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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집 - 평생에 걸쳐 다듬어낸 21편의 작품들 ㅣ 세기의 책들 20선, 천년의 지혜 시리즈 1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서진 기획 / 스노우폭스북스 / 2026년 5월
평점 :
삶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헤쳐 드리는
소울맘코치 박상림입니다.
100년 전 러시아 농촌의 거친 입말을
단단하고 정결하게 다듬어 낸 책입니다.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잊어버리셨나요?
톨스토이가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 질문이,
우리의 삶을 깨우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직접 밭을 갈고 구두를 만들었고, 농부들이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를 글로 옮겼습니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절반이 바로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p5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는 1880년대, 인생 최고의 정점에서 깊은 내면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내가 이토록 유명하고 부유한데,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그 어떤 명성도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묵묵히, 그리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농부들의 삶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사람이 자기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톨스토이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랑'은 톨스토이 작품 속에 늘 작은 곳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듭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86년 출간한 중편으로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19세기 러시아 최고의 소설"이라고 평했으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 의과대학과 법학대학원에서 삶과 죽음의 본질을 성찰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p177
성공 가도를 달리던 평범한 한 관리인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사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봅니다. 흥미롭게도 소설의 1장에서는 주인공이 이미 죽어 있고, 그의 동료들은 승진을 계산하며 아내는 연금을 따지는 속물적인 민낯이 드러납니다. "죽음이 끝났다. 이제 없다."라고 외치며 숨을 거두는 그의 마지막은 가짜 소음에 떠밀려 사는 우리에게 강렬한 충격을 줍니다.
일상에서 사회적 직책, 경제적 성취, 타인의 평판이라는 ‘채움’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세상이 요구하는 규칙과 소음들에만 떠밀려 사는 삶이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세상은 나의 부재를 슬퍼하기보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계산할 뿐이라는 비정한 현실은, 우리가 붙잡으려 애쓰는 가짜 가치들의 민낯을 폭로합니다.
나는 지금 진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사회가 옳다고 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지금의 내 모습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1889년에 발표된 중편으로, 한 남자가 야간열차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이 자기 아내를 죽인 사연을 털어놓는 1인칭 독백 형식의 작품이다. 결혼·욕망·질투·살인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19세기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p220
야간열차 안에서 한 남자는 냉소적으로 외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욕망에 붙이는 이름이오. 결혼은 그 욕망 위에 세워진 거짓말이오." 톨스토이는 이 파격적인 고백을 통해 우리가 사랑이라 착각하는 이기적인 탐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발가벗깁니다.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통해 나의 외로움을 채우고, 나의 불안을 끄고, 나의 소유욕을 만족시키려는 '자기중심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곤 합니다.
톨스토이의 이 날카로운 고찰은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을 투사하여 만들어낸 환상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내 뜻대로 상대가 움직여주기를 바라고, 상대를 내 소유물처럼 통제하려 드는 순간, 사랑은 가장 잔인한 폭력이자 집착으로 변질됩니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과 이기적인 욕심을 비워내지 않은 채 채우려고만 하는 관계는 결국 서로를 갉아먹는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안전한 거리를 유지해야겠습니다. 상대의 행동을 내 이익과 연결 지어 판단하지 않고, 온전한 단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존중하겠습니다.
<알료샤 단지> 1905년에 쓰여 톨스토이 사후에 발표된 짧은 단편이다. 평생 묵묵히 자기 일만 하며 살다가 짧게 떠난 한 농민 청년의 생애를 그린다. 한 사람이 평생 자기를 위해 무엇을 한 적이 없어도 그 삶이 어떻게 단단할 수 있는지를 응시한 톨스토이 만년의 걸작이다.
평생 묵묵히 자기 일만 하며 바보처럼 살다 간 농민 청년 알료샤는 타인을 미워하지도,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는 가장 순수한 인간입니다. 주인과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지 못했을 때도 그는 원망 대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평생 좋은 사람을 한 번 만났던 것에 감사하오. 그것으로 충분하오."
이 짧은 단편을 보면서 이렇게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도 처음입니다. 한 편의 영화를 잠시 본 것처럼 알료샤를 욕하면서 "미친 거 아냐?" 소리를 지르면서 읽었습니다. 죽어가는 그의 모습에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료샤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했고, 짧게 한 사람을 사랑했고, 평온한 얼굴로 떠났다."
"오직 우스티니아만이 알료샤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부엌에서 일을 하면서 가끔 알료샤를 떠올렸다. 마지막에 그녀의 손을 잡고 평생 좋은 사람을 한 번 만났던 것에 감사하다는 한마디. 그녀는 평생 그것들을 가슴에 품었다."
톨스토이가 발견한 알료샤의 삶은 세상의 거친 소음과 기준을 완전히 비워낸 자리에 도달한 '가장 완벽한 존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원망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고 단단한 내면의 깊이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거친 소음과 가짜 성취를 비워낸 자리에 비로소 인간을 살게 하는 진짜 본질이 깃든다는 실존적 깨달음입니다. 인생을 가장 풍요롭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성공의 채움이 아니라,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오늘 내 곁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 대가 없는 호의와 다정한 온기를 건네는
일상의 '작은 사랑의 동작들'임을 거장은 우리에게 나직이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