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과학대중화 두마리 토끼 잡기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과학책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통념을 깨고 무려 25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과학콘서트'의 저자. 최근에는 한국과 미국의 명문대에 동시에 교수로 임용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정재승 교수를 만났다.

정 교수는 뛰어난 필력으로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저술가인 동시에 KBS ‘TV 책을 말하다’의 진행자로, 재미있게 과학을 소개하는 강연자로 맹활약 중이다. 딱딱해지기 쉬운 과학을 문화와 결합시켜 우리나라 과학 대중화에 크게 공헌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KA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예일대 박사 후 연구원 지낸 뒤 지금까지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분야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왔다. 그 결과 6월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과와 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에 동시에 교수로 임용되는 영예를 누리게 됐다. 먼저 컬럼비아대에 임용됐는데 정 교수가 모교인 KAIST에서 후배들과 함께 연구하고 싶다는 뜻을 버리지 않아 양쪽에 번갈아 지내면서 연구와 강의를 맡게 됐다는 후문이다. 다음은 정재승 교수와의 일문일답.

- KAIST와 컬럼비아대에서 어떤 연구를 하게 되나?

두 대학은 매우 훌륭한 연구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특성이 조금씩 달라 제게 좋은 연구 환경을 제공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의 경우, 정신질환자들의 뇌영상 데이터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정신질환의 질병기작을 밝히고 정신질환자들의 뇌를 모델링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반면 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고 컴퓨터 환경이 좋아서, 하나의 신경세포에서부터 작은 신경세포연결망이 어떻게 정보를 처리해서 학습과 기억을 하게 되는지 연구를 할 예정입니다.
콜롬비아에서는 주로 숲을 관찰한다면, KAIST에서는 나무를 관찰한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 두 연구가 서로 동떨어진 연구가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면서 궁극적으로는 통합될 수 있는 연구가 될 것입니다.

- 국내와 미국의 명문대에 동시에 교수로 임용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어떤 장점을 활용할 계획인가?

제 관심은 대뇌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해 뛰어난 지적 활동을 할 수 있기 됐는지 그 기작을 밝혀내고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뇌에 문제가 있어 그런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뇌 데이터가 필요한데, KAIST에는 의대가 없기 때문에 제가 그런 데이터를 얻기 힘들죠. 반면 콜롬비아의대 정신과는 임상학과다 보니 귀중한 데이터는 많지만 박사과정 학생들이 많지 않아 분석할 연구인력이 부족한 편입니다.
그래서 두 대학의 장단점을 충분히 활용해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는 좋은 데이터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컬럼비아 의대를 위해서는 뛰어난 이공계 학생들이 의학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 앞으로도 과학 대중화를 위한 저술, 강연, 방송 등의 활동을 계속 병행할 예정인지?

과학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를 많은 사람들에게 쉬운 언어로 소개하고 과학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함께 토론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지요. 앞으로도 그런 활동은 계속 병행할 예정입니다. 다만 그 동안 쓰지 못했던 책을 쓰는데 좀더 집중할 예정입니다.
지금 맡고 있는 'TV, 책을 말하다'의 진행은 과학책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관심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활동이라 꾸준히 할 생각이구요. 무엇보다도 제가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 과학기술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새로운 길은 때론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저는 과학자들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고 정부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파스퇴르의 말처럼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과학기술이 무엇인지 과학자로서 늘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홍재 기자 ecos@ksf.or.kr
 
   
  2004.07.12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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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section-004000000/2004/05/004000000200405231857213.html

“기업 지배구조 규제 등 정부개혁은 친기업적”


스티글리츠-장하준 교수 한국경제 대담

“칠레와 유사한 자본유입세(inflow tax)가 고려될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헤지펀드 등 단기 해외자본 유출입에 따른 부작용을 억제할 정책으로 자본유입세 도입과 자본이익에 대한 과세를 제시했다. 그는 단기자본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는 정당한 과세정책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지난 19일 방한 중이던 스티글리츠 교수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초청해 서울 신라호텔 18층 비즈니스미팅룸에서 한국경제의 진로를 모색해보는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또한 노동과 자본간 대타협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협약과 재벌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역설하며, 제대로 된 정부 규제와 개혁은 ‘친기업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혁신은 중소기업에서 나온다고 지적하고, 한국경제의 새 모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상품, 금융, 노동시장에 나타나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관한 연구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시장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경우 각 경제주체들 사이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자원배분의 왜곡이 나타나며, 시장은 그 자체로 최고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1997년부터 99년까지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로 재직했을 때는 금융·외환위기 국가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및 재정긴축 처방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경영진은 특혜 누리며 견제는 싫어해
기업이 아니라 자신에 좋은것만 얘기

