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절판


내 말을 믿어요. 모스가 말했다.
그런 말은 듣기 안 좋아요. 운전사가 말했다. 언제나 그랬죠.
그런 말을 해본 적은 있소?
그럼요. 해봤죠. 그러니까 그 말의 가치를 알죠.-229-230쪽

배고프니?
괜찮아요.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젠데.
첫 마디부터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냐고 묻는 사람 싫어요.
그래, 알았다. 그래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니?
트럭에 탈 때부터 아저씨가 똑똑한 줄 알았어요.-233쪽

당신이 악마라면, 그리고 인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다면, 결국 마약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더니 사람들이 나보고 악마의 존재를 믿느냐고 물었다. 내가 요점은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건 아는데 어쨌든 믿느냐고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때는 믿었던 것 같다. 중년이 되면서 믿음은 다소 시들해졌다. 지금은 다시 반대쪽으로 기울어진다.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많은 일이 설명되지 않는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239쪽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냐. 네가 그곳에 가면서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요점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너의 생각. 아니 누구의 생각이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없어. 내가 말하려는 게 이거야. 너의 발자국은 영원히 남아. 그걸 없앨 수는 없지. 단 하나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조금은요.
아직 이해 못하는 것 같으니 한 마디 더 하마. 너는 어제 몇 시에 일어났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야. 다른 건 중요치 않아.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너의 인생이 되지. 그밖엔 아무것도 없어. 너는 도망가서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하고 묻게 돼.-249쪽

아버지는 언제나 최선의 길을 선택하고 진실을 숨김 없이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누구인지 결정할 필요가 없는 것만큼 마음 편한 일은 없다고 하셨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곧바로 이야기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자기 잘못을 껴안고 가야 한다.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꽤 간단하게 들리는 말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그러니 오히려 생각해 볼 이유가 더 많은 셈이다. 아버지는 말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한 말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는 두 번씩 말씀을 하실 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귀를 기울여 들었다. 나는 아마도 젊은 시절에 벌써 아버지의 말씀에서 벗어났을 것이지만 다시 그 길로 돌아와서는 다시는 그 말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섰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단순해야 한다.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틈 단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게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는 벌써 늦은 것이다.-273쪽

살아오시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지요.
노인은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그가 입을 열었다. 후회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아. 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많이 생각나. 걸어다닐 수 있는 것도 그 중 하나지. 자네도 그런 목록을 만들 수 있겠지.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 나이가 들면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은 만큼 행복한 법이야.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결국 예전에 행복했던 만큼 행복한 거야. 아니면 그만큼 불행하든가. 이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 -288-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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