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적 기업인 지멘스의 경영자였던 독일의 베르네 슈반펠더가 중국의 고전 <손자>, <공자>, <노자>를 경영인을 위해서 또는 경영의 관점에서 풀이하는 책을 냈다. 우리말 번역서의 제목을 소개하면 <CEO를 위한 손자 : 전략의 고수>, <CEO를 위한 공자 : 중용의 고수>, <CEO를 위한 노자 : 느긋함의 고수>(이미옥 외 옮김, 한울 펴냄)이다.

이 시리즈는 정작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의 축에 끼지는 못했지만 네덜란드, 포르투갈, 브라질, 러시아에서 번역되었다. 또 중국어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공중파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위해 지은이가 사는 고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중국의 호들갑스런 관심이 아마 내용의 깊이보다는 가십거리의 발견에 있으리라 짐작된다.

사정이 어떠하든 중국의 사상 문화를 대표하는 손자, 공자, 노자가 바야흐로 좁게는 중국 또는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넓게는 유럽과 기타 지역의 공유 자산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의 일이라 시샘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사상 문화도 그런 기회와 날이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 <CEO를 위한 손자 : 전략의 고수>(베르네 슈반펠더 지음, 이미옥 옮김, 한울 펴냄). ⓒ한울
화제를 끈 책이 관심을 받으려면 적어도 두 가지 물음을 통과해야 할 듯하다. 하나는 독일인 경영인과 중국 고전으로 짜인 조합이 탄탄하지는 않더라도 그럴 듯하다는 조건을 통과할까, 라는 호기심이다. 다른 하나는 현대 경영과 중국 고전의 연계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유효할까, 라는 의구심이다.

첫 번째 호기심은 저자가 늘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슈반펠더는 직무상 아시아 지역을 자주 방문하기도 했고 또 중국 관련 업무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중국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업에만 열중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중국의 역사, 중국인의 생활방식, 습관, 그리고 그들의 철학 사상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여기서 관심의 확장을 '자연스럽게'라고 말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계속 사업에 머무르지 못하고 저술가와 기업 강연 전문 강사로 나가게 된다. 즉 그에게는 누를 수 없는 배움의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슈반펠더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는 말로 첫 번째 호기심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친구의 도움에다 슈반펠더의 독학에 가까운 노력이 이 시리즈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왕성한 도전 정신을 따라 해서는 안 되는 만용이라고 하기 이전에 우려를 안은 참신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의구심에 대해서는 평자가 뭐라고 하기보다 해석의 사례를 직접 맛보는 쪽이 좋겠다.

먼저 <CEO를 위한 손자 : 전략의 고수>를 들여다보자. 슈반펠더는 <손자>의 '허실(虛實)' 편을 "조건을 기록한다 : 이를 통해 성공한다"로 파악한다. 이어서 그는 손자의 "전쟁에서도 강자를 피하고 약자를 공격해야 한다"는 말을 가상의 '자전거 주식회사' 경영에 다음과 같이 적용한다.

경쟁사가 '자전거 주식회사'보다 먼저 마모가 없는 바퀴통을 시장에 선보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자전거 주식회사'는 경쟁사의 장점을 공격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했다. 경쟁사의 품질을 따라가지도 못한 채 많은 비용을 들여 결국 2등이 되는 것이 유리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바퀴통 분야에서 2등으로 머무는 대신에, 적의 약점을 찾아 다른 분야에서 1등이 될 수도 있다.

'자전거 주식회사'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하여 바퀴통에 대한 자체 노하우는 바퀴통을 연결하는 부품과 조립을 최적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런 과정 끝에 쉽게 조립할 수 있고 원가도 저렴한 보호 부품이 나왔는데 이 부품은 바퀴통의 수명을 놀라울 정도로 향상시켰다. 이 새로운 발명품은 많은 상인과 최종 소비자의 마음에 들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이 부품을 개선된 바퀴통보다 더 선호했다. (128쪽)

슈반펠더의 제안대로 하면 모든 경영이 성공한다고 할 수 없지만 전략을 세우는 데에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안을 보면 LG전자가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가 주도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뒤져서 맥을 못 추다가 보급형으로 승부를 걸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문제는 현실에서 경쟁사도 '자전거 주식회사'의 전략을 모른 채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손자와 슈반펠더의 해석으로부터 모든 해답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손자>의 13편을 경영자를 위한 열세 가지 '계명'으로 풀이하고 있다.

다음으로 <CEO를 위한 공자 : 중용의 고수>를 들여다보자. 슈반펠더는 먼저 현대 사회에서 경영자의 신분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실태를 언급한다. 위기는 경영 수치상의 숫자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신뢰의 상실에서 온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결과 오늘날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많은 경영자들이 서슴없이 부를 챙긴다. 위기가 임박했음을 이런 징후로 알게" (66쪽)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경영자들은 점점 눈앞의 현실에 급급한 정신 자세를 갖게 된다. 이들의 행동 방식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의해 규정된다. 그들이 계획하는 사업은 장기적인 비전을 갖기보다는 단시일 내에 수익을 내야 한다."(67쪽) 그는 이러한 실례로 다임러크라이슬러를 들고 있다.

