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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우머니스트’의 꽃을 피워라

5월 말 한국 찾는 흑인 여성작가 앨리스 워커… 수필집·강연회·평화 음악회·평화 기행 등 어디서 만날까

‘제3세계 유색인종 여자’의 꽃을 피운 사람이 있다. 방한 예정인 흑인 여성운동가 앨리스 워커와 함께 평화기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앨리스 워커(Alice Walker)는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컬러 퍼플>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라고 한다면 ‘아하!’하는 이들이 있을까. 소설가이자 시인인 그는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과 함께 현대 흑인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이며, 또 60년대 흑인민권운동부터 지난해 이라크 침공 반대 반전시위까지, 사회를 바꾸는 실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1980~90년대에 그의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졌으며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 <컬러 퍼플>과 <여인들의 신전>(문학사상사) <은밀한 기쁨을 간직하며>(문학세계사) 등이 번역됐지만 지금 서점에서는 거의 구하기 어렵다.


△ 5월 말 한국에 오는 앨리스 워커는 많은 소설과 시를 통해 여성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여성의 영적 변화를 제안한다. 또 백인 중산층 중심의 서구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하며 ‘제3세계 유색인종 페미니즘’을 키워냈다.(사진/ 이프토피아)

현대 흑인문학 <컬러 퍼플>로 퓰리처상

앨리스 워커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행사들이 열린다. 그가 5월26일부터 6월6일까지 한국에 와 강연과 공연으로 한국의 독자와 만난다. 또 66년부터 88년까지 앨리스 워커가 쓴 에세이, 기사, 리뷰 들을 모은 수필집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구은숙 옮김, 도서출판 이프) <사랑의 힘>(박정오 옮김, 이화여대 출판부) <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여행>(마음산책) 등 3권이 한꺼번에 번역돼 나온다.

문화기획법인 이프토피아(www.msiftopia.or.kr 02-717-9247, 717-9215)가 주관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5월27일 서울 아트선재센터 아트홀에서 열리는 ‘앨리스 워커의 작품세계’ 특강으로 시작된다. 28일에는 이화여대, 29일에는 홍익대학교에서도 강연이 열린다. 가장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29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서울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평화음악회-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 엘리스 워커와 신학자이자 여성·환경·평화 운동가인 현경 유니온 신학대 교수의 시 낭송,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비올라 연주자 김정연, 해금 연주자 강은일, 무용가 멜빈 밀러의 공연과 설치미술이 어우러지는 무대다.


△ 올해 2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메리디안> 출판기념행사에 참가한 워커.(사진/ AP연합)

또 6월 5~6일에는 신청자 35명과 함께 ‘앨리스 워커와 함께하는 평화기행’을 떠나 경남 하동 백련리 새미골 도요지에서 400년 전의 조선 막사발을 재현하고 있는 여성 도공 장금정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막사발을 빚어보는 행사도 있다. 또 가산오광대 탈놀음을 보고, 명상과 연꽃차 퍼포먼스를 벌이고 돌아오는 행사도 마련된다. 6월2일 교보문고에서는 새로 번역된 책 3권의 싸인회를 하고, 6월3일에는 부산시립시민도서관과 부산대학교에서 강연회가 열린다.

