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1·2권, 민음사 펴냄)은 언뜻 보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들어가는 말'에서 밝히고 있듯 우선 책의 내용이 비록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토대로 하고 있어도 그와는 사뭇 다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대비 열전'이라는 원래의 제목이 말해 주듯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 중 비슷한 면모를 보이는 영웅들을 2명씩 대비하여 비교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총 23쌍의 대비 열전을 비롯하여 단독으로 서술한 영웅 몇을 포함하여 50여 명의 영웅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에는 총 20명의 그리스 로마 영웅들이 등장한다. 게다가 그가 다루고 있는 영웅들이 모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속에는 탈레스, 피타고라스, 디오게네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한니발, 스키피오 등 그가 스스로 선별한 영웅들이 7명이나 새롭게 포함되어 있다.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이윤기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두 영웅전은 쓰게 된 의도도 전혀 다르다. 플루타르코스는 독자들에게 영웅들의 성격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본보기 혹은 타산지석이 되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페리클레스를 다루는 글의 서두에서, 인간이란 원래 선하고 아름다운 행동을 보면 그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법인데,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며, 자신이 위대한 영웅들의 삶을 글로 남기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비해 이윤기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웅들의 본색을 살피는 작업을 통하여, 다양한 경로로 우리의 언어로 삼투해 들어와 있는 서양 문화의 무수한 표현법과 수사법을 조명하고 여기에다 피를 통하게 하고 싶다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

이윤기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영웅 열전을 집필한 의도는 아주 분명해 보인다. 그는 고대 영웅들의 삶을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시각으로 다시 쓰고 싶었던 것이다.

이윤기는 우선 우리가 일상용어처럼 쓰고 있는 고대의 영웅들이 만들어낸 관용어에 주목한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나 "루비콘 강을 건너다" 등 그리스 로마 영웅의 입에서 흘러나와 우리 입에 회자되고 있는 많은 관용어의 출처와 그것들이 만들어진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아울러 이것이 "우리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작업"은 될지언정 "우리 문화에 때를 입히는 작업"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어휘가 중국 고전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서양 문화의 초석을 이루는 그리스 중심의 헬레니즘"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은 단순히 그런 관용어들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영웅들이 사용한 수사법에 더 큰 지면을 할애한다. 그에 따르면 "수사법은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미는 기술"이며 "고함보다 큰 울림을 자아낸다." 영웅들의 수사법의 핵심은 바로 촌철살인의 화법이다. 간결함의 화법이다. 솔론의 말을 빌자면 '메덴 아간(meden agan)' 즉 '과유불급'의 화법이다. 이런 화법은 필연적으로 영웅들이 만들어낸 관용어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관용어가 아주 간명한 것은 바로 그런 화법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한두 마디로 핵심을 찌르고 들어가는" 촌철살인의 화법의 대가였다. 가령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는 적의 침략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가를 묻자 "청빈하게 살되, 서로 잘난 체 하지 않으면 된다"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침공을 앞둔 상황에서 히페리데스가 주화론자였던 포키온에게 아테네 시민들은 언제 전쟁을 해야 하느냐고 따져 묻자 그가 이렇게 간결하게 대꾸했다.

"젊은이들이 질서를 제대로 지킬 때, 부자들이 나라에 돈 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때, 정치가들이 공금 횡령을 그만 둘 때면 승산이 있소."

아버지 필리포스가 계속해서 영토를 늘려가는 것을 보고 알렉산드로스가 내뱉은 말도 간명하면서도 의표를 찌른다.

"아버지가 다 해버리면 나는 할 일이 없어지잖아."

플라톤이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이탈리아 남부 시라쿠사를 방문했을 때 철학자를 자칭하던 시라쿠사의 왕과 나누던 대화도 짧은 한 문장씩으로만 이루어져있지만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 무엇 하러 오셨는가?" "덕이 있는 사람을 찾으러왔습니다." "벌써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내 앞에서 이러긴가?" "폭군처럼 이러깁니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에는 이와 같은 촌철살인의 대화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영웅들은 그런 간명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전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그들은 서로의 의중을 금방 꿰뚫어 보았다. 심지어 포로로 잡은 적일지라도 대화중에 간결한 수사법으로 자신을 감동시키면 솔직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목숨을 살려줄 정도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도를 점령했을 때 '김노소피스타이'라는 '나체 철학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민중의 지지를 업고 그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려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임기응변에 뛰어난 그들 중 10명을 초대하여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모두들 그가 묻는 어려운 질문에 촌철살인적인 답을 함으로써 쉽게 위기를 넘긴다.

