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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이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인 구달은 너무 유명한 사람이다.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어서 (게다가 느낌표 선정도서이기도 해서) 이 책을 사는 것 조차 망설였었다. 출장길에 가져갈 책을 사러 학교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손에 넣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겠지.
과학자가 되기 위해 벌써 10여 년간 교육을 받아온 내가 과학이라는 도구 자체와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고 종교와의 조화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가장 간단한 진핵 생물인 효모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구조와 기능이 보존되어 있는 단백질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는 분자적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 종을 분화시켰고 진화의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진화론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아이들은 창조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그때 마다 ‘처음 생명의 시작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진화는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옳은 대답인지 자신이 없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 아니, 이것도 내 지식에 대한 자만인가?
‘희망의 이유’를 읽고 나서 이런 것들에 대한 불안함을 덜 수 있었다. 진화, 윤회처럼 내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개념들을 엄격하게 외면한 것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신이 아니었다. 신의 겉에 둘러싸인 제도로서의 종교였다.
제인 구달의 이야기는 나에게 바바라 맥클린 톡(생명의 느낌)과 현경(미래에서 온 편지)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두 여인처럼 제인 구달도 나에게 힘을 주었다. 신을 사랑하고 과학을 맹신하지 않고 과학을 도구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자연과 사람과 주위의 모든 것들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동안 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나에게 때로는 큰 부담이 되어왔다. 이 일은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순전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연구는 쉽지 않고 결과물이 없으면 당장 경력에 문제가 생긴다. 어떤 때는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쓰는 것인지 논문을 쓰려고 연구를 하는 것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무언가 알아가는 기쁨을 더 느끼면서 연구했으면 좋겠다. 논문 한 편 더 쓰려고 급급하기 보다는. 나중의 일자리를 생각하면서 야망을 불태우기 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