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 청빈과 이익 사이, 조선 선비들의 머니 스토리
곽재식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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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헤쳐 드리는

소울맘코치 박상림입니다.

"아, 그때 땅을 샀어야 했는데..."

혹시 이 말, 요즘 주식이나 부동산 단톡방에서만 나오는 얘기라고 생각하시나요?

놀랍게도 600년 전 조선의 선비들도 똑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부자들은 땅으로 돈을 쓸어 담는데, 서민들은 왜 갈수록 가난해질까?"라고 한탄하며 밤잠을 설쳤던

정도전, "종이 쪼가리(지폐)를 어떻게 돈으로 믿게 만들지?"를 고민하며 유동성 파티를 기획한 하륜. 우리가 알던 '에헴~' 하고 뒷짐 지던 선비들은 잊으세요. 그들은 사실 조선 최고의 정책 브레인이자, 현실에 미친(?) 경제 덕후들이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 가면 한국판 '조폐공사' 터가 있다?

토정비결의 이지함은 사실 바닥부터 구른 '1타 비즈니스 코치'였다?

박제가는 조선을 '글로벌 업데이트'하고 싶어 했던 테크 리서처였다?


상인이 돈을 많이 벌려면 물건을 최대한 싸게 구해 최대한 비싸게 팔아야 합니다. 상업 활동은 물건을 사는 소비자와 물건을 만든 생산자 양쪽에서 여러 가지 가치를 줍니다. 리처드 엘리는 물건이 유통될 때 소비자가 얻는 효용 네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장소, 시간, 형태, 소유입니다. 이지함은 이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 굶주린 사람을 구하는 데 쓰기도 하였습니다.

게이미피케이션, 곧 게임화.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처럼 느끼게 하여 쉽고 재밌게 참여하도록 이끄는 일. 교육용 게임, 학습용 게임 등이 전형적 사례입니다. 이지함은 둑을 쌓는 노동 작업을 돌멩이로 인형 맞히는 장난이라는 게임으로 즐길 수 있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참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며 일할 수 있는 큰 집을 이지함이 직접 지었고 그들에게 일자리까지 만들어 줬다 합니다. <어우야담> 등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에게 짚신 만드는 일을 가르쳤서 충분히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하였다고 합니다. 자본이 없으면 그만큼 노동을 투입해야 합니다. 자본이 있으면 노동을 덜 투입해도 됩니다.

이지함은 문정왕후 시대에 이지함이 노비로 전락했다면, 선조 시대에는 양반 대접을 받았습니다. 세 가지 중요한 창고 도덕지부고, 인재지부고, 백용지부고. 도덕의 창고, 인재의 창고, 100가지 산업의 창고입니다. "해동청 보라매는 세상에서 사냥을 가장 잘하는 귀한 매이지만, 그 매에게 아침 알리는 일을 시키면 닭보다도 훨씬 못할 것입니다. 한혈구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잘 달리는 귀한 말이지만, 그 말에게 쥐 잡는 일을 시키면 고양이보다도 훨씬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닭에게 사냥을 시키고 고양이를 타고 달리려고 하면, 일이 잘 될 리 있겠습니까?" 각자 적성에 맞는 일을 잘 나눠 맡아 일할 수 있어야 나라가 잘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수록후'라는 글을 보면,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바깥 지방의 다른 민족이 중국을 무너뜨렸다"라는 말은 <반계수록>을 쓴 중요한 목적이 바깥 지방의 다른 민족, 즉 청나라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공전제'로 땅을 주면 자기 땅으로 정해진 구역에선 노력한 만큼 자기 재산을 최대한 잘 가질 수 있게 하면, 각자 열심히 일해 농사를 잘 지으려고 애쓸 것이라 했습니다. 농사가 잘되면 그중 일정량을 세금으로 떼어 가니 세금도 더 많이 걷을 수 있습니다.

'경묘법'이란 사람마다 차지하고 있는 땅이 어디인지 그 넓이와 위치를 정확하게 정해 장부에 기록해 두고, 실제 넓이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자는 취지의 제도입니다. 부동산 등기부를 만들어 놓고 등기부 등본을 쉽게 떼어 볼 수 있게 해 놓는 제도입니다. 조선 시데에서는 '결부법'에 따라 세금을 매겼는데, 땅이 얼마만큼의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세금을 매겼습니다. 재산권을 잘 보호해 주는 방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유형원이 노비 제도 폐지를 주장한 1670년 무렵 이후 130여 년이 지난 1801년 음력 1월 28일, 조선 조정은 궁궐에서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노비들의 해방을 명령했습니다. 정순왕후의 업적으로 그날 해방된 노비의 숫자는 6만 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유수원은 상인 각각의 사업 규모를 크게 만들어 나라를 더 발전시키자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큰 가게를 만들어 운영하도록 해야 상업이 더 발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규모의 경제라는 말을 '출원본 중합력', 즉 밑천을 모으고 힘을 여럿이서 합치는 것입니다. 사업의 규모를 크게 키울 경우, 분업과 전문화의 장점이 커진다고 봤습니다. 큰 대기업이 있어야 물자가 낭비되는 일도 줄어든다고 봤습니다.

상인의 규모를 충분히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액점'이라는 제도를 운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나라에서 일정한 자격을 인정해 준 점포를 말합니다. 규모도 크거니와 사업에 특화된 지식과 실력을 갖춘 큰 가게를 나라에서 인정해 주고 일정한 권리나 특권을 주는 취지의 제도입니다. 대기업이 한 방면의 사업을 완전히 독점하지 못하도록 경쟁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큰 상인은 본점 점주가 되고 작은 상인은 좌점동과가 되어 대기업을 결성하자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서 지금의 본사와 대리점 형태로 협력하는 사업이나 프랜차이즈 형태의 사업과 비슷한 것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 놀랐습니다.

'불치상공'이라고 하여 공업과 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선비가 상업에 손을 대거나 장사에 나서면 그 자체를 흠잡아 자손까지도 벼슬길을 막으려 드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런 제도가 사라져야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 했습니다.


정약용은 수원의 화성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정리해 <상설>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편하게 들어 올릴 수 있는 장비인 거중기. 정약용이 중국에서 전해진 <기기도설>이라는 책에 나온 장비를 보고 개량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기예론>의 핵심은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과학기술이 중요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저극적으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생존은 물론이고 효도와 충성을 위한 일까지도 과학기술 발전으로 이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예는 오랜 세월 쌓이면서 점점 더 좋아지기 때문에,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하루아침에 스스로 기예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기술, 지식, 문화의 경우 다른 누구에게 알려 준다고 내 것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나눠도 줄어들지 않는 특징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라고 합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연구한 기술이나 지식은 기밀로 꽁꽁 묶어둘 것이 아니라 최대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면 좋습니다.

<경세유표>에서 정약용은 '이용감'이라는 관청을 만들어 기술이 발달한 청나라의 지식을 배워 퍼뜨리는 일만 전문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8세기에 국립과학기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막강한 혜택을 주자는 계획을 제시한 셈입니다.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서울에 사는 게 중요하다"라고 솔직히 말하고 있습니다. "뒷날의 계획은 오직 서울의 10리 안에 거처하는 것이다"라고까지 했습니다. 정약용은 전라남도 강진 인근으로 추방당해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그 시절에 수많은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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