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먹어야 잘산다
(5) 외식은 구내식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 근처에는 다른 직장과 마찬가지로 많은 음식점들이 있다. 전통적인 다양한 한식에서부터, 양식, 중국식, 일식, 월남식, 터키식, 패스트푸드, 패밀리 레스토랑, 퓨전식 등 없는 것이 거의 없고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맛집으로 소개된 음식점만해도 어림잡아 수 십개에 이르는 것 같다. 불황이라고 하는 요즈음에도 점심시간에는 거의 빈집없이 꽉꽉 들어차고 일부에서는 줄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먹는 문화가 유별난 우리들에게 외식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일 1회 이상 외식을 하는 국민이 전체의 40%에 이르고, 주 1회 이상 하는 국민은 60%에 이른다. 또한 외식비가 전체 가구지출 식료품비의 50%를 넘는다.
우리 식생활에 필수가 되어 버린 외식은 국민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가장 큰 영향은 국민을 비만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점이다. 표에서 보듯이 외식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고칼로리식이라는 점이다. 과거 못 먹던 시절에 ‘외식하면 영양 보충’을 의미했기 때문에 양이 많았고, 모자라면 ‘인심이 박하다’ 할까봐 그릇이 커졌으며, 외식산업의 생존이 걸린 맛을 위해 고소하고 입에서 사르르 녹는 지방질의 비중을 많이 높인 것이 외식이 가정식에 비해 칼로리를 높인 주 이유이다. 지방과 영양가가 거의 없을 것 같은 계란라면에 밥 1공기만해도 거의 1000kcal에 지방함량이 28%에 이른다.
전문영양사가
영양·위생 고려한
‘저열량 균형식단’
요즈음의 외식이 벌이는 극한적인 맛 경쟁은 거의 중독성에 가깝다. 한번 입에 넣으면 배부르기 전에 그만 먹기가 담배피는 사람 안 피우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 맛 경쟁의 가장 큰 비밀은 화학조미료와 소금에 있다.
글루탐산나트륨(MSG)으로 대표되는 화학조미료가 가정에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외식에서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한국의 화학조미료 생산량은 연간 10만톤이 넘으며, 국민 1인당 일일 소비량도 미국 0.47g, 일본 0.98g에 비해 한국은 3.9g에 달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르면 체중 25kg인 어린이는 하루 3g이 최대 허용량인데, 평균 1,65g의 화학조미료가 들어 있는 라면을 하루 두 번만 먹으면 벌써 이 기준을 초과하게 된다. 원만한 호텔의 연간 화학조미료 사용량이 1.5톤을 상회하는 바에야, 맛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일반 음식점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외식에서 맛 경쟁의 또 하나의 비밀은 음식을 태우고 뜨겁게 한다는 것이다. 후라이팬이나 불고기판보다는 숯불, 연탄불, 가스불 등의 화염에 직접 노출시켜서 굽는 직화구이가 훨씬 맛있고, 식탁에서 직접 끓여주고 덥혀서 뜨겁게 먹게 하는 것이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없는 맛의 비결이다. 직화구이는 발암물질로 알려진 에치에이에이(HAA)와 피에이에치(PAH)의 발생을 가중시키며, 뜨거운 음식은 구강, 인후, 식도, 위 등의 점막을 자극한다. 이 두 가지가 소금의 과다섭취와 함께, 한국인에게 위암이 암발생 1위인 이유로 추정된다.
외식 중독인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대안은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구내식에서는 영양사에 의해 영양적 측면과 위생적 측면이 고려된 식단이 작성되고 검수, 검식이란 과정을 거쳐 식사가 제공된다. 밥과 국, 반찬으로 어우러진 한식을 위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영양면에서 균형식이며 가정식과 같이 저칼로리식이기 때문이다.
구내식의 가장 큰 단점은 대체로 맛이 없고 개인의 입맛 차이를 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필자가 레지던트 시절 바쁜 하루 생활에 병원의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 시절 우리는 맛없는 구내식을 또 먹어야 할 때 “‘짬밥’ 먹으러 가자”고 했고, 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너무나 좋아했고 또 맛있게 느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현재의 체중(키 174cm, 몸무게 67kg)을 유지하고, 가정식에 만족하는 식습관을 가지게 된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구내식당이 아니었나 싶다.
구내식당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서양과 일본에서는 간편한 아침을 제공하는 외식이 보편적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밤 늦게까지 일 하거나 노는 사람들을 위한 해장국은 있어도 바쁘게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 매우 드물다. 요즈음 아침식사를 위해 내가 흔히 이용하는 구내식당에 교통경찰 등 주위의 직장인들이 와서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흐믓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피할수 없는 외식, 이렇게 하면 균형식
식단은 한식으로 양은 적게 시간은 길게
외식도 잘 이용하면 균형식이 될 수 있다
첫째, 외식을 찾을 때 먼저 한식을 찾으라는 것이다. 다른 식사에 비해 저칼로리, 균형식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가정식이라는 간판을 붙인 식당이면 더욱 좋고 일식도 튀김을 제외한다면 한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되도록 다 먹지 말고 남기라는 것이다. 밥 한 톨이라도 남기면 죄악이라는 우리의 식문화에서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남기는 사람이 많아야 음식점에서도 배식량을 줄일 수 있다. 여럿이 같이 먹는 음식일 때에는 눈총이 따갑다고 하더라도 1인분을 적게 시키는 것이 좋은 습관이 된다.
셋째, 균형을 생각하는 음식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햄버거를 먹을 때 샐러드를 같이 주문하여 무기질과 비타민을 보완하고 칼슘을 보충하기 위하여 우유를 마시면 균형잡힌 식사가 된다. 점심을 맛있다고 한 곳에만 가지말고 식단을 자주 바꾸어 식품의 종류가 다양한 식사를 하거나, 채소가 부족한 점심 식사를 한 경우에는 저녁 식사에서 채소를 충분히 보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지난 주에 언급했던 건더기는 다 먹고 국물을 남기는 습관도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게 한다.
넷째, 식사시간을 길게 가져 가라는 것이다. 뒤에서 손님들이 기다리는 음식점이라고 하더라도 한 끼 식사 최소한 20분은 넘겨야 하며 길면 길수록 좋다. 오래 씹어 삼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면 먹는 양도 줄고 반찬도 골고루 먹게 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유태우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tyoo@mydoctor.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