그럼 오늘날 경영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슈반펠더는 먼저 <논어>의 구절을 제시하고 이어서 그 구절을 덕목으로 재정리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당황하지 않고, 인자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논어> 9 : 28)

"덕목5 : 위기의 시기에도 경영자는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경영자는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67쪽)

마지막으로 <CEO를 위한 노자 : 느긋함의 고수>를 들여다보자. 슈반펠더는 경영인들이 많이 겪는 현상으로 번아웃(burnout, 소진)을 예로 들고 있다.

계속되는 절망감, 달성하지 못한 목표, 스스로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대 등이 이 현상의 원인이다. 이는 우울증, 불면증, 두통, 위경련 혹은 다른 신체적인 증세로 나타난다. 여기에다 스스로가 충분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의식까지 작용한다. 이렇게 지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처한 환경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혼자 있을 생각만 한다. (59쪽)

슈반펠더는 번아웃을 벗어나기 위해서 먼저 가상의 자전거 회사 운영 방침을 제시하고 그것을 <노자>와 연결시킨다.

자전거 회사는 수년 전부터 자신이 해마다 꼭 이행해야 할 목표를 정해놓고 흔들림 없이 이행하는 관리자가 있었다. 그는 이 목표를 최우선시했는데, 그의 목표는 바로 1년에 한 번씩 수도원에 들어가서 명상을 하는 일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의 존재 가치의 핵심을 발견하고, 자신의 중심을 찾고, 그의 삶의 의미를 깨닫고 힘과 활력을 다시 찾는다고 한다. 물론 그가 아직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이러한 힘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도에다가 너를 맡기라, 그러면 너는 도와 하나가 될 것이며 도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통찰에다가 너를 맡기라, 그러면 너는 통찰과 하나가 되면서 통찰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에다가 너를 맡기라, 너는 잃음과 하나가 될 것이며 잃음을 완벽하게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도덕경>, 23장)

이처럼 슈반펠더는 현대 사회에서 경영자가 처한 상황과 그 해결책을 <손자>, <논어>, <노자> 등 중국 고전에서 찾고 있다. 원래 그의 작업은 엄격한 학문적 토대가 아니라 응용의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타당성은 추론의 정당성보다 직관에 바탕을 둔 그럴듯한 설득력에 두어야 한다. 그 판단은 읽는 사람이 느끼는 감동과 동의로 맡기고자 한다.

한때 언론과 시민단체의 힘이 강해지자 언론과 시민단체는 도대체 누구로부터 감시를 받는가, 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국내외적으로 경영자 또는 CEO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과연 그들은 누구의 감시를 받는가? 사실 공정 사회라면 어리석은 질문이다. 당연히 법의 지배를 받을 테니까.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하루가 멀게 경영자가 횡령과 부패 사건을 일으키고 심지어 비자금으로 경영권을 불법적으로 유지 세습하기도 한다. 이들도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재력으로 사법적 정의를 누른다. 예컨대 죄가 있어도 불구속 기소되거나 구속되더라도 조만간에 휠체어 탄 채 보석으로 풀려나거나 적절한 때에 사면을 받고서 원래의 자리로 보란 듯이 돌아간다. 국가 경제의 공헌이 크다는 것이 정상 참작의 되풀이되는 이유이다. 이러다보니 힘없는 자의 처벌에 신상필벌이 적용되는 것에 대비해서 유전무죄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린다.

이제 죄를 범하더라도 쉽게 빠져나온다면 주문이 하나밖에 없다. "범죄와 면죄의 짧은 입맞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제발 죄를 짓지 말라!" 아무리 윤리적 경영이니 사회적 책임을 소리 높게 외치더라도, "더 많이, 더 빨리, 더 크게"를 위해 발돋움하는 욕망의 현신인 기업인(企業人)이 스스로 윤리 의식으로 무장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 업은 업의 소멸을 말하는 불교의 업과 다른 뜻이다. 다르지만 서로 반대가 되지 않도록 제어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는 자발적 학습과 학습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이 책은 자발적 학습을 위한 첫걸음을 떼게 만들어준다. 아울러 세 책은 공통적으로 경영자가 자신이 가진 힘과 부를,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만능의 티켓으로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싫은 것을 피하게 하는 특권으로 생각하지 말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오만한 경영자가 아니라 겸손한 경영자가 되고, 현재에 도취해서 왕국을 건설하기보다는 변화하는 현실을 명민하게 읽어내는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은이의 이력만큼이나 옮긴이의 이력도 독일어와 한국어에는 익숙할지 몰라도 중국 고전에는 낯설다. 책의 출판 전에 중국 고전 전문가에게 한번쯤 읽혔더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오류가 그대로 남아있다. 예컨대 <易經>의 음을 '역경'만이 아니라 '이경'으로 제시하고 있다(<CEO를 위한 논어>, 45쪽). 그밖에 원문 번역도 한문 원문이 아니라 독일어 번역을 중역하느라 어색한 곳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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