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잃어버린'이라는 관형어가 붙는 말들은 어쩐지 미지의 것을 향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때는 우리의 것이었으나 언젠가 놓쳐 버린 무언가를 향한 안타까운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이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에 최근 책이 추가되었다.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정규환 옮김, 민음사 펴냄)는 과거에 출간되었거나 쓰였으나 어떤 까닭에서인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책 또는 원고에 얽힌 사연들을 다룬다. 원제가 'The Book of Lost Books'인 이 책에는 호메로스에서부터 조르주 페레크까지 작고한 작가 80명의 유실된 작품 이야기가 오롯이 담겼다. 편집자이자 독서광으로 소개된 영국 작가 스튜어트 켈리의 폭넓은 독서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중국의 사상가 공자의 저작은 본래 6경이었으나 지금은 <시경>, <예기>, <서경>, <주역>, <춘추> 등 5경만 남아 전한다. 나머지 1경, 음악에 관한 가르침인 <악기>는 진시황의 악명 높은 분서갱유 때 멸실되어 버리고 말았다.


▲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스튜어트 켈리 지음, 정규환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지금은 고작 일곱 편의 희극만이 남아 전하는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퀼로스는 생전에 모두 여든 편이 넘는 희곡을 썼다. 그 작품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본 <아이스퀼로스 전작집> 두루마리에 갈무리되었다. 아이스퀼로스가 죽은 지 200여 년 뒤,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이집트 왕위에 오른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할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서를 기반 삼아 만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 목록을 검토하던 중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아테네에 있던 유일본을 필사본을 만든다는 핑계로 빌려서는 결국 돌려주지 않았다. 이 두루마리 책을 읽을 수는 있되 베낄 수는 없다는 엄명 아래 1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서기 640년 12월 22일, 당시의 이슬람 통치자의 지령을 받은 암루 이븐 엘아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들을 모두 불태운다. "하느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들은 불경스럽거니와, 일치하는 것은 굳이 없어도 괜찮은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서였다. 유일본 <아이스퀼로스 전작집>은 그 불길 속에 허무하게도 잿더미로 돌아가 버렸다.

귀중한 책에 불을 지른 것이 권력자들만은 아니었다.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1835년 자신의 주저가 될 <프랑스 혁명사>(전3권)의 첫째 권 원고를 친구인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에게 건네주었다. 읽어 보고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다. 밀은 이 원고를 자신의 여자 친구인 해리엇 테일러(당시는 유부녀였는데, 해리엇의 남편이 죽은 뒤인 1851년에 두 사람은 결국 결혼했다!)에게 맡겨 두었는데, 하녀가 원고를 폐지로 오인해 불쏘시개로 써 버리는 바람에 온전히 다서 써야 했다.

글을 쓰는 이라면 크든 작든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겠지만, 당시 칼라일이 느꼈던 낙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내 생애에 그 어떤 시기에도 이보다 더 철저히 기댈 데 없고 낙담한 마음이었던 적이 없었으니…. 과연 일거리 중에서도 더없이 진 빠지고 괴로운 그 일을 다시 한다는 것은 그냥 불가능할 것 같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프랑스 혁명사>는 1837년에 출판되었고, 존 스튜어트 밀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아첨기 가득한 서평을 실었다.

단테는 13년에 걸쳐 걸작 <신곡>(이 책에서는 <희극>으로 옮겼다)을 썼는데, 그가 죽은 뒤에 확인해 보니 작품의 절정에 해당하는 '낙원'의 칸토 열세 편이 빠져 있었다. 그의 두 아들 야코포와 피에트로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작품을 완성하고자 애썼지만 이 작품의 운(韻)과 수비론(數秘論)적 짜임이 워낙 촘촘해서 감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코포의 꿈에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들이 <신곡>의 누락된 부분에 대해 물으니 아버지는 자신이 오랫동안 침실로 쓰던 방으로 아들을 데려가 벽걸이 천으로 가려진 부분을 가리켰다. 잠에서 깬 야코포는 아버지가 가리켰던 벽걸이 천 뒤의 벽감에서 곰팡이가 핀 문제의 칸토 열세 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막내 알료샤가 수도원을 나오는 장면을 끝으로 미완으로 남았다. 도스토옙스키의 계획은 이러했다.

