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페미니스트, 반인종차별활동가인 아시아계프랑스인 작가 Grace Ly가 진행하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GV에 다녀왔다. "kiff ta race"라는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로 처음 알게 된 이후로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접했던 그녀는 프랑스의 페미니즘 이슈와 인종차별, 특히 아시안 여성으로서 겪는 교차적 차별에 대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거의 최초의 활동가이자 작가라 할 수 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예전에 비행기 안에서 봤는데, 당시 기내 불안정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기장의 안내 방송으로 거의 5분에 한번씩 영화가 끊겼었다. 그 요동치고 끊기는 상황 속에서도 인상깊게 봤었던 영화인지라 재개봉 GV이 열린다 하니, 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진행한다고 하니 바로 표를 끊어서 극장에 갔다.
영화는 다시 봐도 좋았고 고요한 눈물이 흐르게 하는 장면도 있었다.
영화 끝나고 그레이스의 해석과 관객들의 질의응답이 내 영화 감상과는 사뭇 달라 재미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그리고 이번에 다시 봤을 때도 역시 서방세계의 아시아계 1세대(혹은 1.5세대)이민자의 정체성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걸 삼각관계 연애 스토리를 메인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그레이스 조차도! 연애 스토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삼각관계? 극 중 노라와 해성과 심지어 노라의 남편의 삼각관계라고는 난 정말 생각도 안해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성의 역 조차도 노라의 옛 첫사랑을 가장한, 노라가 이민을 가서 새로 얻기 위해 포기해야했던 것들, 혹은 과거에 두고 떠나야만 했던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삼각관계요...? 많이 놀랐다... 내가 노라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한 것일까?
그레이스의 한줄평도 신선했다. 그레이스는 '이민자성을 가진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이민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슬프고, 비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을 다룰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었고,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이민자 소재의 작품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고도 말했다. 프랑스에서 이민, 이민자 스토리의 컨텐츠라고 한다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주로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프랑스에 와서 겪은 고난과 폭력, 그 내면에 있는 인종차별과 제국주의 그리고 가난이기에 그런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보면 신선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레이스 리는 영화 초반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 노라와 노라의 부모님 (특히 엄마)가 얼마나 건강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극 중 노라의 부모님이 90년대 중후반에 둘다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점 점을 강조하며 노라가 가진 이민자의 특성이 다른 이민자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지식인 계층, 중산층 가정의 이민자일거라는 영화 플롯. 아 그리고 특히 그레이스가 웃으면서 신선했다고 강조한 장면이, 노라가 대학생 때 혼자 자취를 할 때 엄마와 자연스럽게 '팝콘을 먹으며'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이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했다. 이민자 1.5세대이자 부모와 같이 이민 온 딸이 전혀 긴장하지 않고 엄마와 자연스럽게 통화를 하는 모습, 그리고 무려 엄마가 먼저 해성의 소식에 대해 언급을 하며 이 장면이 자연스럽게 모녀의 관계가 어떤지 보여주며 그 모녀의 관계가 우리가 (프랑스) 미디어에서 주로 보여주는 이민자 가족의 가족 관계성과는 얼마나 다른지 그레이스는 짚고 넘어갔다. 그리고 심지어 노라와 해성의 이별 전 마지막 추억을 남겨준 것도 노라의 엄마라는 점에서, 노라의 엄마가 딸의 인간관계와 감정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고도 했는데 나는 영화를 두 번 보는 동안 그 점은 캐치하지 못했어서 재밌었다.
아무튼 이 얘기를 어쩌다보니 길게 쓰게 되었다. 원래는 이 GV로 인해 Grace Ly의 신간인 'Les Nouveaux territoires'(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새로운 영토? 새로운 땅?') 를 사려고 동네 단골 서점에 갔다가 서점 주인에게 전혀 생뚱맞게 다른 책을 추천받아 영업을 당해 읽은 책이 너무 재밌었다는... 그 책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사족이 너무 길어져버렸다. 그렇다면 이만 ... 나중에 언젠가..는 아니고 조만간 그 책에 대해서 또 쓸 나의 정신력이 남아있길 바라며...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