장하준 교수=한국은 흥미로운 시기에 놓여 있다. 한국의 종전 경제 모델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지나치게 폄하됐고,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새로운 모델을 찾고 있다. 현 시기는 정치적으로 처음으로 중도 내지 중도 좌파 세력이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독특한 상황이다. 새 모델이 절실하다. 물론 우리 나름대로 모델을 모색해야 하겠지만 선진국의 경험 역시 참고하고 싶다. 영미식과 유럽식 경제 모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스티글리츠 교수=동아시아 금융위기 때 외부에서 제기했던 기존 경제 모델에 대한 비판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한 어떤 사람들은 동아시아 경제가 실패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문제가 국제통화기금이나 미국 재무부에서 말한 것처럼 근본적으로 심각한 것이었다면 한국의 회복에는 12개월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당시 중요한 문제로 지적된 과다한 부채는 근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하나의 실수이고, 개선돼야 하는 문제였을 뿐이다. 당시의 한국을 회사에 견주어 말한다면, 최고 재무담당자를 해고하면 될 정도의 상황이었지, 회사를 해체해야 할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영미식 자본주의를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부적합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심각한 빈부 격차와, 의료보장제도 미비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의 영아 사망률은 자메이카보다 높다. 두번째로, 좀더 좁은 경제적인 맥락에서 90년대에 목도한 문제는, 무엇인가 명백하게 제도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이다. 사과 상자 안에 썩은 사과 몇 개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썩은 상태였다.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회계법인과 투자은행, 대기업, 뉴욕 증시, 뮤추얼펀드들이 명백하게 비도덕적인 행위에 관련되어 있었다. 또 노동자를 어느날 불필요해졌다고 해고하고, 다음날 사람이 필요해지면 다시 고용한다고 하면 노동자는 당연히 기업에 충성심을 가질 수 없다. 이런 게 한국처럼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나라의 경제에 좋은 제도는 아니라고 본다.

반면 스웨덴 같은 나라의 경제 모델은 상당히 잘 작동해 왔다. 스웨덴의 경우 미국보다 우월한 사회보장제도와 교육제도, 의료제도를 갖추면서 동시에 컴퓨터나 휴대 전화 분야도 발전해 있는 등 신경제 기반이 뛰어나다.

장=미국 경제 성공의 어두운 면을 많은 이들이 보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한국에서 미국식 경제 모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문제점을 간과한 채,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와 정치적 맥락을 갖고 있는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문제 아닌가 싶다.

스=맞다. 미국은 노예제가 폐지된 뒤에도 100여년 동안 흑인이 여전히 2등 시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던 나라다.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수용한 수준의 빈부 격차는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다. 미국식 경제 제도가 일으키는 또다른 비용은 국민이 생계, 의료문제 등에서 느끼는 불안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는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미국과 미국식 자본주의를 고찰할 때, 우리는 ‘한국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원하는가, 아니면 (한국에도 긍정적 효과를 낼) 미국 자본주의의 특정한 부분을 원하는가’를 물어봐야 한다. 벤처같은 것은 미국식 경제에서 고안된 모델인데 상당히 가치있는 것이고 한국에도 적용 가능한 모델로 보인다.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도 긍정적인 모델이다. 이런 부분은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유럽에는 없는 것들이다.

장=불평등과 불안이 성공적인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한국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득 분배가 잘 된 나라에 속했지만 위기 이후 격차는 벌어졌다. 노동유연성이 높아져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노동자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비정규직 비율은 50%를 웃돌고 있다. 사회 갈등의 잠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고, 성장을 갉아먹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적 협약을 찾고 있다. 특히 이는 자본과 노동의 대타협에 기반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스=공감대를 찾기 위한 사회적 협약, 그 기반으로 노동자-자본가 대타협의 아이디어는 매우 가치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해낸다는 것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정하는 것일텐데, 이는 파이 자체를 키운다는 전제 아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합의를 향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럴 때 모든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고, 그런 예를 보여주는 나라도 많다.

