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씨 좋은 한낮에, 노랗게 반짝거리는 은행나무 길을 지나는데요. 라디오에서는 Kol Nidrei.가 흘러나왔어요. 첼로보다 훨씬 낮은 소리로 우는 더블베이스가 연주하는 Kol Nidrei.

누군가는, Bruch가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존경할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Kol Nidrei를 듣고 나면 무거운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요. 오래 산 사람들의 허물을 이해해 주는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품었던 작은 미움들을 괜찮다 위로해 주는 것 같은.

곧 추워질테지요. 잠시 반짝이는 가을처럼 모든게 짧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Cello. 장한나. London Symphony Orchestr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씨네21] http://www.cine21.co.kr/kisa/sec-002800805/2004/10/041015173103116.html

“감사용 파이팅! 노동자 파이팅!” <슈퍼스타 감사용>

<슈퍼스타 감사용>, 한국 노동운동의 뼈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저마다 패배의 기억으로 읽는 영화다. 야구영화를 보면서 엉뚱하게 노동운동을 떠올렸다. 마치 한국판 <브래스드 오프>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가 삼미특수강이라는 구슬픈 이름과 인천이라는 노동자 도시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감사용은 삼미특수강의 철공소 주임 출신 야구선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80년대 초반, 인천은 ‘한국의 페테르부르크’로 불리던 노동운동의 본거지였다. 자꾸 80년대의 기억을 자극하는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면서 80년대 노동운동의 도전과 패배의 기억이 겹쳐졌다.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이야말로 “꿈을 던진 패전투수” 아니겠는가.

감사용은 혁명을 꿈꾸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노동계급 청년의 자화상이다. 성실한 노동계급 청년의 일상을 둘러싼 현실은 갑갑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부재하고, 어머니는 장사하고, 형은 노름하고, 여동생은 논다. 그는 가족의 희망이고, 최후의 보루다. 갑갑한 청년은 어느 날 “나도 하고 싶은 것 좀 하고 살자”는 울부짖음으로 폭발한다. 무심한 어머니가 남몰래 아들의 경기를 보아왔음이 드러나고, 개망나니 형이 개과천선을 하게 되는 <슈퍼스타 감사용>은, 갈등하지만 끝내 화해하는 따뜻한 노동계급 가족드라마다. 말 잘 듣는 노동자로, “평생 (자본에) 감사해야 할 팔자”인 감사용은 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을 위해 ‘일떠선다’. 물론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2000년대 완고해진 자본주의 계급사회, 우리의 꿈은 어디로

그래도 80년대는 “개천에서 용나는” 꿈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슈퍼스타의 꿈이든 세상을 뒤집는 혁명의 꿈이든. 감사용이 최루탄 가스에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쳐다본 공장 담벼락에 그려진 슈퍼스타즈 마스코트가 상징하는 희망과 시위대의 노동자가 공장 담벼락에 휘갈긴 노동해방 구호의 희망이 뭐 그리 달랐을 것인가. 슈퍼스타즈의 후줄근한 유니폼과 짬에 전 작업복은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똑같은 몸부림이었을 게다. 매우 상징적이게도, 감사용이 투구 연습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안전제일’ 모자를 쓴 작업복의 노동자다. 서울도 아니고, 부산도 아닌 인천의 삼미가 꼴찌를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동자가 ‘꼴찌’인 너무도 ‘리얼한’ 현실의 반영이었다.

90년대를 거치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계급구조는 점점 완고해졌고, 우리는 꿈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한국인은 자꾸 80년대를 돌아보고, 낭만화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그 선봉은 <살인의 추억>과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연타석 안타를 치고 있는 영화사 싸이더스다). 하지만 그 꿈은 끝끝내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80년대는 ‘달콤쌉싸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90년대가 IMF로 상징되는 고통의 시절이었다면, 80년대는 기적 같은 승리의 희망과 허무한 패배의 결말이 함께 있는 시대다. 저 80년대에는 한국 노동운동도 감사용처럼 자본이라는 무소불위의 적을 이길 ‘뻔’한 추억이 있다.

