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가을, 집필 초기만 해도 두어 달 안에 한국사회의 주요한 문제에 대해 종합적이고 간명한 진단과 대안을 수십 쪽짜리 소책자 형태로 집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아무리 보아도 혼미한 참여정부와 여당, 사회개혁에 관심이 많은 386세대의 시각교정에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는 동네 산책 옷차림으로 태산준령을 넘으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었다.-3-4쪽
한국정치는 한국호의 방향, 한국호 선체의 상태, 한국호의 항로에 놓여 있는 해류와 암초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선장실이나 조타실 쟁탈전에만 몰입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뜯어보면 볼수록 한국사회를 종합적, 균형적으로 통찰하는 것은 어려운데, 시대를 종합할 책임이 있는 지식사회는 구조적으로 무지하고 무책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계, 언론계,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명망이 있는 진보 및 보수의 지성도 자신이 파 들어간 우물 속에 앉아 우물 밖의 거대한 세계를 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