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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노무현정부의 경제개혁 전면 재검토 제기
“한국경제문제는 개혁정책의 방향이 잘못된 때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는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개혁론자들’에 의해 추진돼 온 경제개혁 정책이 개혁정책을 통한 시장질서의 확대는 효율성과 공평성을 증대시키는커녕 한국 경제의 장기적 활력을 파괴하고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참여연대 부설연구기관인 참여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한 <시민과 세계> 5월호에 게재한 ’우리경제 개혁의 방향을 다시 생각한다’는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이같은 결과는 새 체제로의 이행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이나 정부의 개혁의지의 부족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혁 아젠다의 근간을 이루는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결과"라면서 " 이제 우리 경제의 개혁방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때"라고 경제개혁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 교수는 특히 "노무현 정부 내부의 인사들을 비롯해 소위 개혁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현재의 경제문제가 ’개혁’ 불충분하게 추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추가적인 시장 개방,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제고, 각종 규제의 과감한 완화 등을 통해 경제의 활력이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보수논객들의 노무현 정부 책임론만큼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경제 문제의 근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개혁정책들이 불충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책의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재벌개혁과 관련해 그는 "현재 재벌개혁은 재벌이라는 구조가 과다한 차입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구조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이 분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밖에도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에 의존해 성장해온 주요 원인은 소유권 약화를 꺼린 기업들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동원을 기피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역사가 일천한 관계로 기업내부자금이 절대로 부족했기 때문이며 △ 지금은 전문기업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업의 다각화는 위험을 분산해 적극적 투자를 가능케하고 기존 계열사로부터의 보조를 통해 신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돕는 장점이 있으며 한국기업들이 전문화만 추구했다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현재 한국의 주축산업들의 발전을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물론 재벌들이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피라미드형 출자 등을 통한 ‘가공자본’의 창조도 내부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나쁘게 볼 수만은 없으며 △한국기업들이 높은 이자비용때문에 경상이윤율이 국제적 기준에 비해 낮지만 영업이익율 등 다른 기준을 사용하면 효율성은 국제적으로 매우 높게 나온다는 점에서 재벌들을 비롯한 한국기업들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벌개혁과 함께 추진된 금융개혁은 금융기관의 안정성과 수익성 제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돼 금융기관들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기업금융을 극도로 기피하게 된 결과 대규모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여타 기업들은 대부분 외부자금 동원이 불가능해져 노후화된 설비의 교체마저도 할 수 없는 극도의 기업금융 고갈사태가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은행들이 수익성과 안전성을 추구하면서 기업금융을 회피하고 대신 소비자 금융에 집중하게 되면서 은행간 과다경쟁이 초래되고 그 결과 소비자 대출이 급증하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대출의 감축 결과로 발생한 대규모의 유휴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돼 부동산 경기의 과열로 이어지는 등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 신용불량과 부동산 과열 등의 문제도 기업금융의 붕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또 자본시장의 개방문제와 관련해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은 기업금융을 기피하고 손쉬운 가계금융에 치중해 한국경제의 활력을 해쳐 왔다"고 지적하고 "제조업체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외국인 주주들은 배당을 높이라는 압력을 강하게 행사해 기업이 투자를 위해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점차 줄여 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무엇보다도 현재 개혁정책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 궁극적 목표가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한 뒤 "한국에서 주주자본주의가 자리잡으면서 기업의 장기투자가 어려워지고 기업들이 장기적 목표의 추구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더 힘을 쓰는 상황이 되가고 있으며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설비와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절실한 한국경제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기업의 경영에 있어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 나아가 국민경제의 이익이 적절히 고려되는 체제의 건설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재벌개혁의 대안으로서 "재벌체제의 장점을 인정하고 주주의 이익만이 아닌 국민경제의 이익을 위해 그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억제하는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방안으로 △재벌의 안정지분 확보를 위해 출자총액 제한을 완화하고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하며 △재벌들 사이의 상호출자를 시도하고 △일본과 같이 관련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우호지분 소유를 장려하는 등을 제시한 뒤 이에 대해 재벌들은 주주자본주의 이론을 통해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사회적 간섭을 피하려는 구태를 버리고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