감사용의 패배는 노동의 패배, 그래도 지지 않았다

영화 속의 삼미 슈퍼스타즈는 삼미특수강 노동조합 같다. 감사용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 “얼굴만 메이저리거”인 금광옥은 노조의 소금 같은 역할을 하는 까불이, 의리의 사나이 인호봉은 든든한 노조 지도자의 캐릭터와 닮아 있다. 게다가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양승관과 자신의 존재를 극복하려는 감사용 사이의 대립은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을 드러내는 전형적 노동계급 드라마의 구성이다. “스타 하나 없는 슈퍼스타즈”, 패배를 숙명으로 타고난 오합지졸의 팀은 당대 최고의 스타군단 OB베어스와 맞선다.

OB베어스의 에이스, 박철순은 세련되고 화려한 서울 권력을 상징한다. 인천의 노동계급 오합지졸들은 잘 나가는 서울자본주의, OB베어스에 도전한다. 대표선수는 오합지졸 중의 졸, 감사용이다. 만장하신 관중을 보면서 인호봉은 “어느 누가 우리가 이기기를 바라겠느냐”고 푸념한다. 인호봉의 푸념은 마치 파업노동자의 중얼거림 같다. 하지만 감사용의 집념은 오합지졸을 묶어 세우고, 갈등하던 동료들은 마침내 하나가 된다. 갈등 끝에 파업에 나서는 노동계급 드라마의 구성이다. 삼미 선수들이 “한번 해보자, 밑져야 본전이다”, “박철순 한번 울려보자”라고 다짐할 때, 얻을 것은 세계이고,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었던 한국의 노동운동이 생각난다. ‘단결만이 살길이요’라는 슬로건 아래 뭉친 오합지졸들에게 기적 같은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다. 이 순간 전국의 파업 현장에서 울려퍼졌던 “99번 패배할지라도 단 1번 승리를 위하여”라는 노동가요가 떠오른다.

마치 공권력의 침탈을 앞둔 파업 현장처럼 가족들이 야구장으로 모여든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손을 잡고 스탠드에 나타나고, 옛 삼미특수강 직장동료들은 “감사용 파이팅”을 외친다. 이제는 영화스타가 된 여자동료도 모자를 눌러쓰고 감사용을 응원한다. 택시운전을 하는 형은 차를 세워두고 라디오에 집중한다. 모두가 기적 같은 승리 앞에서 가슴을 졸인다. 형이 “제발”이라고 손을 모을 때, 어머니 눈에 눈물이 맺힐 때, 숱한 사람들의 소망의 응집이있던 한국 노동운동이 생각나서 나도 손을 모았고,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 투구를 하는 감사용의 눈빛은 공권력을 향해 분노의 화염병을 던지는 성난 노동자의 눈빛 같았다. 하지만 철공소 주임, 감사용의 꿈이 이루어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감사용이 “이기고 싶었어요, 이길 수 있었어요”라고 울먹일 때, 그의 목소리는 한국 노동계급의 복화술로 느껴졌다. 내게 감사용의 패배는 노동의 패배였다. 감사용은 눈물을 닦고 뒤늦게 찾아온 애인을 만나 가족으로 귀환한다. 한국의 노동계급처럼. 그래도 감사용도, 노동계급도 ‘승리없는 승자’가 됐다고 믿는다. 믿고 싶다.

추신. 영화의 배경이 된 1982년에서 꼭 15년 뒤인 1997년 삼미특수강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다. 때는 IMF 관리체제하였다. 삼미특수강의 일부 부문이 포항제철에 분리매각되면서 587명의 늙은 노동자의 고용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늙은 노동자들의 장기 농성은 90년대 후반 한국 노동운동의 가슴 아픈 상징이었다. 늙은 노동자들은 3년 넘게 전국의 차가운 아스팔트를 전전하며 농성을 벌였다. 고등법원이 복직판결을 내리고, 국제노동기구(ILO)도 복직권고를 했지만, 끝끝내 이들은 복직되지 않았다.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의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삼미특수강, 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잊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마침 9월 중순, ‘골리앗 크레인’으로 대표되는 전투적 노동운동의 상징,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금속연맹에서 제명됐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syuk@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 오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 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h21.hani.co.kr/section-021007000/2004/09/021007000200409220528074.html

교과과정의 장벽을 깨라

갓 태어난 과학영재 교육의 성장을 위한 제언… '사사교육'을 자원봉사로 할 수는 없는가

▣ 최승언/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 · 서울대 과학영재교육센터 소장

우리나라 과학영재 교육은 1998년 과학기술부의 지원에 따라 9개 대학교에 과학영재교육원이 설립돼 초등·중학교 과학영재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의 과학영재 교육은 2002년 부산 과학고가 과학영재학교로 전환되면서 지난해부터 신입생을 맞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이제 길어야 7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과학영재 교육은 양적·질적으로 팽창 일로에 있으며, 각 과학영재교육원이나 과학영재학교 등지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아직은 역사가 짧기에 시행착오도 적지 않으며 세계의 유수 영재교육기관을 벤치마킹한 시스템이 국내에 정착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 획일적인 연구 · 교육은 과학영재의 창의성을 억누를 수도 있다. '초파리의 유전자 기능을 규명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서울대 전상학 교수팀의 지도를 받는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위)이 모니터로 실험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아래).


