 때로 지나치게 낯선 것이어서 그를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다. 사실 그 배경에는 '술'이라는 촉매제가 자리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음악을 하면서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자신의 음악을 '멋지게' 들리도록 포장하거나 뭔가 있어보이도록 하는 현학적 방법들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조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평소 사람들에게 얘기하듯, 인터넷에서 자신의 얘기를 글로 올리듯, 이진원의 음악은 그렇게 이진원스러웠다. 시원시원한 멜로디라인과 그만큼이나 호쾌한 목소리, 담백하고 간결한 편곡 위에 감출 것도 없이 솔직하게 풀어가는 노랫말. 달빛요정만루홈런의 음악이 주는 감동은 어쩌면 그의 음악적 재능이라기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음악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행운아>(달빛요정역전만루홈련 지음, 북하우스 펴냄). ⓒ북하우스
그리고 <행운아>라는 책이 남겨졌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눈물겹게 반갑기도 하고 참 불편하기도 했다. 이진원이 평소 하던 말투가 그대로 살아있다. 역시 책의 출간을 위해 글을 쓴 게 아니라 자신의 말투 그대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고 있었다. 지금 바로 옆에서 '빠르고 더듬는' 말투로 얘기하는 듯해서, 그리고 언제나 하던 그 얘깃거리들이라서 반가웠지만 그를 아직 완전히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나와 동료들에게는 더 이상 이 친구를 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주었기 때문에 동시에 불편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책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프롤로그조차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을 실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퇴고를 거쳐 이진원이 처음 원했던 혹은 출판사가 원했던 방향으로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말투와 음악이 그랬듯 이 책도 어쩔 수 없이 '이진원스러운' 그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음악, 영화, 야구, 만화, 술, 음식 등 이진원이 항상 떠들어 대고 가사의 소재로 썼던 내용들이다. 단지 평소의 말 속에서 파편처럼 튀어 사라지거나 제한적인 양의 가사에서 잘려나갔던 부분이 고스란히 않고 담겨 있어서 마치 그의 사담을 녹음해서 재생하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음악 하는 사람끼리 사석에서도 쑥스러워서 잘 하지 못하는 사적인 감상들을 밝혀,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들조차 그의 음악에 대해 재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곡을 만들기 시작할 때의 느낌, 완성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뒤에 숨어있는 뒷얘기들은 음악 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있을 때 이야기 소재가 되지는 못한다.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이의 음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경우야 흔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대방의, 혹은 자신의 음악을 소재로 삼는 것은 드물뿐더러 요리사들끼리 서로의 요리에 대해 평하거나 자신의 요리를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진원은 이런 일반적인 경우에서 예외에 가깝긴 했다.)

물론, "조금 더 밝은 음악을 하는 게 어때?"라거나 "라이브 공연 때는 이런 식의 편곡이 더 좋겠어" 따위의 가벼운 조언들은 언제나 할 수 있었지만. 이진원이 이 책에서 터놓고 밝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들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것을 만들 때의 감정 등은 음악 하는 동료로서도 매우 반갑고 소중하다.

<행운아>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야구라는 소재는 이진원과 내가 가장 많이 얘기한 것이기도 하다. 같은 야구팀을 응원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각별하다. 특히 그 둘이 야구에 완전히 미쳐있는 사람들일 때, 그것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 팀에 푹 빠져 있는 경우일 때, 게다가 그 응원팀의 성적이 몇 년간이나 좋지 못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LG트윈스에 대한 이진원의 절절한 사랑은 자칭 '사랑타령'이라 불렀던 그의 다른 사랑 노래 혹은 그 이상으로 깊다. 2011년 LG트윈스 4강 진출 기원 공연을 같이 해보자했던 만큼, 더 이상 그와 함께 LG트윈스의 성적을 두고 한탄하거나 유망주들을 분석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외롭다.

이 책에 담긴 이진원의 일상과 취향은 마치 영상을 보는 것만큼이나 생생하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가 그렇듯 거침없이 풀어나간 글귀들이 어느 용감한 투수의 직구를 닮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시선을 단호히 거부하고 자신의 음악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조롱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생각은 책의 곳곳에서 아주 쉽고 솔직하게 발견된다. 혹여 이진원의 죽음을 '가난한 음악가의 비참한 죽음'이라는 포장하기 편리한 미디어의 뉴스로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편견과 선입견은 그의 직구 앞에 어이없는 헛스윙으로 무너질 것이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시간 예술이다. 시간이 한번 지나고 나면 그 음악을 다시 듣는 것이란 불가능했다. 이것이 아쉬워 사람들은 그 음악을 남겨놓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냈다. 하지만 그 어떤 첨단의 방법으로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라이브 공연을 다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진원은 자신의 앨범들과 함께 이 책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우리가 그를 만날 수 있는 길은 그 앨범 속에 담긴 노래들과 이 책에 남겨진 그의 얘기들뿐이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고 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글을 읽으며 그를 기억하고 추억할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직구를 던지던 용맹하고 늠름한 마운드 위의 한 투수로. 단 한 번도 비겁한 변화구를 용납하지 않고 세상이 뭐라 떠들건 자신만의 직구를 던지던 투수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은 행운아다. 그리고 그 행운은 오롯이 자신의 작품이다.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절룩거리네' 중)

(☞라이브 영상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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