사회적 협약에서는 정부 역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과도한 규제’를 얘기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규제’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나쁜 놈’만은 아니다. 인터넷은 누가 만들었나 미국 정부다. 한국에서도 경제 발전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정부가 매우 중요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가 변화하고 한국이 다른 발전 단계에 들어섬에 따라 이 역할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최소화되는 방향이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타협을 모색하는 데 있어 중심이 돼야 한다.

개도국 자본자유화 비용만 크로 혜택없어
자본유입세 검토‥투기자본엔 세금 높게


△ 19일 오후 신라호텔 비즈니스 미팅룸에서 열린 대담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오른쪽)가 장하준 교수에게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장=정부의 역할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역할에 대해서 말해보자. 재벌 역할을 두고 여런 논쟁이 있어왔다. 재벌을 무능력한 공룡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재벌 자신들은 경제를 견인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이 가운데쯤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스=재벌 문제는 일단 경쟁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재벌은 ‘망하기에는 너무 큰’ 크기를 갖고 있다. 정경유착과 이에 따른 부정부패도 문제다. 기업지배구조에서는 회사의 경영진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두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에서는 회사는 주주의 이익에만 신경쓴다. 반면 유럽식 자본주의는 주주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노동자도 신경쓴다. 나는 유럽의 견해를 지지한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경제이론적 근거나 실증적 증거는 없다.

경영자의 결정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 제도는 이런 면에서 결함이 있다. 주주들은 경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주요 세력이지만 일반적으로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정보가 없기에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에 강력하게 제제를 가하기 어렵다. 은행도 기업의 활동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으나, 90년대에 미국 은행들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또 하나의 견제 매커니즘은 기업인수·합병인데, 나는 내 저서에서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핵심적인 문제는 기업들이 지배구조를 개선하게 하는 유도장치,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안에도 그런 장치가 존재하지만, 항상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정부가 시장 안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매커니즘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에게 이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경제를 더욱 발전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 누가 저지하는지 자명하다. 경영진이다. 경영진은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기에 견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반기업적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된 정부의 규제가 수반하는 개혁은 친기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은 주로 경영진인데, 그들은 기업에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좋은 것을 주로 이야기한다.

빌게이츠나 록펠러는 반독점이 반기업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나는 더 많은 경쟁이 있었다면 미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더 잘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에 끼워판 익스플로러와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는 넷스케이프와 리얼미디어를 고사시켰다. 이런 독점은 기술혁신을 가로막는다.

재벌이 수십년간 한국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재벌은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고, 이제 중요한 문제는 경제가 균형이 잡혀 있느냐이다.

장=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새 시대에 맞는 균형을 이루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스= 한국 경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보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하이테크 분야와 서비스 분야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서비스 분야는 중소기업이 지배적인 분야이고, 이는 결국 중소기업 지원 정책, 중소기업 자본 확보 등의 문제와 연결된다.

하이테크 분야의 연구개발(R&D)에는 대기업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많은 중요한 기술혁신은 중소기업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신약은 중소기업에서 고안돼 대기업에서 시험된다. 대기업에서는 혁신이나 발명이 나오기 어렵다. 대기업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장=오늘날 한국에서는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국내 기업은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요구받고 있지만, 외국기업은 택스헤이븐(조세피난처) 등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거나 투명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가운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더 일반적으론 개방된 자본시장에서 외환위기를 피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외화를 보유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현재 한국은 1400억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연 1%에 불과한 이자만 받으며 썩혀두고 있다.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정책의 자율성이 침해될 정도로 ‘외국인 투자자’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싫어할지 모른다는 강박 관념은 정부 당국자들을 매우 보수적으로 만들고 있고, 이들이 고안한 거시경제정책은 불안과 불평등, 노동시장 유연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전반적인 추세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스= 외환 보유에 드는 비용은 막대하다. 어떤 나라의 경우 국내총생산의 3%에 이른다. 단순히 외환 시장 방어를 위해 이렇게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외환보유고 문제는 정책 자율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것 이상의 문제다. 본질적으로 자본시장에서 하루하루의 이익을 좆는 자본은 장기성장을 신경써야 하는 한국과 개발도상국가의 경제와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서는 자본시장 자유화 비용은 매우 크고, 혜택은 거의 없다. 세계은행도 이제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자본시장 자유화가 적절치 않은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한국 처지에서는 자본시장 자유화와 관련해서 취할 수 있는 조처에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가지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자본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칠레와 유사한 ‘자본유입세’가 고려될 수 있다. (칠레는 1990년대 초반 외국자본들에 유입 자금의 30%를 1년간 기탁하도록 하고 1년이 지나서 나가면 돌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이를 포기하게 하는 가변예치의무제를 도입했다.) 강한 은행 규제를 통해 외국환 거래를 제한하고, 투기성 대출을 규제하는 방안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투기 행위는 국내에서 돈을 빌려 환전한 후 이뤄지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들이 이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약간 더 논쟁적이고 모호하기는 하지만 자금성격을 감안한 자본이익 과세를 들 수 있다. 단기 자본이익 취득에는 높은 세금을, 장기 자본이익 취득에는 낮은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증시에서 어떤 자본이 한달간 치고 빠졌다면 높은 세금을 물지만, 5년 동안 불렸다면 낮은 세금을 내게 하는 식이다. 투기 행위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는 정당한 과세정책이고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미국이 택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물론 단순히 1년, 5년식으로 구분짓는 것보다 더 정교히 고안돼야 한다.