‘제3세계 유색인종 페미니즘’ 일으켜

흑인 여성들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힘겨웠던 1944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태어난 워커는 여덟살 때 오빠가 쏜 장난감 총에 눈을 맞아 한쪽 시력을 잃었고, 그래서 남들의 시선을 피해 외톨박이로 지내면서 독서와 시에서 위안을 찾았다. “나는 항상 외로운 사람이었다. 나의 한쪽 눈을 멀게하고 상처를 냈던 충격적 사건의 희생자가 된 여덟살 이후 나는 아이들과 친척들의 믿기 어려운 잔인함을 알게 되었고, 고독하고 외로운 소외자의 처지에서 사람들과 물체를 진실로 보게 되었다. 나는 고독 속으로 뒷걸음질 쳤고 이야기를 읽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장애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아 애틀랜타의 흑인 여자 대학인 스펠만에서 공부하면서, 급진적인 역사가인 하워드 진과 스토튼 린드의 영향을 받아 60년대 흑인 민권활동에 뛰어들었다. 1964년 첫 시집 <언젠가(Once)>를 냈으며, 1967년 함께 민권운동을 하던 유대인 법률가 멜빈 로즈벤 리벤톨과 결혼했다. 이들은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다른 인종끼리 합법적으로 결혼한 첫 부부였다. 1970년 첫 번째 장편소설 <그레지 코플랜드의 제3의 삶>을 낸 이후 많은 소설과 시집, 수필집을 내놓았고, 웨슬리 대학과 매사추세츠 대학교에서 문학 강의를 했으며 80년대에는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특히, <미즈>에서 그녀는 백인 중산계층 중심의 서구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하며, 흑인들의 페미니즘을 대변하는 많은 기사를 실었다.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를 번역한 구은숙 청주대 교수는 “워커는 흑인뿐 아니라 유색인종 여성들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여성 억압만을 강조해온 서구 백인 페미니즘에 대해 저항했고, ‘제3세계 유색인종 페미니즘’을 꽃피우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워커는 피부 색깔로 여성을 분류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흑인 페미니스트’라는 용어 대신 ‘우머니스트(womanist)’라는 용어를 쓰면서 “우머니스트는 흑인 또는 유색인종의 페미니스트를 의미하며 용기 있고 과감하며 자기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 모든 종류의 차별에 저항하면서 여성뿐 아니라 남녀 모두가 공존하면서 총체적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 앨리스 워커. 글로리아 스타이넘 <미즈> 편집장. 현경 유니언 신학대 교수(왼쪽부터). (사진/ 이프토피아)

워커의 소설들은 신화적인 구성 때문에 읽기 쉽지는 않지만, 대신 매우 강렬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세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세 쌍의 부부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 인종과 인종이 벌인 50만년의 로맨스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인들의 신전>에서 여주인공인 미스 리씨는 고대의 여신으로 무수한 윤회를 거치며 흑인 여자, 백인 남자, 사자 등으로 살아왔다. 리씨가 겪어온 첫 ‘역사’는 남녀가 완전히 다른 부족으로 살면서 여인들이 스스로를 통치하던 시기였지만, 세월이 흐르자 남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유럽과 이슬람이 아프리카의 여신에 도전해 전쟁을 벌이면서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아프리카와 유럽의 위치가 전복되는 신화가 펼쳐진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여러 작품 속에서 워커는 인종과 성, 계급 등 다중적 억압을 경험하는 흑인 여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백인뿐 아니라 흑인 남성들의 폭력과 착취에도 시달렸던 여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 어머니, 할머니, 아프리카의 조상들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 가장 차별받고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지만 끈질기게 생명력과 예술적 능력을 보여주었던 여성들의 영혼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에서 그녀는 “무지하고 타락한 백인 감시자의 채찍 아래 죽어간 고조 할머니의 천재성을 당신은 가졌는가? 또는 석양과 풀잎에 떨어지는 피, 그리고 평화로운 들판을 수채화로 표현해보고 싶어 마음속으로 울면서도 게으른 시골뜨기를 위해 과자를 구워야만 했는가? 또는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이 혁명을 일으킨 영웅들을 돌이나 진흙으로 만드는 것이었을 때도, 육신은 망가지고 여덟명, 열명, 열다섯명, 스무명의 아이를(종종 그 아이들은 팔려서 그녀로부터 떠나갔다) 낳도록 강요받았는가?”라고 물으며 삶과 예술에 대한 욕망을 빼앗겨야 했던 흑인 여성들을 우리 곁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삶과도 멀지 않다.