미국은 학문연구 자세까지 교육받아

일반적으로 과학영재교육기관에서는 과학 분야의 내용 영역에 비해 인지적 영역에 비중을 두어 교육하게 된다. 즉, 인지적 영역의 탐구 과정 기술이나 탐구 사고가 그것이다. 과학영재 학생들은 단순한 문제 풀이보다는 고등 사고력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기를 즐긴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해법을 찾아내기도 하며, 새로운 탐구 방법을 고안하기도 한다. 이들은 다방면에 우수하기보다는 특정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학영재 교육에서 인지적 영역만을 강조하다 보면 영재 학생들의 특성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매우 경쟁적이며, 개인주의적이며, 때로는 독선적이다. 어떤 때는 매우 도덕적이지만 어떤 때는 무척이나 자신의 이익에 민감하여 도덕적인 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기에 과학영재 교육에서도 영재학습을 통해 정의적인 영역이나 영재 학생들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훈련하지 않으면 21세기를 주도하는 과학영재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부산 과학영재학교도 역시 이러한 면에 민감하다.

과학영재 교육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 시카고의 3년 과정의 IMSA(Illinois Mathematics and Science Academy) 고등학교는 이러한 면들을 중요시 여겨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일리노이주의 과학영재 학생이 10학년(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 반드시 과학탐구(Scientific Inquiries)라는 교과목을 1년 동안 이수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곳의 과학영재 학생들은 탐구 중심의 과학 경험을 학습하지만 역사적·개인적·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한다(Inquiry-based curriculum that allows historical, personal and social connections to be constructed)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들은 3년 과정을 통해 학문을 연구하는 방법뿐 아니라 자세까지도 교육(훈련)받고 있다. 이러한 과학탐구 교과목은 이를 담당하는 교사들에 의해 계속적인 반성과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진다. 한번 정해놓은 교과과정을 고집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흥미 변화나 수행하는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그 시대의 과학적인 사건에 따라 교수 중간에 담당하는 모든 교사들이 모여 합의해 이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의 고정된 사고방식으로 이러한 융통성을 가지기는 쉽지 않지만 과학이라는 교과목도, 이를 반영한 영재교육도 이러한 융통성을 가지지 않고는 수행하기 곤란하다.

눈높이 맞춘 연구 · 교육 제도를


△ 과학영재들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서울 한성과학고의 한 학생이 컴퓨터실습실에서 교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사진/ 박항구 기자)

이러한 IMSA 고교의 유연한 교육 시스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기계적인 적용보다 융통성 있는 접근이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일 게 틀림없다. IMSA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을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일반 고교와 다른 교육환경을 경험한 게 연구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과제를 새로운 각도로 생각하기를 즐겨하면서 때로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고, 여러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다양한 생각과 방법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일반 고교를 졸업한 다른 학생과 자신이 매우 다르다는 것에 깜짝깜짝 놀란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영재 교육담당 교수와 교사, 과학영재 교육 프로그램, 과학영재 판별의 타당성과 신뢰성, 예산 및 행정 지원 상황 등 모든 면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영재 교육을 할 때 ‘다른 생각’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가르치려 하고 있다. 부산 과학영재학교 역시 교육과정 개정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면서 교과과정의 융통성을 반영하려고 한다. 하지만 교육과정에 우리나라 일반 과학 고등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단위를 포함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적긴 해도 너무 많은 교과목을 학생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과학영재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생각할 수 있고 탐구 기능을 익힐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부족을 연구·교육(Research & Education)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IMSA의 경우 그들의 사사 과정(Research in science) 속에는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연구·교육의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심도 있게 전문가와 같이 연구하고 발표했다. 연구·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과학자들이 실제로 연구하는 방법을 익히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며 탐구하고 배우고,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관계를 지어나가는지를 배우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시행돼온 연구·교육의 주제들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학생들의 흥미는 어느 정도 고려했는지 모르지만 수준에서는 담당 교수나 전문가의 주도하에 어디에 내놓아도 멋지고 눈에 띄는 주제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데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당장은 더디더라도 문제 혹은 주제 설정이 학생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또 세계의 유수 과학영재교육학교가 그렇듯이 IMSA의 경우, 연구·교육 지도를 하는 전문가들이 모두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할 때 이는 커다란 차이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영재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전문가들이 보수 대신 보람으로 참여한다면 과학영재 학생들과 함께 더욱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교수와 학생이 뜻을 모은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모두가 과학에 종사해야 하는가

