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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30대, 안철수 안철수 연구소 사장
2004년 08월 20일

글 김윤지 기자 (yzkim@economy21.co.kr)
착한 사람도 사업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안철수(42) 사장만큼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스타는 없다. 연예인을 빼고, 길을 가다 사인을 해달라 요청을 받을 ‘사장님’이 어디 흔한가. 얼마 전엔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빌 게이츠도 한국에선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쓰자, 그의 말이 단박에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선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도덕적 아우라’가 흐른다. 얌전한 모범생인 듯 말하는 그의 이야기 속엔 어쩌면 그렇게 구구절절 옳은 말만 있는지. 게다가 안락함을 보장하는 의사의 길을 버리고 험한 벤처기업가로, 그것도 세상의 컴퓨터 병균들과 싸우는 길로 나서지 않았던가. 그런 그도 이제는 조금씩 나이가 드나 보다.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선 예전엔 느낄 수 없던 여유와 유머가 묻어났다. 훨씬 더 편안하고 밝아진 그의 모습을 보니, 그도 이제 ‘연륜’이란 것과 친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 바이러스] 요즘 또 책을 쓴다면서요.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쓰세요? 책 말고도 돈 많이 벌잖아요.
[철수백신] 벌써 9번째네요. 2~3년에 한 번씩 책을 쓰는데, 지난 3년 동안 경험도 쌓이고 관심사도 좀 넓어졌거든요. 그걸 다시 정리하려고요. 제 자신을 위해서 써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정리를 해줘야 새로운 걸 받아들일 여지가 생기더라고요. 한편으론 우리 사회를 위해서 쓰고요. 전 제가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게 나름대로 1인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건전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가 조금이라도 바뀌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마지막으로 벤처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번 책도 그래서 10만권 정도 팔렸더라고요. 벤처기업가가 쓴 경영서가 그것뿐이라,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그런대요. 미인대회에 혼자 출전해서 진선미 다 휩쓰는 것 같아 좀 쑥스럽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써요.
[기자 바이러스] 사는 모습이 도덕 교과서 같다는 이야기 많이 듣잖아요. 그럼 기분이 어때요?
[철수백신] 어떤 사람이 “종교 있으세요? 청교도 같으세요.” 그러더라고요. 솔직히 전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데. 사실 제가 우리나라 언론에서 10년 서바이벌을 했는데, 이게 조작해서라면 불가능했겠죠. 원래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해주세요.
[기자 바이러스] 안연구소가 벌써 10년이네요.
[철수백신] 33살 때인 1995년에 만들었으니까, 제 30대를 바쳤네요. 파란만장했지요. 그때까지는 참 고민 없이 살았거든요. 우리나라 교육이 계속 공부만 하게 하잖아요. 의대 들어가서는 더 그랬고, 정신 차려 보니 30대인 거예요. 세대가 넘어간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게 40대였어요.
[기자 바이러스]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나도 이만큼을 이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가요?
[철수백신] 제가 그런 타입이 아니라는 거 아시면서…. ㅡ.ㅡ ‘성공’이란 걸 느끼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내리막길이라고 좀 강박적으로 생각해서인지 무의식적으로도 그렇게 못해요. 어떤 사람이 성인기를 셋으로 나누더라고요. 20~30대는 초기, 40~50대는 중기, 60대 이후가 말기로요. 초기엔 짝을 찾고 전문분야에서 지식을 쌓으면서 휴먼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대요. 그리고 중기엔 그걸 기반으로 자기 혼자만으로 할 수 없던 일을 함께 이뤄가고요. 생물학적으로는 내리막길이지만 사회학적으로는 황금기라는 거죠. 제가 그런 황금기에 접어든다는 생각에 막 가슴이 설레고 좋았어요.
[기자 바이러스] 언제 제일 고민스러웠어요?
