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저기 나비가 날아오르는군. 이제 슬슬 봄이 찾아오는 모양이야. 점이라는 건 간단해. 눈으로 나비를 보고 입으로 봄이 온다고 말하는 일이야. 온몸과 온 마음을 열고 뜨겁게 세상을 바라보거나 귀를 기울이는 일이야. 왜 사람들은 책에 씌어진 것이라면 온갖 거짓말을 다 늘어놓아도 믿으면서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때로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의 운명과 역사란 결국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온몸과 온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만 빠져 있는 것일까? 몸소 역사를 겪어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뿌넝숴라고 말해도, 역사를 만드는 자들은 거기에다가 논리를 적용해 앞뒤를 대충 짜맞추고는 한 편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사람들은 기념관에 가서 구경하지.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고, 지평리전투에서 인민지원군은 공세적으로 퇴각했다고, 서울에서 주도적으로 철군했다고 말하지. 그건 자네가 읽는 역사책도 마찬가지일 것일세. 서로는 서로를 괴뢰군이라고 부르고 서로는 서로를 격멸했다고 말하고. 그런 역사책은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거짓말이라고 내 얼굴에 침을 뱉지. 고작 일백년도 지나지 않아 휴짓조각으로 버려진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내게 마구 발길질을 하지. 그게 바로 자신이 사내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하는 일이지. 왜냐하면 내 손이 바로 진실을 말해주니까. 역사책에 나와 있지 않은 진실을 말해주니까. 이제 알겠는가? 봄에는 왜 나비가 날아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꿈을 꿔야만 하는지? 나비가 날아오지 않고 찾아오는 봄은 없는 거야. 책에 씌어진 얘기가 아니라 두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얘기하게나. 두 분으로 보이는 그 광경이 무엇을 뜻하는지 온몸으로 말해보게나. 뿌넝숴. 뿌넝숴. 그런 말이 터져나올 때까지 들려주게나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 자네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딛기 어려운 얘기들을 내게 말해보게나. 그럼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내가 말해줄 테니까. 책에 씌어진 얘기말고. 자네가 몸으로 겪은 얘기. 뿌넝숴. 뿌넝숴. 그 말이 먼저 나올수밖에 없는 얘기. 말해보게나 어서. 어서. (김연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창비, 2005), 76-77쪽)

 

   
 

대동아전쟁 이래 포연 속의 진실이란 내 몸이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에 달린 것일뿐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체득한 저 같은 장삼이사로서 그 어떤 거짓 속에 있더라도 내 몸이 살아 있다면 진실이요, 그 어떤 진실 속에 있더라도 내 몸이 죽었다면 거짓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해도 박쥐구실이라 욕할 일만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위의 책, 231쪽)

 
   
 

 

   
 

그때 저는 인민재판이라는 것을 처음 목도했는데, 따발총을 멘 인민군들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이 사람이 반동분자요, 아니요?" 하고 물으매 모두들 기가 질려 아무 말도 없는 사이 어디선가 한두 사람이 "악질 반동분자요" 하고 소리치니 두말없이 총을 쏘아 죽이더이다. 피를 뿜으면서 버둥거리다 숨지는 꼴이 어찌나 끔찍스러운지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으나 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락에 숨어든 그이는 필시 그 꼴을 면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제가 이렇게 말하면 변명이나 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 끔찍한 인민재판의 광경은 한순간에 저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었고 그 때문에 그들에게 협력하는 척 보이지 않으면 그날로 당장 끌려가 개죽음을 면치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위의 책, 234-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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