국내에서 과학영재를 키우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과학영재 교육에 대한 믿음이다. 예산이나 행정을 지원하는 기관은 과학영재교육기관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믿어주어야 하고, 과학영재 학생들의 부모들도 과학영재교육기관을 신뢰하는 게 필요하다. 대부분의 외국의 과학영재교육기관에서 이곳을 수료한 학생들의 70% 이하만이 과학에 종사한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영재교육기관을 수료한 학생들이 혜택을 받았으니 모두 과학에 종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면 좀더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영재 교육에 대한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다만 역사가 짧기에 소프트웨어가 다소 미흡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h21.hani.co.kr/section-021007000/2004/09/021007000200409220528044.html

영재들, ‘노벨상 동산’에 서다

초일류 과학자를 향해 뛰는 부산과학영재학교… 창의적 교육 · 진로 · 교수진 문제 해결할까


초일류 과학자를 키우기 위해 의욕적으로 출발한 부산 과학영재학교. 새로운 시스템과 우수한 시설로 승부를 건다. 그러나 헤쳐나가야 할 난관도 만만치 않다.


▣ 부산= 글 · 사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세균공생아메바(Amoeba proteus·XD strain)를 모델로 삼아 진핵세포의 기원을 규명하고 공생단백질을 추적하는 젊은 과학자가 있다. 언뜻 대학원 실험실에서 관심을 가질 법한 연구과제 정도로 여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분자생물학적으로 단백질의 특성을 밝혀 종의 뿌리를 찾으려고 위상차현미경·형광현미경 등과 더불어 지내는 연구자는 놀랍게도 과학영재 진형욱(17)군이다. 지난 9월10일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사사교육 프로그램(상자기사 참조) 중간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그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학생들과 함께 매주 대학에 가서 교수의 지도를 받아 논문을 완성해 내년 2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 과학영재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전국의 과학영재들이 한데 모인 과학영재학교. 본관 건물 뒤편에는 노벨상 수상 동문의 동상을 세울 자리가 마련돼 있다.

우수한 시설과 ‘밀착교육’

국내 최초로 과학영재 교육을 위해 설립돼 두 차례 신입생을 뽑은 부산 과학영재학교(교장 문정오) 1학년(03학번)에 재학 중인 진형욱군. 그는 이 학교의 첫 번째 신입생이 되려고 2학년 때 응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입학한 신입생(03학번) 정원 144명 가운데 중학교 1학년만 마치고 들어온 학생이 3명, 2학년을 마치고 들어온 학생도 10여명이나 됐다. 그는 다시 영재학교에 도전해 올해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그동안 제가 무엇이 모자라는지를 제대로 몰랐다. 시험에서 떨어진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과학자에 대한 소망을 튼실히 하게 됐다. 일단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 연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 진형욱군(오른쪽)이 동료 학생과 함께 전자현미경을 바라보는 모습.

전국의 내로라 하는 ‘수재’들이 지원한다는 과학영재학교에서 진형욱군은 노벨생물학상의 꿈을 키우고 있다. 언젠가 본관 건물 뒤편에 있는 ‘노벨상 동산’ 중앙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자리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기숙사인 ‘견우관’(남학생)과 ‘직녀관’(여학생)에서 생활하며 강의실에서 만나는 모든 학생이 노벨상을 목표로 삼은 그의 경쟁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 수능시험이라는 부담을 털어내고 무학년제로 능력과 관심에 따라 맞춤식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노벨상을 떼놓은 당상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지금은 자신의 실제 이름보다 ‘영재’라는 일반명사로 불릴지라도 영재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당장 대학 입학만 생각해도 먹구름이 군데군데 보인다.

