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노트의 인문학 사전 - 서양 철학사를 한 눈에 파악하는
이서영 지음 / 솔아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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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헤쳐 드리는

소울맘코치 박상림입니다.

단어 하나가 생기면,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이 하나 더 생깁니다.

인문학 사전은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무심한 일상에 작은 물음표를 붙이는 책입니다.

인문학 용어를 삶을 번역하는 '동사'로

보여주는 책을 소개합니다.


존재는 하나

파르메니데스 (그리스의 철학자 /BC510~450년)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은 변한다"라고 말할 때, 그는 단호하게 "존재는 있고, 비존재는 없다."라고 말했다. 변화란 감각의 착각일 뿐이었다. 우리가 늙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존재 그 자체는 결코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는 흐르지 않고, 단단하게 머문다.

P26


존재는 하나

움직이지 않음

나누어지지 않음

영원함

우리가 보는 탄생과 소멸, 변화와 운동은 모두 감각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변하는 것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감각이 아니라 이성으로 볼 때 보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나라는 존재의 중심으로 과연 흔들리는가?

"같은 것은 생각됨과 존재함이다."

아이들의 성적, 사람들의 표정, 주식 차트의 등락을 보며 일희일비합니다.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의 그림자'라고 불렀습니다. 파도가 높게 치고(변화), 거품이 일다 사라져도(탄생과 소멸), 바다라는 존재 그 자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코칭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아닌 '존재'를 보세요. 이 맥락과 함께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황은 변해도 존재의 귀함은 변하지 않는다. '믿음'을 전달할 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됩니다.


존재의 시간

하이데거(독일 철학자 / AD 1889~1976)

"우리는 존재를 잊고 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을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현존재(Dasein)라고 불렀다. 세계 안에 이미 던져져 있으면서, 그 세계를 이해하고 선택해야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뜻이다.

p62


우리는 항상 어떤 세계 속에 있습니다. 도구와 사람, 언어와 분위기 속에 이미 얽혀 있습니다. 이 상태를 세계-내-존재라 부릅니다. 현존재를 깨우는 결정적 사건은 죽음의 자각입니다.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오직 나의 가능성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만 살고 있지 않은가?

바쁨 속에서 존재를 잊고 있지는 않은가?

내 삶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말속에 세계가 살고, 말이 가난해질 때 존재도 가난해진다는 뜻입니다.

단어의 한계가 곧 우리 세계의 한계입니다. '짜증 나'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면 내 존재는 그만큼 단순해지지만, 그 안의 섬세한 감정(서운함, 아쉬움, 고독)을 언어로 집을 지어줄 때 우리 존재는 풍성해집니다.

변하지 않는 본질(존재)을 믿되, 유한한 시간(죽음)을 인식하며 오늘 하루를 가장 뜨겁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하이데거가 말한 '본래적 실존'의 완성입니다.


인간중심 치료

로저스(미국 심리학자 /AD 1902~1987)

"사람은 본래 선하고, 성장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이 믿음에서 인간중심 치료가 태어났다. 치료는 '기술'보다 '관계'이며, '판단'보다 '이해'라는 선언이다.

P89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 평가하지 않고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

공감적 이해 : 상대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능력

일치성(진실성) : 치료자 자신이 가면을 쓰지 않는 상태

"문제는 네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네가 무엇이 되어 가느냐이다."

나는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이해하려 하는가?

나 자신에게 무조건적 존중을 주고 있는가?

안전한 관계가 내 주변에 있는가?

"사람은 신뢰받을 때 가장 빨리 성장한다."

로저스는 인간을 고장 난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꽃을 피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씨앗으로 보았습니다. 무조건적 존중은 상대의 행위가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위(Doing) 뒤에 숨겨진 그 사람의 존재(Being) 그 자체를 판단 없이 수용하는 것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땅은 씨앗을 품어주듯 말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하더라도, 그것은 완성된 종착역이 아니라 '성장해가는 과정의 한 지점'일 뿐입니다. 사람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로저스 철학의 핵심입니다.


아비투스

부르디외(프랑스 사회학자 / AD 1930~2002)

"왜 불평등은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는가?"

계급은 법 조항이 아니라 몸의 습관과 취향 속에서 재생산된다. 이 열쇠가 바로 아비투스(Habitus)다.

p114


아비투스는 생각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방식, 세상을 대하는 무의식적 태도입니다. 우리는 선택하고 믿지만, 사실은 길들여진 경로를 걷습니다. 말투와 표정, 음식 취향, 옷차림, 공부와 여가 방식 등 가장과 학교, 계급 속에서 천천히 새겨집니다. 불평등은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입니다.

경제 자본 - 돈과 재산, 사회 자본 - 인맥과 관계, 문화 자본 - 학력, 취향, 언어가 있습니다. 문화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게 작동합니다.

돈(경제 자본)보다 무서운 것이 취향과 언어(문화 자본)입니다. 같은 학위라도 사용하는 단어의 품격, 예술을 즐기는 태도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며, 이것이 사회적 성공과 신분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됩니다.

교육과 노력이 모든 불평등을 해결한다는 믿음은 환상일 수 있습니다. 출발선 자체가 '문화적 배경'에 의해 이미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는 서늘한 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다른 언어를 접하는 환경을 서서히 노출해 주어야 합니다.

내 취향은 정말 나의 것인가?

학교와 미디어는 어떤 몸을 만들고 있는가?

노력이라는 말 뒤에 가려진 구조는 무엇인가?

"취향은 계급의 표식이다."

자녀에게 '자산'보다 '취향'을 물려줘야 합니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돈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당당한 태도와 품격 있는 언어'입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전시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아이의 몸속에 강력한 '문화 자본'으로 쌓입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사전의 설명은 끝나지만 우리의 질문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내 욕망의 주인은 누구인가?"

"내 언어는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는가?"

반짝이는 이 질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등불이 되길 바랍니다.

이 책은 당신에게 지식을 외우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의 손에 '삶을 번역할 수 있는 사전' 하나를 쥐여줄 뿐입니다.

더 많이 알기보다 '다르게' 보고 싶은 분들,

내 삶의 이정표를 스스로 세우고 싶은 모든 여행자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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