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빈 들 - 강연호 詩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

혼자 쌀을 안치고 국 덥히는 저녁이면

인간의 끼니가 얼마나 눈물겨운지 알게 됩니다.

멀리 서툰 뜀박질을 연습하던 바람다발

귀기울이면 어느새 봉창 틈새로 기어들어와

밥물 끓어 넘치듯 안타까운 생각들을 툭툭 끊어놓고

책상 위 쓰다 만 편지를 먼저 읽고 갑니다.

서둘러 저녁상 물려보아도 매양 채우지 못하는

끝인사 두어 줄 남은 글귀가 영 신통치 않은 채

이미 입동 지난 가을 저녁의 이내 자욱이 깔려

엉킨 생각의 실꾸리 풀 듯 등불 풀어야 합니다

그래요, 이런 날에는 외투 걸치고 골목길 빠져나와

마을 앞자락 넓게 펼쳐진 빈들에 가지 않으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

웅크린 집들의 추위처럼 흔들리는 제 가슴 속

아 이곳이 어딥니까, 바로 빈들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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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날의 시를 읽는 방식은 이렇다.
시가 읽고 싶다.
그러면 시집이 꽂힌 두 개의 책꽂이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이상하게 눈길이 제일 오래 머무는 시집을 빼어든다.
그리고 아무 장이나 펼쳐본다.
그 시가 만약 괜찮으면 자리에 앉아 시집을 처음부터 꼼꼼히 읽는다.
오늘은 강연호 시인의 <비단길>이 걸려들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들,
마흔 중반의 나이에 독신이라 혼자 밥을 끓여 먹고 국을 데워 먹었을 한 농민을 생각한다.
그는 지난 15일 시위 도중 경찰의 폭력에 희생되었다.
전용철 열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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