[철수백신] 의사 그만둘 때지요. 힘들었던 게, 의대에서 나름대로 잘 해왔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20대에 박사 받고, 교수가 눈앞에 있었죠. 그게 오히려 저의 냉정한 선택을 가로막더라고요.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선택에 짐이 되는 거죠. 그때 이래선 안 되겠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면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를 잊고 미래를 보면서 선택을 하자, 과연 더 보람 있고 더 발전할 수 있고 주위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이 어떤 걸까, 그 기준으로 택했어요. 의사는 저 말고도 많이 있지만, 바이러스를 막는 건 저뿐이었잖아요. 먹고 살기엔 힘들었지만요.
자기 자신이 가장 사귀기 힘든 친구
[기자 바이러스] 의사인 사모님이 지금 로스쿨 가 계셔서 기러기 아빠잖아요. 그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 쉽지 않은데.
[철수백신] 아내가 공부하니까 기러기 남편이지요.^^ 장기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자기를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것보다는 내가 이걸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나, 내가 뭘 위해 고민을 하는가 하는 점을요. 사실 자기를 잘 몰라요. 세상에서 가장 사귀기 힘든 친구가 자기래요. 늘 속이니까요. 저 같은 경우도 사업하면 다 망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기자 바이러스] 사실 사업가 스타일은 아니죠.
[철수백신] 그렇죠. 외향적이고 좀 능글능글해야 사업가에 가깝죠. 사실 의사가 CEO인 회사에는 투자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전문직이다 보니 늘 혼자 일하고, 남에 대한 배려도 적고, 조직관리에 약하다는 거지요. 제가 딱 그래요. 그런데 꼭 외향적이어야만 사업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힘들긴 하지요. 더 벌 수 있는데 덜 벌어요. 하지만 회사가 사장 혼자 하는 건 아니니까, 사장이 모자라는 건 잘하는 다른 사람 불러다 하면 되지요. 오히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기업이 변하는 게 중요한데 그건 다른 능력이죠.
[기자 바이러스] 조직관리를 잘 못한다면서, 참 안정적으로 해왔잖아요.
[철수백신] 신뢰감 때문인 것 같아요. 제 뿌리 깊은 생각이, 상대방을 제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생각만 가지고도 조직 경영이 되더라고요. 워낙 안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요. 조직원들이 그 점을 믿고 따라와줘서 가능했어요. 사실 기업에서 제일 중요한 게 그거 아닌가요.
[기자 바이러스] 다른 초기 벤처기업들과 달리 한번도 난리를 겪지 않은 비결이 뭘까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음 자부
[철수백신] 개인적으로 10년 전에 만난 사람이 전과 꼭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 제일 좋아해요. 제가 스스로 안심을 한 게 99년, 2000년에 회사가 갑자기 크면서예요. 흔히 사람들이 과도한 부나 명예, 권력이 오면 사람이 바뀐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늘 “난 절대 안 그럴 자신 있다”고 했지만 경험하지 못한 일을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 내심 걱정이었죠. 그런데 회사가 잘됐는데 제가 그대로인 거예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자신이 좋았어요. 사실 자존심이 너무 세서 그래요. “저런 하찮은 것 정도로 내가 변할 줄 알아?”하는.^^
[기자 바이러스] 그래도 의대까지 간 이유가 있었을 텐데, 바이러스 백신은 왜 만들어서 이 고생일까요? 딱 학교에서 교수 하면 어울릴 것 같은데.
[철수백신]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의대생 시절부터 약간 싹이 있었어요. 한 사람의 환자를 고치는 것보다 병의 치료방법, 원인을 발견하는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야 노벨의학상 받기도 쉽고요.^^ 백신은 운대가 맞은 거죠. 의대에서 남들보다 좀 더 잘하려면 컴퓨터를 잘 다뤄야 할 것 같아 책으로 독학해서 준전문가 수준은 됐어요. 그런데 박사과정 1학기 때 바이러스가 막 터졌어요. 보니까 제가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만들었죠. 1년만 늦게 학교에 들어갔으면 좀 편히 살았을 텐데.^^ 후회는 안 해요. 그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