가령 알렉산드로스가 아홉 번째 나체 철학자에게 "인간은 몇 살까지 살면 적당하게 사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그 철학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아보일 때까지요. 지금의 우리처럼요." 트집을 잡아 그들을 혼내주려 했던 알렉산드로스는 결국 그들의 화법에 감동하여 그들을 그대로 보내준다.

이윤기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설명과 변명과 해명이 필요한 시끄러운 세상과는 멀리 떨어진 채 한적한 숲 속을 유유자적하는 것 같다. 그것도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빽빽하게 우거진 편백나무 숲을 거니는 것 같다. 그래서 무거운 머리가 금세 가벼워지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치 내가 그런 대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대리만족과 함께 통쾌함과 후련함이 밀려온다.

촌철살인의 수사법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공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불교의 선문답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 수사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그리스 로마의 영웅들은 불교의 고승에 필적한다. 이윤기의 영웅들은 모두 이런 수사법의 도사들이다. 그는 마치 영웅이 되려면 이런 수사법에 능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이윤기의 의중은 다른 데에 있다. 그는 영웅들이 그런 수사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 이유를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것은 영웅들이 "자기보다 큰 것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결국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가 계속해서 클로즈업시키고 있는 영웅들의 수사법은 단순한 수사법이 아니다. 그것은 시련의 미학을 상징한다. 시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이윤기의 책에 등장하는 20명의 그리스 로마 영웅들이 모두 끝까지 진정한 자유를 누린 것은 아니다. 그는 영웅들에 대해 이렇게 경고하기 때문이다. "영웅에게는 상승과 하강의 주기가 있다. 욱일승천하던 영웅도 때가 되면 쓰러진다. 외부의 적에 쓰러지기도 하고 내부에서 싹트는 '히브리스(Hybris)', 즉 '오만'에 휘둘리다가 쓰러지기도 한다. 오만이 부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알렉산드로스가 쓰러진 것도 바로 '보이지 않는 적'인 내부의 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윤기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웅보다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가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을 자기식대로 쓰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또 그가 선별한 새로운 영웅들이 정치가가 아니라 탈레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대부분 철학자였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윤기에 의하면 현대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영웅이란 바로 모든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다.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운 사람이다. 그래서 이윤기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안티스테네스의 말을 인용하여 최고의 선은 자유이며,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하며, 재물이나 명예에 구애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가령 디오게네스는 자신을 참모로 기용하기 위해 찾아온 하늘의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었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에게 대담하게도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할 정도로 모든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인이었다.

기원전 5세기에 활동했던 아테네의 아리스테이데스라는 정치가도 이윤기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자유인이다. 그는 공명정대한 의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 당시 아테네에는 도편추방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것은 범죄에 대한 징벌 수단이 아니라 권력의 편중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직접 투표에 의해 추방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6000표 이상을 얻은 사람은 아테네를 10년 동안 떠나있어야 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추방자 후보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그가 막 투표장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장님이 골편을 내밀면서 아리스테이데스라는 이름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그 이유를 묻자, 그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가는 곳마다 그 사람을 의로운 양반이라고 추켜세우니 듣기 거북하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그 골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소경에게 건네주었다.

이런 자유인의 모습은 이윤기가 선별한 여러 영웅들을 거쳐 소크라테스에게서 정점을 이룬다. 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먹고 죽기 바로 직전 친구 크리톤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까 잊지 말고 갚아 주게." 이윤기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당시 그리스 땅에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빌어서 병이 나으면 이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살이라는 거대한 병통에서 놓여나게 되었으니 마땅히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바쳐야 하는데 그걸 바치지 못하게 되었으니 크리톤에게, 자기를 대신하여 바쳐달라고 한 것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을 읽고 있는 내내 촌철살인적인 저자의 '일갈(一喝)'이 계속해서 귓가를 때린다.

"진정한 영웅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놓은 사람이다. 진정한 영웅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버리고 내려놓아라!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더 버리고 더 내려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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