그 여성들의 역사를 굽이굽이 들려준 뒤 그녀는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외부에 휩쓸리지 않고 ‘외롭게’ 자신의 길을 떠나라고 노래하는 이런 시를 선물로 준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버림받은 자가 되어라/당신 인생의/모순을/숄처럼/당신 몸에 두르고,/돌을 막기 위해/당신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광기에/환호하며/굴복하는 것을 보라/그들이 곁눈질로 당신을 보게 하라/그리고 당신은 곁눈질로 대답한다. 버림받은 자가 되라/혼자 걷는 것을 즐거워하라/(품위 없는)/그렇지 않으면 혼잡한 강바닥을/다른 성급한/바보들로 가득 채워라…”(<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Be Nobody’s Darling)>)

여성은 여성의 멘토다

[앨리스 워커의 문학세계]

구은숙/ 청주대 영문과 교수


△ 영화 <컬러 퍼플>의 한 장면.

앨리스 워커의 글은 오랫동안 사회에서 금기시했던 문제를 파헤치고 들어가 신화를 해체하고 그로 인해 여성이 겪게 되는 고통과 슬픔을 재현한다. 소설 <환희의 비밀을 간직하며>는 아직도 수많은 여성에게 행해지고 있는 여성 성기 절제 관습을, <컬러 퍼플>은 근친상간과 동성애, 흑인 여성에 대한 흑인 남성들의 폭력을, <메리디안>에서는 흑인 모성신화의 억압성을 그린다. 이 소설들은 흑인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흑인 남성 비평가들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그녀가 다루는 중요한 주제는 ‘변화’(transformation) 모티브다. 그녀는 가부장제 안의 권력관계가 변한다고 해서 여성의 억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주체의 자기 변화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컬러 퍼플>의 여주인공 씰리는 내적 변화를 통해 정신적 해방에 도달한다. 가장 최근 소설 <이제 우리의 마음을 열 때이다>는 자신의 삶을 관조하기 위해 아마존으로 여행을 떠난 한 여성 작가의 영적 깨달음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남녀, 인종, 노소의 갈등을 초월하고 결국 대지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영적 변화를 주제로 다룬다.

수필집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는 흑인 여성으로서 부딪쳐온 다양한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는 앨리스 워커의 고전이다. 이 책은 여성의 정체성과 글쓰기, 여성과 육아, 여성 정치운동 참여의 중요성, 세대간 의사소통의 필요성, 여성 문학전통의 발굴, 흑인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억압적인 피부색 차별주의 같은 다양한 문제를 솔직하게 다룬다. 작가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창조의 불꽃을 간직해왔던 흑인 여성 조상들이 남겨준 소중한 정신적 유산은 바로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 내적 강인함에 대한 존경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개개의 여성은 다른 여성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며 여성들 사이 멘토링(mentoring) 역할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특히 이 책에 인용된 마틴 루터 킹의 부인인 코레타 킹의 “여성들은 과거의 부패와 관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야말로 새로운 리더십과 인류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다… 여성들은 연민과 사랑, 용서를 실천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현재 한국 상황에서 여성의 역할을 생각해볼 때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또한 일하는 여성의 육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우리에게 장애가 되기보다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일 안에서의 의미 있는 탈선’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전해준다.

그녀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글을 쓴 흑인 노예 여성들을 현대 흑인 여성 문학의 대모로 간주하고 필리스 휘틀리, 조라 닐 허스턴과 같은, 흑인 문학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흑인 여성 작가들을 재발굴해왔다. 흑인 여성의 자아 발견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녀는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에서 평범한 흑인 여성들이 자서전 쓰기를 해봄으로써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참여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워커는 지금도 환경보존, 인디언 권익보호, 평화, 반핵운동 등 모든 종류의 억압에 맞서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아가 그녀는 지구화 현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색인종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고발하고 물질지상주의의 현대사회에서 자연과 영혼의 중요성,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인종문제에 대한 교육이 아직도 매우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워커의 작품들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 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가시적, 비가시적인 억압과 차별 문제를 똑바로 보게 한다. 그리고 다양한 인종, 세대, 남녀가 공존하며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일깨워줄 것이다. 특히 진정한 여성해방은 여성 자신의 주체적 변화에 있다는 그녀의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앨리스 워커(Alice Walker) 방문안내 site

http://www.msiftopia.or.kr/alice_main.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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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4/05/0090000002004052518261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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