장=그런 경우 자본유입이 멈추거나 빠질 가능성이 없는가

스=일단 칠레의 경우를 보면 과세가 장기자본 유입에는 영향 없고, 약간 증가시키는 효과까지 있었다. 단기에서 장기 위주로 구성이 바뀐 것이다. 두번째로 다시 저축률을 높이고 믿을만한 국내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다. 단기자본의 속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일주일 내에 빠질지도 모르는 외국 자본에 기대 공장을 지을 수는 없다. 단기자본 갖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쓸모가 없다. 상당히 공격적인 발언이고 월가에서 말하는 것과는 반대지만 현실이 그렇다.

장= 좋은 말씀 감사했다. 우리나라가 새 길을 모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리=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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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노무현정부의 경제개혁 전면 재검토 제기


△ “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시켜야 투자도 늘어나고 고용도 창출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

“한국경제문제는 개혁정책의 방향이 잘못된 때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는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개혁론자들’에 의해 추진돼 온 경제개혁 정책이 개혁정책을 통한 시장질서의 확대는 효율성과 공평성을 증대시키는커녕 한국 경제의 장기적 활력을 파괴하고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참여연대 부설연구기관인 참여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한 <시민과 세계> 5월호에 게재한 ’우리경제 개혁의 방향을 다시 생각한다’는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이같은 결과는 새 체제로의 이행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이나 정부의 개혁의지의 부족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혁 아젠다의 근간을 이루는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결과"라면서 " 이제 우리 경제의 개혁방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때"라고 경제개혁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 교수는 특히 "노무현 정부 내부의 인사들을 비롯해 소위 개혁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현재의 경제문제가 ’개혁’ 불충분하게 추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추가적인 시장 개방,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제고, 각종 규제의 과감한 완화 등을 통해 경제의 활력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보수논객들의 노무현 정부 책임론만큼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경제 문제의 근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개혁정책들이 불충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책의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재벌개혁과 관련해 그는 "현재 재벌개혁은 재벌이라는 구조가 과다한 차입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구조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이 분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밖에도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에 의존해 성장해온 주요 원인은 소유권 약화를 꺼린 기업들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동원을 기피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역사가 일천한 관계로 기업내부자금이 절대로 부족했기 때문이며 △ 지금은 전문기업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업의 다각화는 위험을 분산해 적극적 투자를 가능케하고 기존 계열사로부터의 보조를 통해 신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돕는 장점이 있으며 한국기업들이 전문화만 추구했다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현재 한국의 주축산업들의 발전을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물론 재벌들이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피라미드형 출자 등을 통한 ‘가공자본’의 창조도 내부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나쁘게 볼 수만은 없으며 △한국기업들이 높은 이자비용때문에 경상이윤율이 국제적 기준에 비해 낮지만 영업이익율 등 다른 기준을 사용하면 효율성은 국제적으로 매우 높게 나온다는 점에서 재벌들을 비롯한 한국기업들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벌개혁과 함께 추진된 금융개혁은 금융기관의 안정성과 수익성 제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돼 금융기관들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기업금융을 극도로 기피하게 된 결과 대규모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여타 기업들은 대부분 외부자금 동원이 불가능해져 노후화된 설비의 교체마저도 할 수 없는 극도의 기업금융 고갈사태가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은행들이 수익성과 안전성을 추구하면서 기업금융을 회피하고 대신 소비자 금융에 집중하게 되면서 은행간 과다경쟁이 초래되고 그 결과 소비자 대출이 급증하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대출의 감축 결과로 발생한 대규모의 유휴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돼 부동산 경기의 과열로 이어지는 등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 신용불량과 부동산 과열 등의 문제도 기업금융의 붕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또 자본시장의 개방문제와 관련해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은 기업금융을 기피하고 손쉬운 가계금융에 치중해 한국경제의 활력을 해쳐 왔다"고 지적하고 "제조업체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외국인 주주들은 배당을 높이라는 압력을 강하게 행사해 기업이 투자를 위해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점차 줄여 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무엇보다도 현재 개혁정책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 궁극적 목표가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한 뒤 "한국에서 주주자본주의가 자리잡으면서 기업의 장기투자가 어려워지고 기업들이 장기적 목표의 추구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더 힘을 쓰는 상황이 되가고 있으며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설비와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절실한 한국경제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기업의 경영에 있어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 나아가 국민경제의 이익이 적절히 고려되는 체제의 건설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재벌개혁의 대안으로서 "재벌체제의 장점을 인정하고 주주의 이익만이 아닌 국민경제의 이익을 위해 그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억제하는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방안으로 △재벌의 안정지분 확보를 위해 출자총액 제한을 완화하고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하며 △재벌들 사이의 상호출자를 시도하고 △일본과 같이 관련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우호지분 소유를 장려하는 등을 제시한 뒤 이에 대해 재벌들은 주주자본주의 이론을 통해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사회적 간섭을 피하려는 구태를 버리고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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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section-021011000/2003/12/021011000200312250490031.html

