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10일, 콜로라도에서 양계업을 하던 로이드와 클라라 올슨 부부가 닭을 한 마리 잡았다. 늘 그래왔듯 칼로 목을 친 로이드는, 머리가 잘린 닭이 - 그러나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어디론가 사라진 사실을 깨달았다. 깜짝 놀란 로이드는 닭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고, 한참 후 다른 수탉들 사이에 섞여 있는 문제의 닭을 발견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닭은 우리 속을 거닐고 있었다. 그렇게 닭은 머리가 없는 상태로 2년을 더 살았고, 무엇보다 건강했고, 방송과 공연을 통해 수많은 수익을 올렸으며, 훗날 자신의 이름을 기네스북에 올려놓았다. 그 닭의 이름은 마이크다.
잘 잤니 마이크 1947년에 죽은 그 닭의 이름을, 나는 오늘 불러본다. 뭐랄까, 머리 없이 살아가는 개체끼리의 막연한 교감이랄까, 그런 것이다. 마이크로선 좀 어이가 없겠지만, 하지만 여기, 머리를 잘리고 살아가는 민족이 있다. 어이가 없긴, 누구나 마찬가지다. 한 외신은 칼럼을 통해 “한국이여, 중요한 건 경제와 빚이다. 이 바보들아.” 따위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 참, 닭 쫓던 개의 심정이 잘 묻어난 빼어난 헤드라인이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은 지붕이 아니고, 지붕은 보이지 않고, 그러니까 몸통 그 자체로, 우리는 착잡한 심정이다.
외람된 얘기지만, 그러나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이 좋다, 마음에 든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권한대행’인 만큼 바짝 긴장한 모습이고, 문제의 닭대가리들 - 정치인들은 유례가 없을 만큼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고 또 살핀다. 뭐야, 뭔가 제대로 되어 간단 느낌이 힘차게 드는 것이 아닌가! 목이 잘리고 비로소 인생역전에 성공한 마이크처럼, 나는 들뜬 기분이다. 기분 같아선, 이대로 한 2년은 살고 싶은 심정이다. 잘 잤다, 마이크! 이제 비로소, 깊은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야. 그래, 그랬어.
우선 우리는, 우리가 바로 ‘몸통’이란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간 우리는 정치권의 깊은 곳 - 막강한 그 어딘가에 몸통이 있다고만 여겨왔다. 저는 깃털이에요, 몸통은 따로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저 비리의 핵심에, 수십억, 수백억의 핵심에 그것은 존재할 것이라고 막연히 여겨왔다. 아니,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3월12일의 탄핵정국은 그래서 우리의 잠을 깨워준 호재였고, 고마운 악몽이었다. 친구여 보아라. 지금 걷고, 뛰고, 살아 있는 건 우리다. 바로 우리가, 앞으로도 온전히 ‘우리’만으로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몸통이자, 주인이다. 이제 피부로 기억하자. 뼛속 깊이, 저들이 ‘권한’이 아님을, 실은 저들이 우리의 ‘권한대행’이었음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자. 지금도 떠들고 있는, 저건 뭐지 아, 저거 저건, 썩어빠진 닭대가리야.
이제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되었다. 저 대가리들로 인해, 우리가 닭이나 바보 소릴 들어왔음을. 저 대가리들로 인해 그간 우리가 힘들고 고통받았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때가 있었다. 이제 그 말을 전적으로 수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닭의 목을 잘라도, 새벽은 온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 버렸다. 이제, 비틀 목이 없어 어쩔래 바로 너, 닭대가리야. 아니, 목을 비트는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우리였다.
목 없는 닭 마이크의 사인은 주인인 로이드의 부주의 탓이었다. 양분을 넣어주던 주사기를 식도에 꽂은 채, 한눈을 판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정국이, 또 다가올 4월 총선이 우리 민족이 가장 주의 깊게 보내야 할 결단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기회이다. 다시 한몸이 되기 전에, 한눈 팔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대가리’를 ‘머리’로 바꾸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닭이 아닐지도 모른다. 새벽이 오면 새벽이 오면, 우리는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스스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의 아침까지, 잘 자라 마이크!
박민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