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노무현 이후> 출판기념회 강연


"노무현 지속가능 성장, 좌우 '딱지'로는 이해불가"

이정환 (bangzza) 기자









▲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출판기념회 강연
ⓒ 사회디자인연구소

"남의 나라 이야기에는 귀를 잘 기울인다. 허나 우리 새로운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남의 나라 '제3의 길'은 오각형이라고 인정해주면서도, 대한민국 대통령, 우리 지도자가 고민한 새로운 길은 네모 아니면 동그라미 아니냐고만 따졌다. 왜 육각형이나 칠각형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나."

최근 '포스트 김대중•노무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정부 '로드맵' 입안자이자 집행자였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박정희 시대 권위주의에 기반한 성장모델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모델을 내놓지 않으면서 좌는 좌대로, 우는 우대로 두들겼다"는 말로 '양쪽'을 모두 비판했다.

1일 저녁 동국대 다향관에서 사회디자인연구소 주최로 열린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출판기념회 강연에서 김 전 실장은 이같이 말하면서 "참여정부 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민한 것 이상의 새로운 성장모델을 보여준 이는 없다고 본다"며 "노무현의 성장은 지속가능한 성장이었다"고 강조했다.

왜 지속가능한 성장이었나

노무현 정부 시절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 청와대 정책실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한 김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가진 가장 큰 질문 중 하나가 '경제는 왜 확대재생산되어야만 하는가'였다"면서 "그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소개했다.

김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은 한 번 끝나고 마는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굉장히 강하게 했다"며 "성장의 열매가 사회 일부 계층에게만 가면 당연히 언젠가 문제가 제기되고, 사회 갈등과 혼란이 일어나면 그때부터 성장은 멈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전 실장은 "적정한 규모의 안정된 내수 시장 기반, 산업구조 조정을 원활하게 하는 정도의 노동 유연 안정성, 공정한 게임을 위한 규칙 등을 노 전 대통령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조건으로 봤다"며 "지속가능한 성장이 노 전 대통령의 경제사회정책을 설명하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은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한 통합적 사고를 불렀다"며 "특히 국가가 강압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오늘과 같은 민주사회에서는 사회정책이야말로 중요한 경제정책이라고 확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은 왜 '작은 정부론'에 반대했나

김 전 실장은 "이렇게 사회정책에 역점을 두다 보니까, 정부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늘상 강조하셨다"면서 "정부는 기업 등이 시장에서 잘 뛸 수 있도록 밀어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또 낙오자를 책임져 주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봤던 것 같다. 시장과 공동체가 앞장서고 정부가 뒤따라가는 어머니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작은 정부론'에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는 것이 김 전 실장의 회고다. 그는 "일방적인 규제나 특혜를 앞세우는 정부에는 사람이 별로 필요 없지만,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에는 인적 자원이 아무래도 많을 수밖에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은 무조건 공무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이어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조세 부담률도 현행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오히려 세수를 어느 정도 늘려야 한다는 입장으로 감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 조세 부담률을 높여야 하는지 언젠가 논쟁을 해보자는 말씀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맞았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새로운 이야기에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 김 전 실장의 주장이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굉장히 외로운 존재였다. 참으로 외로웠다"며 말을 이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외로운 존재"

"신문을 보시다가 '내가 꼭 정신병자 같다, 미친 사람처럼 써 놨더라, 정말 내가 그런가'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나도 당해봤지만 굉장히 괴로운 일이다. 노 전 대통령처럼 특히 자신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분한테는 정말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지속가능한 성장론을 좌우 각각 엄청나게 공격했다고 회상했다. "성장을 강조하면 소위 진보로부터, 지속 가능한 부분은 소위 보수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엄청나게 얻어맞았다"는 표현을 반복하며 "그러다 보니 '좌파 신자유주의'란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전 실장은 "심지어 합리적인 분석이나 설명을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APEC 회의 가서 양극화로 인한 내수시장 축소가 자본주의에 위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도 한 신문만 귀퉁이에 소개하더라.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를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김 전 실장은 "과거 성장 메커니즘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성장 모델을 지금 갖고 있는가, 아니면 누가 내놓고 있는가. 나는 확신이 없다"며 "좌파 신자유주의란 말이 나온 것 자체가 노무현에게는 고통이었고 비극이었다"는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김두관 전 장관 "지금은 연대하고 단결해야 할 시기"

한편 이날 본격적인 강연에 들어가기 앞서 김 전 실장은 "노 대통령과 인연이 깊기에 아직은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또 학구파인 그의 생각 넓이와 깊이를 올바로 전달할 수 있는가 많이 고민했다"면서 "오늘은 소극적으로 말했지만, 언젠가 쏟아놓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디자인연구소(http://www.goodpol.net)가 주최하고 도서출판 한걸음•더가 후원한 이날 출판기념회는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 우희종 민주화교수협의회 상임의장(서울대 교수)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두관 전 장관은 축사를 통해 "민주개혁 진영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다. 지금은 연대하고 단결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건설하는 고민까지 주어진 과제"라고 밝혔다.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가 갖고 있던 올드 레프트를 벗어나는 새로운 요소를 갖고 있었고 이것이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힘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오늘의 이 자리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어 반동의 역사를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책소개]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저자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 사회디자인연구소 노무현



최근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내놓은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의 가장 큰 미덕은 풍부한 통계 분석을 통해 참여정부를 분석함으로써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2007년 1인당 국민소득(GNI)은 2만1695달러로 참여정부 5년간 79.3%가 올랐고,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은 평균 4.3%의 실질성장률을 기록해 주요선진국들에 견줘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란 식이다. 보수세력의 평가기준만 따른다면 탁월한 실적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통계분석을 통해 김 소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참여정부의 '밝음'이 아니다. OECD 최고 수준의 자살율 등 '평소 중시하지 않은 지표'도 함께 제시함으로써 참여정부의 '그늘' 또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인해 선명해진 숙제'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김 소장이 이 책에서 기존 진보진영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큰 폭의 재정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복지재정을 대폭 늘리고 공공부문을 유지•확대하자는 식은 시대적 착각이며, 재정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불가사리 같은 괴물을 낳을 뿐이란 것이다.

그래서 "양극화, 신자유주의, 평등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면서 "대한민국이 새롭게 타고 갈 새로운 정책 플랫폼 제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동시에 그것의 핵심 가치는 공정과 공평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서언을 통해 집필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특별히 그를 아쉬워하는 것은, 시대의 어둠을 깨치는 위대한 방법을 찾기 위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울 기회가 코앞에 닥쳤는데 그가 홀연히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5년의 재임기간보다 퇴임 이후에, 수십년에 걸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민족적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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