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본명(本名)을 불러주자

-도적, 먹튀, 분식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다-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집약하는 가장 정확한 수식어는 무엇일까? 민주, 진보, 개혁으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수식어는 아마 ‘신자유주의’와 ‘독재/반민주’일 것이다. 전자를 주로 쓰는 사람들은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오십보백보로 본다. 당연히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보니 이명박 정부를 ‘토건형 신자유주의’로, 참여정부를 ‘어정쩡한 신자유주의’ 혹은 ‘좌파 신자유주의’로 규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적 설득력이 있을 리가 없다. 한편 ‘독재/반민주’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 수식어다. 독재/반민주의 전형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기본 상식을 무참하게 짓밟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집약하는 정확한 개념이 없다 보니, 동일한 개념을 표현만 살짝 바꿔서 사용하곤 한다. ‘일방적 국정운영’ ‘밀어붙이기식 행태’ ‘핍박과 배제의 정치’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일방적’과 ‘밀어붙이기’라는 개념은 비판자들의 의도와 달리, 과단성 있고 저돌적인 추진력을 기대하고 이명박을 지지한 사람들에게 지지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는 측면이 있다.

 

인간의 추상(抽象) 능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름)은 본래 특정 측면은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버리는 편광안경이다. 따라서 개념을 잘못 잡으면 엉뚱한 것을 포착하고, 정작 중요한 것은 버릴 수 있다. 그래서 개념이나 언어에 의해 마음이나 사고가 결정지어지고, 더 나아가 정치사회적 현상은 재창조된다. 2000년과 2004년 연이어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이유를 분석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유명해 진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박사는 인간의 인식과 사고(연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언어(개념)의 이런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레이코프 박사에 따르면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서, 이를 재구성한다는 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란다. 그런데 이는 동양권에서는 그리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공자는 제자 자로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냐’고 물었을 때, “반드시 名을 바로 잡겠다(必也正名乎)”라고 하여, 정치에 있어서 正名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사실 공자나 레이코프 박사가 뭐라고 했는지 알지 못해도, 이들의 통찰은 이미 한국 정치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낙인 찍기’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가 보수를 ‘신자유주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니 하면서 별로 설득력도 파괴력도 없는 낙인을 찍는 동안, 보수는 진보에 대해 ‘좌파’ ‘친북’ ‘무능’ ‘급진’이라는 낙인을 찍어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물론 이런 낙인들은 결코 사실에 부합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오랜 편견에 호소하고, 무엇보다도 보수 절대 우위의 언론 환경으로 인해 국민들의 뇌리를 깊숙이 파고 들었다. 그러면 도대체 이명박 정부와 보수 세력을 어떤 개념 내지 프레임으로 집약해야 할까? 한마디로 어떤 낙인을 찍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진보에 절대 불리한 언론 환경으로 인해 이 낙인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아가 이 낙인은 때와 조건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행태를 통일적으로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프레임은 실체적 진실에 부합되지도 않고, 이명박 정부의 여러가지 얼굴을 모순 없이 설명하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개념조차 제각각 이다. 고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로 규정하는 진보좌파를 비판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작은 정부 사상’을 핵심으로 한 부자를 위한 정책, 시장의 강자를 위한 정책으로 규정하였다. 반면에 진보좌파들은 신자유주의를 ‘워싱턴 컨센서스’가 강조한 개방화, 규제완화, 민영화 정책 패키지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엄청난 적자재정과 추경예산을 통해서 정부예산을 대폭적으로 늘리고, 부채에 기대어 공기업 예산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한술 더 떠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10조원이 넘는 국책사업예산을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등 공기업에 떠넘기는 일종의 ‘분식 회계’도 감행하고 있다. 표리부동, 분식회계, 정보차단(불투명성 선호), 면종복배 등으로 표현되는 사기적 수법은 이명박 정부의 체질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사상인 작은 정부 사상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개입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집권초기에는 52개 중점 관리 품목을 설정하여 박정희식 지도단속을 통한 물가안정을 추구하였다. ‘MB물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한편 재벌대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유무형의 규제, 처벌권으로 압박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간판 상품이 규제완화 인데, 이를 실행하기는커녕 가장 나쁜 초법적, 탈법적, 자의적 규제를 휘두르고 있다. KT•SK•LG 같은 굴지의 대기업에 대해,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250억 원의 기금 출연을 감히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수틀리면 기업을 혼내 줄 다양한(초법적, 탈법적, 자의적) 수단이 있고, 그런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패거리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KBS 신태섭 이사와 정연주 사장을 몰아낼 때 보여준 황당한 행태, 노전대통령에 대한 지극히 편파적이고 야비한 수사,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한 국정원 의 소송 등은 이명박 정부와 한국의 자칭 보수 집단의 야만성, 폭력성, 몰염치성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러면서도 기업 경영권 시장을 왜곡하는 포이즌 필(Poison Pills) 제도를 도입하여 적은 지분으로 많은 기업군을 지배하는 몇몇 재벌들의 이해와 요구에 복무하고 있다. 친기업과 친시장을 완전히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주도 그룹과 핵심 지지층 자체가 권력을 통해 차지할 수 있는 각종 이권 추구에 익숙한 집단이다 보니 갖가지 방식으로 자리와 이권과 재정을 털어먹고 있다. 단적으로 기업, 금융기관의 기부금과 휴면예금을 합쳐서 총 2조원의 재원으로 ‘미소금융’재단을 만들어 그 운영권을 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는 측근들에게 넘겼다. 자산 8천억 원의 삼성장학재단의 이사장 자리도 비상식적 무리수를 두면서 측근에게 넘겼다. ‘국민 부담률(GDP대비 세금+사회보험료의 비중) 감하’와 ‘부자 감세’야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인데, 이명박 정부는 ‘부자감세’를 하긴 하는데, ‘국민부담률’ 상향과 ‘서민중산층 증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하는 일은 신자유주의와 멀어도 너무나 멀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경제와도 한참 멀다.

 

냉철하게 보면 이명박 정부와 한국 보수 세력의 다양한 행태를 관통하는 것은 아프리카 후진국식의 도적 정치, 먹튀 정치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리를 철저히 자기 패거리에게만 배분하고, 다른 군벌이 쳐들어오기 전에 장갑차, 기관총을 앞세워 최대한 먹고 튀는 것이 아프리카식 도적 정치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도적 정치는 정신-공동체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같은 패거리가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자주의-은 그들과 동일하나 방법은 숱한 변칙, 편법과 정보 숨기기, 분식 회계 등이다. 우아한 도적 정치라고나 할까? 이명박 정부에게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자. 원래 분식에 능한 정부에게 신자유주의라는 한 때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화장까지 시켜 우아하게 단장시켜 줄 필요가 없다. 암만 뜯어봐도 도적, 먹튀, 분식 이라는 수식어를 빼놓고 그 이름을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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