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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조국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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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화씨 911에 대한 미국인의 관람 태도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이 케이블 TV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요는 보스턴같은 동부지역에서는 부시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을 더 저질렀는지 알기 위해 이 영화를 보고 ,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는 무어가 어떻게 우리 대장 부시를 씹어대는지 알기 위해 이 영화를 보며, LA를 위시한 서부지역에서는 스파이더맨Ⅱ가 매진되어 할 수 없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거친 기준을 이 책에 적용하여 볼 때,  그와 나와바리가 비슷한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불행히도 없었고, 비분강개에 도움이 되기엔 내가 너무 영악하다. 나와바리가 다른 동부인들에겐 미처 체크하지 못한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남부인들은 아마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니네들 조롱하려고 쓴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연히 또는 할 수 없이 이 책을 보게 된 서부지역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떻게 다가올까?  대중적 교양서의 의도를 저자가 서두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전형적인 법대 논문형식의 딱딱한 목차와 작위, 추지금지 등의 법학용어를 사용하면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 구성내용을 상술하는 책의 도입부 부분은 분명 그들에게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라 보여진다. 나름의 전문용어를 가지고 있는 전공을 택하는 학자들에겐 좀 더 대중적인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저자도 이런 면에서 아쉽다. 포섭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서부인들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나와바리 비슷한 동부인들에게 한마디.

양심적 집총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법조계에 물의(?)를 일으킨 그 판사는 특전사 베레모를 자랑스레 판사실 벽에 모셔놓은 국가신봉자이자 주어진 양형권의 최대치를 사용하여 법정최고형을 선고하면서 훈계를 일삼는 사법엘리트주의자이다. 그는 양심적 집총거부에 대한 무죄판결에 대해 자신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배워왔던 것을 그대로 실천한 것일 뿐이라 잘라 말했다. 그 많던 우리들은 다 어디로 갔나. 이 쯤되면 결국 소신판결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강단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하다못해 특전사캠프같은 곳이라도 들어가 배포나 키워놔야 하는 걸까? 좀 더 긴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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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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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사설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당시 출간되지 얼마 안 된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 실려 있었다. 이건 직유법이 쓰인 문장이고 이건 의인법, 이건 은유법 하며 밑줄 긋게 하기 좋은 구절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던 글. 게다가 내 교사용 자습서에는 '김훈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형성한 문장가라는 작자설명도 담겨 있었다. 이제 국정교과서도 업데이트에 신경을 쓰나?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그런 그가 이순신을 소재로 한 글을 내놓았다. 스스로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자기 안의 유배를 자청한 김훈이 가진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개인에 대한 애착은 이순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미루어 볼 때 짐짓 어울리지 않는 부조리로 보여진다. 엉큼한 김훈 앞에서 잠시 머쓱해진다. 그의 문장은 이 소설에서 어떠한 요설을 부리게 될까?

이순신 자살설, 내지 의도적 전사설에 강한 혐의를 두고 있는 김훈은 그 원인에 집중하며 사료를 뒤적이다, 충무공의 탈정치성과 한없는 단순성, 무인의 순수함에 흠뻑 취한다. 그가 원했던 지향점이었으며 예정된 비극 역시 그의 창작욕을 들쑤셔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작자의 주인공에 대한 경배는 짐짓 도를 넘어보인다.(이 노회한 작가의 성정을 비추어 볼 때 의도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이 소설이 1인칭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저자와 주인공을 구분하기란 가능하지 않다. 그의 문체는 어느덧 소설 속에 인용된 난중일기와 닮아 있다. 김훈과 충무공은 이 소설에서 합일되어 독자들을 꽁꽁 묶어버린다. 김훈의 문장력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남용되지 않으며 지독하게 독자들을 500년전의 조선으로 다그쳐 몰고 간다. 이 책을 읽다보면 머리 속에 백성들의 피울음과 바닷물에 떠다니는 수급들과 쇠갈쿠리, 구더기와 된장독과 칼의 울음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김훈은 지독한 사랑을 하는 기분으로 글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 그 지독한 기분을 독자들에게 떠밀어 놓고 자신은 돈을 벌다니 그 꿍꿍이란.

저승의 충무공은 이 책에 대해 무어라 말할까 생각해보았다.
'맑음, 김훈이 나에 대해 평한 글을 보았다. 그나마 좀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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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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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다시 랜드 앤 프리덤을 비디오방에서 빌려 보았다. 전투가 끝난 뒤 죽은 동지를 묻고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에서 눈밑가가 축축해졌다. 여전한 나의 이 감흥이 일말의 신파가 아니기를.