한겨레21 2003.12.25

“동북아 금융 허브? 헛고생 마라”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의 허상 폭로해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한국 경제 진단

장하준(40)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부 교수(개발경제)는 지난 10여년간 제3세계 경제와 세계화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해온 대표적인 소장파 경제학자다. 그는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가 개도국·후진국에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환상이라는 것을 지난 200년간의 선진 각국 자본주의 발전연구를 통해 역사적으로 폭로해왔다. 19∼20세기의 선진국 경제발전은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와 국내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1월 한국인 최초로 제도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뮈르달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또 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은 개도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경제발전의 사다리를 오르려 할 때 이 사다리를 차버리는(Kicking Away the Ladder) 수단이라고 줄곧 비판해왔다. 역사적 실증을 통해 세계화에 대한 ‘이론적 저항’을 해온 셈이다. 39살의 나이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후보 물망에 올랐던 장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0년부터 이 대학 교수로 재직해왔다. 고려대학교 교환교수로 올해 한국에 와 있는 그를 만났다.


△ “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시켜야 투자도 늘어나고 고용도 창출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

글로벌 스탠다드 강요하면 안된다

-미국은 제3세계와 개도국이 성장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글로벌 스탠더드나 좋은 기업지배구조는 경제성장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경제가 성숙해 선진국에 진입한 다음에 형성된 것이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입한 게 아니다. 개도국이 자신들의 경제발전 경로를 선택할 때 역사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줘서는 안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면서 이것 안 하면 망한다는 식으로 처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물론 발달된 제도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발달 단계에 맞고 사회적 목표에 부합하는 제도인지 따져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왜곡된 정보란 무엇을 뜻하는가.

=선진국들이 개도국·후진국에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 개방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후진국·개도국이었을 때는 보호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철저히 규제했다. 자유방임 시장논리를 전파하는 미국을 보자. 유치산업 보호의 원조이자 모국은 사실 미국이다. 미국은 19세기에 세계 최고의 관세율로 유치산업을 보호했는데, 1890~1910년 관세가 가장 높았던 시기에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1차대전 이전까지 미국은 금융·해운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아예 금지했고, 농지·광산채굴·벌목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강력히 규제했다. 인디애나주에서는 외국 기업에 아예 법적 보호도 못 받게 했다. 미국은 지금도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정부가 개입해 산업정책을 펴고 있다. 전체 연구개발(R&D) 비용 지출을 보면 한국과 일본은 정부 지출이 20∼30%인데 미국은 70% 안팎이다. 국방·항공산업·컴퓨터·생명공학에서 미국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맥도널 더글러스사가 보잉사에 통합될 때 민간 ‘시장’에서 자유롭게 인수합병이 일어난 게 아니다. 미 국방성이 더글러스사의 납품을 3차례 연속 거부하는 방식으로 정부 개입을 통해 조용히 통합시키는 산업정책을 썼다.