현재 과학영재학교는 부산교육청 소속의 공립학교다. 하지만 운영 형태는 독특하다.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교육부가 지정한 영재학교를 부산교육청과 과학기술부가 협약을 맺어 운영한다. 거칠게 구분한다면 하드웨어에 속하는 교육 시설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교육 내용은 과기부에서 지원하는 형태다. 예컨대 지상 9층에 총건평 1500평이 넘는 창조관(첨단과학관) 건립과 천체망원경·핵자기공명(NMR)·주사형 전자현미경(SEM) 등 기자재 구입 등에 소요된 140억원을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지원했고, 해마다 교육연구 프로그램과 해외 위탁교육, 연구·교육(R&E) 프로그램 운영에 소요되는 45억원 이상을 과학기술부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런 대대적인 지원은 세계적 수준의 과학자를 양성하려는 정부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과학영재의 산실로 불렸던 일반 과학고를 반면교사로 삼았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반 과학고는 전국 시·도별로 1개(서울 2개교, 울산 제외)씩 16개교에서 해마다 1100여명씩 뽑는다. 이들은 대부분 서류전형과 면접, 구술고사를 통해 선발된다. 일반 과학고는 다른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지필고사를 볼 수 없기에 과학영재를 선발하는 데 태생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더구나 비교내신 폐지와 학교 설립 급증 등에 따라 자퇴 파동을 겪기도 했다. 독한 홍역을 치른 뒤 안정을 찾았지만 입시 위주 교육에 따라 과학고 본래의 위상은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과학영재학교는 과학영재 교육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설립됐다. 모든 것을 확실히 바꾸지 않는다면 초일류 과학자를 키우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현실이었다. 충격적일 정도로 전혀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래서 과학영재학교는 과기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필기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대학 특별전형까지 과학영재의 진로를 단숨에 바꿨다. 과학영재학교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데 참여한 조석희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실장은 “학생의 잠재 능력을 빠르게 찾아내 앞서가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부 잘하는 학업 영재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지식을 변형해 창출하는 창의적 영재를 발굴·육성하려고 했다”라고 말한다.



△ 과학영재학교의 강의는 발표와 토론 위주로 이뤄진다. 생물 시간에 한 학생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맨위). 사사교육 프로그램으로 ‘복잡계에서의 카오스 운동’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KAIST 물리학과 문희태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다(위). (사진/ KAIST제공)

2005년 입학 전형 16대 1

정말로 과학영재학교는 창의적 과학영재의 요람 구실을 하는 것일까. 일단 첫 번째 신입생을 받은 지 1년6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과학영재의 요람으로 자리잡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3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 2005년 입학 전형은 16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는 2004년 11.5 대 1, 2003년 8.29 대 1보다 크게 높아진 수치다. 더구나 최종 합격자 가운데 일반 과학고 재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성공적 안착의 단면을 보여줬다. 아직까지는 이공계 이외의 전공을 살리려는 학생들도 눈에 띄지 않고 교과 과정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도 크게 제기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입학한 03학번 가운데 6명이 그만뒀는데, 이들은 유학을 가거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았다.


△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은 창조적 영감을 취미활동에서도 발휘할까. 특별활동으로 사물놀이를 하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연습을 마치고 한 자리에 모였다.

사실 과학영재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나름대로 영재성을 ‘검증’받았다. 일반 과학고와 달리 자체 9시간 동안의 지필고사를 포함한 3차례의 엄정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03학번들은 ‘중력에 관한 모든 현상을 아는 대로 쓰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연구하고 이를 보고서에 쓰시오’라는 식의 문제지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창의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혼란을 겪기도 한다. 03학번 박태윤군은 지난해 선발 과정에 대해 “04학번의 3차 시험은 단순한 이론시험이나 실험이 불필요한 실험 문제가 출제됐다고 알려졌다. 그런 식이라면 경시대회를 준비했거나 선행학습을 많이 한 수험생에게 이롭다”라고 지적했다.