문득 몇 년 전 이 영화가 개봉하던 때가 생각났다. 스페인 내전에 관해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켄 로치는 도둑같이 다가와선 나를 울려버렸다. 군대가기 며칠 전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들을 들은 한 지인이 내게 조지 오웰을 권했다. '조지 오웰? 그 동물 농장인가 그거 쓴 반공작가? 무슨 시덥잖은 소리야.' 조금만 더 세심했더라면. 그 때에도 까탈루냐 찬가는 번역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그가 어떻게 읽혀져 왔는지 오웰이 알았다면, 아마 저승에서도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고만 볼 수도 없다. 오웰의 대표작들이 냉전시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뒤늦게 나마 까탈루냐 찬가를 통해 오웰을 재발견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가 견지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더라도, 생전에 그는 어느 체제도 편들지 않았으나 동시에 어떤 예술도 정치적이라 확신하며 침묵을 미덕으로 삼지도 않았다.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면 흔히 빠지게 되는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적극적 내지 암묵적 동의라는 그 당시 조류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은 그와 비슷한 동년배 작가군 몇몇들만 보더라도 신기한 일이다.('1984'에서의 섬뜩한 통찰력 등을 미리 경험했더라도 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작자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 이 스페인 까딸루냐 지방에서의 참전경험에 기반한다.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체험하였는가. 그리고 이 때문에 훌륭한 르뽀문학을 망쳐버렸다는 시중의 평을 듣고도 왜 트로츠키파라는 저주받은 이단종파의 멍에를 진 무리를 옹호하는 기나긴 장을 덧붙였는가. 이 책을 읽어가면 맨 얼굴의 오웰이 당신에게 때로는 나른하게 때로는 짖궃게 때로는 침을 튀기며 말할 것이다. 르뽀문학의 모든 요소를 갖춘 걸작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양 체제와는 다른 시각으로 인해 상반된 방향에서 왜곡된 이해를 강요받았던 오웰, 그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탄생 100주년이 지난 오늘에서도 여전히 난제이다. 오웰이 자기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달라는 말 쯤은 이 찬가를 읽다보면 곳곳의 행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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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항구
올리비에 롤랭 지음, 우종길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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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손에 건네져온 책이다. 프랑스 소설이라곤 많이 읽히는 베르베르조차 낯설어하는 나로선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통속적 시대를 등지고 유배를 자청한 68세대 두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명에 내 방 어디엔가 던져져 있던 이 책을 꺼내 먼지를 털고 펼쳐보았다.

나이가 들수록 좀더 경쾌한 읽을거리만을 찾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러하다. 게다가 후일담문학의 위선적인 지리함에는 이미 이골이 난 지경이어서 한 때 우리 문학계를 휩쓸었던 '우린 젊을 때 이렇게 살았어, 그 땐 정말 순수하게 모든 걸 다 바쳤다구, 지금시대는 너무 경박해, 세상도 사람도,' 라는 식의 레파토리를 가진 책들의 하나같이 갑빠를 내세운 중얼거림은 몇 년동안 소설이라는 장르를 멀리 할 정도의 후유증을 내게 안겨주었다.

배경이 프랑스이고 역사적 사건이 68혁명이며 작가가 프랑스인이라고 해서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세련되게 표현되고 있지만, 작가는 소설의 나와 구분되지 않으며, 특유의 냉소적 태도로 짐짓 객관적 입지를 독자에게 각인시키려고 하나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우리를 내려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배반'에 대한 적나라한 통찰로 빛이 난다. 이별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서로의 배반이라는 래디컬한 작가의 서술을 읽다가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숨이 막혔다. 결국은 그러한 것인가. 그렇더라도 그녀의 경박함을 탓하는 것은 그 세대의 벽인 것 같다.

부분이 전체를 책임져주는 책. 그러나 중얼거리는 자는 결국 순응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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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휴머니스트 교양을 읽는다 3
최병권.이정옥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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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양을 읽는다>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을 선뜻 구입한 것은 말로만 듣던 바깔로레아 논술고사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순수한 호기심과 더불어 대입논술을 가르치기 위한 기초자료수집이라는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인간 / 인문학 / 예술 / 과학 / 정치와 권리 / 윤리 등 6개 영역의 철학적 논제들과 그에 대한 모범답안들로 이루어진 본문의 내용은 문답식의 딱딱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대학입학 논술고사라는 용도에 비추어 내용이 주는 충격은 기대이상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읽기에 속도감이 붙어 어렵지 않게 책을 덮었다. 더구나 나와 같이 실용적인 이유에서 책을 구입하였다면 몇 가지 써먹을 만한 중요한 소스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최근 7차 교육과정에 들어가면서 개선된 부분이 여럿 존재하지만 여전히 공교육은 비효율의 극치이며 비대화된 사교육 역시 학생들에겐 또 하나의 억압기제일 뿐이다. 이것이 예전의 비책들이 그러했듯이 향후 몇 년 동안 개선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만약 우리나라 대학의 논술고사가 갑자기 바깔로레아 수준이 된다면 결국 또 하나의 고급 사교육 시장을 만들어 계급 재생산 구조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프랑스를 부러워해야 함은 바깔로레아와 같은 시험이 아니라 그러한 시험을 가능하게 한 프랑스의 탄탄한 공교육 구조, 그리고 그 저변의 공평에 근거한 교육이념과 성숙한 사회의식 등에 맞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책의 편집의도를 짐작하게 할 머리말의 몇 부분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당황스럽다. '무국경의 세계화', '지식경쟁의 시대', '이 시대 승자클럽', '새 시대의 하인이 아니라 주인이 될 높은 자질의 국민' 운운하는 신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절묘한 고리타분함의 배합이란. 바깔로레아에 나타난 이른바 당신들이 말하는 교양이라는 것이 과연 그러한 것에 써먹는 것인가? 제발 품위있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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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3-3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도님!
마지막 구절 "제발 품위있게 살자"를 읽고는 추천 안 누를 수가 없군요, 흐흐.
그런데 언제 옷 입으실 건데요? 흐흐,

도도 2004-05-1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쿄쿄~ 몸만 벗은거지.. 맘까지 벗은건 아니요..(어디서 많이 들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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