"내 마지막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예언적인 요소가 많은 것으로 보일 겁니다. 여기에서 알료샤는 수도원을 떠나 무정부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순수한 알료샤는 차르를 죽일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의 계획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1881년 1월 28일에 죽었다. 그해 2월 마지막 날,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암살당했다.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를 상대로 한 프랑스 주류 사회의 음모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팸플릿으로 맞섰던 에밀 졸라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계획을 세웠다. '정의'라는 제목이 붙은 그 소설이 완성되기 전에 졸라는 잠을 자던 중 구역질과 두통, 어지러움을 호소한 끝에 호흡 곤란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숨진 1902년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53년 신문 <리베라시옹>에 졸라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실린 것을 본 노인 독자 한 사람이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하고 내 인부들이 옆집에서 수리 공사를 하면서 그 굴뚝을 틀어막았지. 워낙 출입이 빈번해서 그 북새를 틈타 졸라의 굴뚝을 찾아냈고 막아 버렸지. 다음 날 아주 일찍이 막은 걸 다시 터놓았지. 우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드레퓌스와 졸라를 매국노로 여긴 굴뚝 소제부들이 졸라의 명을 앞당기고 소설 <정의>의 탄생을 막은 셈이다. 게다가 검시관은 졸라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대중의 공분을 자아낼까 두려워했던 나머지 사인을 불의의 사고사로 기록했던 것.

<죽은 영혼들> 1부를 1842년에 출간해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던 고골은 이 소설의 2부를 쓰는 동안 종교적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1845년, 5년 동안 쓴 2부의 원고를 한 차례 불에 태웠던 그는 1852년에 다시 하인을 불러 불을 피우라고 명령한 다음 그동안 쓴 2부와 3부의 원고를 한 장씩 그 불길 속에 집어넣었다. 하인의 만류를 무릅쓰고 손수 일을 끝낸 그는 십자가 성호를 긋고 하인에게 입 맞춘 다음 그 뒤 아흐레 동안 일체의 음식을 거부한 채 굶어 죽었다.

카프카가 자신의 원고를 모두 폐기해 달라고 한 유언을 친구인 막스 브로트가 무시함으로써 그의 많은 작품들을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인리히 하이네와 실비어 플래스는 그런 점에서 카프카와는 정 반대되는 경우다. 하이네가 죽은 뒤 그의 동생 막시밀리안은 그가 쓴 회고록 가운데 가족들의 명예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원고 500~600쪽을 소각해 버렸다.

실비어 플래스가 1963년 2월에 자살했을 때 그는 남편이었던 시인 테드 휴즈와는 갈라진 상태였으나 이혼 소송 절차가 개시되지는 않았었다. 유언장도 남기지 않은 그의 문학 유산 집행자는 법률상 남편이 되었고, 그 관리는 생전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누이 올윈의 손에 넘어갔다. 실비어 플래스 사후 테드 휴즈가 편집해 낸 그의 시선집에는 플래스가 골랐던 41 편 가운데 27편만 들어갔다. 휴즈는 "사적으로 한결 공격적인 시들 얼마를 뺐다"고 밝혔다. 휴즈는 또한 플래스가 마지막 몇 달 동안 쓴 일기를 불살라 버렸으며, 130장 정도를 썼던 자전적 소설 <이중 노출> 원고는 어떤 경위로인지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원고 뭉치, 그리고 2000점 중에서 15편만을 발표했다는 이상의 <오감도> 연작 나머지 작품 등 한국 문학이 '잃어버린' 책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들이 책으로 수렴되었다가 다시 책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 책벌레들에게는 이 '책에 관한 책'이 반가운 선물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는 결코 쉽고 편안하게 읽히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종횡하는 방대한 범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번역과 편집의 문제가 더 커 보인다.

한 쪽에서도 몇 번씩 되풀이되는 어미 '~ㄴ바'는 독자를 지치게 만들 정도인데, 그것도 'ㄴ 바' 식으로 불필요한 띄어쓰기를 일관되게 하고 있어 더 눈에 거슬린다. 딱히 오역이라기보다는 전달 능력이 떨어지는 듯한 문장들도 빈발한다.

"하지만 크세노클레스는 자신을 아주 파멸되도록 내맡기는 데 혼자가 아니었다."(96쪽)

"하지만 브루투스는 자기네 사명은 자신들의 안락을 구하는 것뿐 아니라 문명의 혜택을 몽매한 민족에게 전해 주는 일이다."(312쪽)

"의식이 명료한 때에 콜리지는 자기가 창백했던 상태에 대해 쓴 말은 우리 마음에 닿는 게 있다."(362쪽)

크고 작은 오탈자들 역시 책읽기를 방해하는데, 윌리엄 버로스(옮긴이는 '버로즈'라는 표기를 고집했다)를 다룬 장의 마지막에는 각주가 버젓이 본문 일부로 편집되어 있는 '대형사고'도 눈에 띈다(4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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