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 오래된 상처를 알아차리고 다정하게 회복하기
멜라니 피그니터 지음, 김희상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9월
평점 :
삶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헤쳐 드리는
소울맘코치 박상림입니다.
이미 일어난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그 과거가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면 아이를 만나는 것은 과거에 계속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과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가 어린 나의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내면 아이를 만나는 여행에 앞서 감정 치유의 주요 단계를 알아두면 좋다. 첫 단계는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변화이다. 변화는 치유에 이르는 전 단계이다. 변화하려면 우리는 새로운 관점, 새로운 신념, 새로운 행동을 습득해야 한다. 마음 훈련으로 차근차근 쌓아가야 비로소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p25-26
심리학이 말하는 '다시 부모 되어주기' 치료법에 공감이 갑니다. 어렸을 때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감정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에게 '다시 부모 되어주기'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는 것이기에 다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내면 아이? 내면 아이란 어린 시절에 겪은 모든 감정과 기억과 경험이 저장된 마음 한구석을 일컫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두 명의 내면 아이가 있는데 한 명은 밝고 긍정적이고, 다른 아이는 어둡고 부정적입니다. 두 아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할지 결정합니다.
우리의 잠재의식의 70~90%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잠재의식은 우리 인생을 지배합니다. 내면 아이는 무의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내면 아이를 치유하지 않고 버려두는 일은 어른이 된 내가 일곱 살에 착용하던 보호 장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과 같다. 이런 장비는 어른에게 맞지 않으며, 상처 치유에 효과를 발휘할 수도 없다. 이제 낡은 헬멧과 보호 장구는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리자. 이런 것은 우리를 더 보호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힘들게 한다.
p58-59
우리에게 과거에 만들어진 방식대로 평생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늘 인정받아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를 만족시켜야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만든 가면을 계속 쓰지 않아도 됩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거절이 두려워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인정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지 않는 연습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내면 아이를 만나는 과정은 과거의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앞으로의 선택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내면 아이의 상처에서 벗어나 현재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다. 무의식은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무의식의 이런 면을 활용하여 내면 아이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다. 상상을 통해 상황과 감정을 되살려냄으로써 어린 시절의 기억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는 것이 핵심이다. 이로써 해묵은 아픔은 줄어들고, 내면 아이는 사랑과 기쁨과 안전을 누린다.
p235
첫 번째는 상상으로 직접 핵심 상처에 접근해 당시 상황을 그려보며, 무엇이 원인이고 어떤 것을 더 낫게 바꿀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과감하게, 그러나 안전거리는 확보하고 당시의 상처와는 무관하게 상상력을 발휘해 어떻게 하면 치유가 이뤄질지 새로운 스토리를 쓰는 것입니다.
과거가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수는 있지만, 나의 미래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다시 쓸 수는 없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나를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책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를 돌보는 책이기도 합니다
인정받고 싶었던 아이,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혼나지 않으려고 애썼던 아이,
버림받지 않으려고 자신의 마음을 숨겼던 아이.
그 아이가 잘못해서 상처받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사랑과 안전을 원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내가 그 아이의 편이 되어주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지금의 나 역시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쩌면 마음의 회복은 거창한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괜찮아. 그때의 너는 최선을 다했어. 이제는 내가 너를 돌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