-자유무역은 제국주의 팽창의 논리이고 다른 나라의 산업화를 봉쇄하려는 정책인가.

=세계무역기구는 “너희들(개도국)이 지나치게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다 다 망했잖아?”라면서 유치산업 보호는 잘못 쓰면 스스로 다치는 칼이라고 주장한다. 자기들은 그런 칼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무역을 잘못해서 실패한 나라도 있지만, 보호무역을 안 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 보호무역을 안 하고 더 빨리 성장한 국가도 없다. 미국이 2차대전 뒤 무역과 투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지만, 세계 경제의 최강국이 되면서 자유화를 하는 게 자국의 이익에 유리했기 때문이지, 뒤늦게 자유무역 이론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 장하준 교수에게 ‘뮈르달 상’을 안겨준 책, <사다리 차버리기>와 <세계화, 경제발전 그리고 국가의 역할>.

-각종 규제나 노사관계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환란 이후 외국자본에 부실기업을 마구 팔 때 외국인 직접투자가 크게 늘었다. 지금와서 그때에 비해 직접투자가 떨어졌다고 난리고 또 이는 경제정책의 실패 탓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지금도 그때처럼 기업을 막 팔아야 하는 상황이란 말인가? 외국자본이 한국에 들어올 때는 물건 팔아먹을 시장이 얼마나 큰지,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지, 노동력의 질이 어떤지 등을 따지는 것이지 노사관계, 규제, 법인세 같은 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 인센티브로 끌어들인 외국자본은 그 매력이 없어지면 언제든 보따리 싸서 떠나버리게 마련이다. 사실 떠나는 자본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고, 나가기 어려운 외국자본만이 꼭 노사관계가 어떠니 규제가 어떠니 하고 문제 삼는다.

-자본에 색깔과 꼬리표가 있는 건 아닌데.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말은 강대국 자본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지만 자본의 핵심 경영진은 철저하게 국적을 따른다. 물론 기업과 은행을 무조건 한국 사람이 가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자본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한국 경제 시스템을 재조직해야 하는 시점인데, 은행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펀드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재벌 중심으로 가는 것인지 명확한 청사진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세계 금융의 중심이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으로 이동한 것은 그 나라의 제조업 발달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앞으로 100년간 손실을 보전해준다는 약속이 있으면 모를까, 그런 약속 없이 오랫동안 홍콩, 싱가포르에 뿌리박고 영업해온 국제금융 센터들이 한국으로 옮겨올 리 만무하다. 동북아 금융허브는 좋은 말로 헛고생이고, 자칫 남의 장단에 춤추는 꼴이 될 수 있다. 허망한 꿈을 좇을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곳에 우리 경제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 재벌체제는 어떻게 개혁하는 게 바람직한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대성공, 그리고 삼성자동차 실패는 재벌체제라는 같은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재벌체제는 자금동원력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있고 계열 기업간 상호 보조를 통해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산업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채산성 없는 부실기업을 지탱시키고 계열사 연쇄 부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도 크다. 재벌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이나 국민경제 틀 안에서 봐야 한다. 물론 재벌총수 가족의 지배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없애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타율이다. 재벌체제 개혁은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3할대를 치도록 할 것이냐 4할대를 치도록 할 것이냐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경영권 안정을 위한 방안은 없나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크게 축소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투자가 갑자기 예전의 3분의 2 수준으로 뚝 떨어졌는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설비투자 감소는 노무현 죄도 아니고 북핵 죄도 아니다. 한국 경제 시스템이 바뀌면서 투자가 떨어지고 있다. 기업마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단기 수익만 좇다보니 모험적이고 위험한 장기 투자는 꺼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본시장 자유화로 적대적 M&A가 가능해져 기업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유사시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대비한 실탄을 내부 유보 자금으로 틀어쥐고 있다. 경영권이 불안하면 투자지평이 협소화·단기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적당히 3%대 성장하고 말 것이라면 모를까, 국민소득 2만달러의 야심이 있고 진짜 선진국으로 가려면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설비투자 확대의 전제조건으로 기업의 경영권 안정이 필요하다면 그 방안은.

=연기금이 기업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국민경제 이익에 맞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도 있고 공기업을 끼워서 기업들끼리 우호지분을 사주는 방식으로 경영권 안정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일본처럼 가족 소유 없이 주거래은행·계열기업·대형 하청업체 등 이해 당사자들이 상호간에 우호지분 보유를 통해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재벌체제 내부를 감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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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by John Lennon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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