나름대로 창의성을 검증받아 입학한 학생들은 6학기 동안 175학점(교과 145, 연구 30)을 이수해야 한다. 1학년 때는 주로 고교 3년 과정을 속진 이수하고 2, 3학년은 선택한 교과를 심화 학습하는 과정으로 이수학점을 국내외 대학에서 인정받는 전문교과(AP·Advanced Placement) 과정을 주로 수강한다. 필수교과라 해서 모두 이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수학·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의 필수과목은 이수 교과목 인정시험(PT·Placement Test)을 통과하면 수강하지 않고도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보다 훨씬 많은 학점을 이수해야 하기에 일반 과학고처럼 3학기 만에 조기 졸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대한 제도를 활용하더라도 5학기는 마쳐야 가능하다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과학영재로 꿈을 가꾸고 있는 학생들은 고교 과정을 이수하며 대학처럼 자유롭게 학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한다. 그것도 교원 한 사람이 학생 6명을 맡을 정도로 밀착된 교육을 통해 수준 높은 연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파견교수와 전임계약직 교수, 심화선택 교과 시간 강사 등 전공분야에 내로라 하는 연구자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분광학 연구실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천만석(40·분석화학) 교수는 “대학 실험실보다 성능이 좋은 실험기자재가 수두룩하다. 지금은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여건에 만족한다”라고 말하면서 “장기적으로 어떤 목표를 심어줘야 하는지 솔직히 걱정스럽다”라는 고민을 살짝 드러낸다.

선행학습 받은 분야를 연구?

대부분의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은 독특한 교과 과정에 만족감을 표시한다. 많은 수업이 영어 원서를 교과서로 삼아 토론 위주로 이뤄지지만 모두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수업은 14개의 전문 교과에서만 이뤄진다. 간혹 학교에서 1 대 1 수업도 이뤄진다. 필수 교과를 PT로 통과한 학생이 한명일 때 이뤄지는 심화 학습 과정이다. 03학번 강윤환군은 일반물리를 시험으로 통과한 뒤, 배새벽 교수의 유일한 학생으로 주로 영어로 물리PT를 수강했다. 강의 수준이 높다 보니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도 나온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입학한 03학번의 한 학생은 지난해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1년여 동안 영어와 수학에 매달린 그는 이번 학기에 학교를 다시 찾았다.


△ 과학영재학교는 대학원 수준보다 나은 실험기자재를 보유하고 있다. 천만석 교수가 분광학 연구실에서 실험 기자재를 살펴보고 있다.

과학영재학교의 교육 여건만 따진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내년 신입생으로 뽑힌 최종 합격생들은 지금부터 인터넷을 통해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으로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체험한다. 그리고 입학을 하면 일반 고교 수준의 등록금만 내면 수억원대의 실험기자재를 수시로 이용할 수 있다.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라 해봐야 한끼에 2500원 하는 식비와 영어원서 구입비 정도이다. 학부모 대표를 맡고 있는 신정혜씨는 “그래도 생활비가 한달에 50만원 안팎씩 들어간다. 물론 일체의 사교육비가 들어가지 않고, 각계에서 후원하는 장학제도의 도움을 받기에 부담을 덜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과학영재의 자질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일까. 과학영재로 뽑힌 학생들은 전문 분야의 우수한 교수진으로부터 나무랄 데 없는 교육을 받는 게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과학적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교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영재학생(gifted student)들이 자신이 받은 선물의 내용물을 제대로 확인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많은 학생들은 중학교에 다닐 때 대학부설 과학영재센터 등지에서 선행학습을 받은 교과를 연구분야로 삼기 일쑤다. 과학적으로 자신의 영재성을 확인하지 않고 관심을 기울인 경험에 의거해 ‘수학영재’ ‘화학영재’ 등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과학영재가 지식 습득이나 사실의 이해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선행학습에 익숙한 학생들이 대학 과정을 미리 배우는 것을 영재교육이라 단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컴퓨터 영재들이 참가하는 국제정보올림피아드를 준비했던 부산대학교 조환규 교수(컴퓨터과학)는 영재교육이 단순히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대학에서 배울 내용을 먼저 가르치는 게 영재교육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어떤 능력이 있는 학생을 컴퓨터 영재로 할 지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영재성을 판단할 과학적 분석 도구를 마련해 자신의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지적은 과학영재학교 교사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화학을 가르치는 김원전 교사는 “일반 과학고 학생들과 달리 과학영재들은 과목별 학업 성취도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영재성은 학점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지금은 수학과 물리 2개 과목을 중심으로 과학영재를 육성해야 할 것이다. 화학이나 생물, 지구과학 등은 대학에 들어갈 때 결정해도 늦지 않다”라고 말한다. 기초과학을 중심으로 영재 학생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른다면 PT를 통과해 필수 교과를 건너뛰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강의실은 지적 욕구를 채우는 장소에 머물지 않고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속에서 창의적 영감이 흐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5년 뒤의 비전을 보여줘라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은 수능시험이나 내신성적에 관계없이 특별전형으로 KAIST나 포항공대 등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내신성적에 적잖은 신경을 쓰고 있다. 심지어 계절학기를 이용해 학점이 낮은 교과목을 다시 수강하기도 한다. 서울대를 비롯한 종합대학에 진학할 방법이 확정되지 않은 탓이다. 일단 서울대에 들어가려는 학생은 전문교과 25학점을 취득하면 특별전형에 응시할 자격을 주기로 잠정 합의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다른 대학과는 협의가 진행되지 않아 대학 진학을 둘러싸고 자칫 과학영재들이 내홍을 겪을 수도 있다.

