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간다면 이 정도 역사는 알고 가야지 - 일본 여행을 더욱 새롭게 즐기는 방법
송덕호.이우권 지음 / 대한민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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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헤쳐 드리는

소울맘코치 박상림입니다.

라멘 맛집보다 먼저 들러야 할 '일본 역사 맛집

역사를 알고 떠나면 여행의 맛이 달라지는

다정한 가이드북을 소개합니다.


천황은 일본의 교황인가?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다. 실제 통치는 하지 않았다. 진무 천황부터 시작하여 레이와 천황까지 126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p39


실질적 통치는 막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이 담당하였습니다. 쇼군은 우리말로 장군입니다. 약 700년 동안 이 막부가 일본을 지배하였습니다.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가 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쇼군의 막부 체제는 무너지고, 천황에게 통치권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일본은 조선보다 많이 앞서 있었다. 정보 유통의 발전으로 이미 출판 대국 반열에 올라섰고, 문맹률이 아닌 문해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일본은 일찌감치 선진국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있던 셈이었다.

p156


일본은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하게 되었습니다. 개항 이후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여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조선은 1876년 운요호 사전을 계기로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했습니다.

에도 시대는 도시의 발전, 생산력의 증대, 경제 시스템의 구축 등에 있어 막부 시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19세기 초 정도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책을 일상생활에서 접할 정도로 출판 대국이 되었습니다. 신문과 광고도 성행했습니다. 서양의 책과 자료들을 번역하는 활동도 늘었습니다.


천왕과 총리대신 독특한 일본 1당 정치

일본은 자민당이라는 1당의 장기 집권 국가다. 천황은 국가의 상징이고, 실질적인 권한은 '내각총리대신'이 가진다.

p232


오늘날 일본 헌법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천황은 단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만 존재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 권력을 내각에 두는, 즉 의회의 다수당이 운영하는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자유여행으로 일본을 다니기 위해서는 철도와 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일본 천도는 신칸센과 재래선, 공영과 사철 등이 두루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속버스는 별도의 독립된 터미널이 없어 기차역과 연계하여 탑승합니다.


도쿄의 옛 이름은 에도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1590년 에도를 통치의 중심으로 삼았다. 에도 시대의 유적과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 역사 유적들을 둘러보기에 좋다.

p257


황거는 에도 막부 시절 도쿠가와 쇼군이 거처하던 곳입니다. 현재는 일본 천황이 살고 있습니다. 해자 등과 어울려 뛰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

메이지 신궁. 메이지 천황의 능은 교토에 있습니다. 도쿄에는 메이지 천황과 그 왕비를 모시는 신사를 1912년 건설하였습니다. 아름드리나무 등 자연환경이 매우 뛰어납니다. 신주쿠, 시부야 지역을 갈 때 잠깐 들르기 좋은 위치입니다.

에도 도쿄 박물관은 에도 역사 400년간의 생활 모습 등을 복원시켜 놓아서 아주 편하게 구경할 만합니다. 지하철 료고쿠 역에서 가깝습니다.

에도 시대의 건축물들을 모아 놓은 야외 박물관인 에도 도코 건축 박물관. 도코 중심에서 쥬어선을 타고 1시간가량 가면 고가네이시가 있는데 고가네이시 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의 정신적 수도 교토

교토는 794년 칸무 천황이 천도하여 옴으로써 수도가 된 곳입니다. 윤동주 정지용 시비도 여기에 있습니다.

p266


도시샤 대학은 기독교에서 세운 대학으로 일본 최초의 사립대학입니다. 윤동주, 정지용 두 시인이 다녔던 학교로 캠퍼스 한편에 두 시인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니죠죠는 교토 중심에 있는 성입니다. 이 성은 원래는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를 점령한 이후 자신의 저택이자 막부의 본부로 삼아 건설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 통일 후 국가 운영 시책의 선포를 여기서 하였습니다. 도쿠가와 막부 마지막 쇼군이었던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되돌려 준다는 소위 대정봉환 발표도 이곳에서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중에 왜군은 전과를 보고 하기 위해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귀와 코를 무덤으로 만들었는데 약 3만 명에서 5만 명분의 것이라고 합니다. 아픔 역사에 안타까운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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