이제 1년이 지나면 과학영재들은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기숙사 소등 시각이 새벽 1시로 결정된 것을 안타까워할 정도로 학구열에 불타는 학생들. 지금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노벨상을 향해 달려갈지라도 영재성을 살리는 교육을 받는지는 단정하기 힘들다. 과학영재를 가르치는 교사의 상당수는 영재교육에 관한 전문 소양이 부족할 수 있고, 파견교수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대학에 돌아갈 사람들이다. 학생들에게 절실한 것은 그야말로 헌신적 열정으로 과학영재의 앞날을 밝혀줄 교수진이다. 그래야만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이젠 과학영재들이 5년 뒤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 

대학교수와 함께 연구를!

과학영재학교의 자신감 R&E… 창의적 호기심 못 담아낸다는 지적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과학영재학교가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내비치는 것은 연구·교육(R&E·Research & Education)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모든 학생들이 연구과제 학점을 이수하려면 해마나 한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식으로 연구를 통한 교육, 교육을 통한 연구를 뜻하는 R&E에 참여해야 한다. 대학교수들이 제시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3~6명의 학생들이 지원해 이뤄지는 R&E 프로그램은 전문 연구자에 위탁한 심화학습 활동이다.

과학영재학교의 R&E 프로그램은 한 과제당 평균 2800여만원을 과학기술부에서 지원한다. 학생들은 대학교수의 개별 과외를 받으며 연구를 통한 성취감을 느낀다. 대학교수들의 참여도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 올해의 경우 대학교수들이 참여 경쟁을 벌일 정도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제시한 연구 과제 300여개 중에서 55개를 선택했다. 학생들은 KAIST와 포항공대, 서울대, 부산대, 보현산천문대 등에 있는 교수에게 학기 중에 매주 지도를 받고 방학 때는 R&E 캠프에 참여하기도 한다.

R&E 프로그램은 과학영재학교의 특성을 단박에 보여주는 교육과정으로 평가받는다. 수학을 전공분야로 삼은 03학번 구원회군은 KAIST에서 ‘선형대수학’을 R&E 프로그램으로 공부한 뒤 지금은 ‘대수기하학’을 연구하고 있다. “중학교 때 전국수학경시대회에 참여해 입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경시대회 참가에 신경쓰지 않는다. 때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지만 R&E 프로그램을 통해 수준 높은 과학 공부를 하는 것에 만족한다.”

현재의 R&E 프로그램이 완결된 형태의 과학영재 교과과정은 아니다. 학생들이 선택한 주제는 상상력을 연구에 적용한 게 아니라 교수의 주제를 따르는 수준일 뿐이다. 당연히 연구개발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연구 방법론 습득에 치우치고 있다. R&E 프로그램이 창의적 호기심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KAIST 과학영재교육연구원 이범진 R&E 담당 연구원(환경공학)은 “1년차 학생들의 상상력에 놀라기도 한다. 그러다가 2년차 때는 상상력의 한계를 깨닫고 문제 해결 능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라고 말한다.

지난해 R&E 프로그램에 참여한 03학번 학생들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두툼한 논문집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여기에는 ‘그네타기에 대한 고전 역학적 분석’이나 ‘아메리카 옵션의 가격결정’ 등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이 담겨 있다. 일부에서는 R&E 프로그램이 창의성 개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표시하며 ‘회의적 탐구자’ 양성에 이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 대학교수들이 주말을 ‘가욋일’을 하다 보면 연구활동에 지장을 받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R&E 프로그램이 과학영재교육의 질적인 성장에 한몫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