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 복거일의 영어 공용론 SERI 연구에세이 3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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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인 이유

정권이 바뀌니, 오렌지가 '아륀지'가 될 뻔한 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눈앞에 벌어지는 대소사에 대해 도무지 '실용'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영어 공용화 논쟁이 이제는 논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 러시아 라디오 방송 '모스크바의 메아리'에서 공산당 체제 붕괴와 자본주의 유입이라는 역사적인 대혼란기를 겪은 러시아어가 겪고 있는 변화, 혼란에 대해 저명한 러시아 언어학자가 출연해 대담을 나누는 것을 듣게 되었다. 러시아어가 지금 처한 상황을 두고 이 학자는 '언어학적 폭발' 상태라고 표현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전반이 자본주의의 그것으로 대체되는 와중에 러시아어에는 없던 개념이 영어 그대로 유입되어 외래어로 사용되고, 기존에 있던 개념들조차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영어 단어로 대치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 학자의 입장은, '그렇다고 언어순수주의에 입각해 언중의 언어게임('말장난')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건 어불성설로,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 스스로가 자정노력을 해야하는 수 밖에는 없다', '가장 걱정되는 건 요즘 네티즌 사이에 만연되고 있는 '불량어'(한국으로 치면 '외계어' 정도된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일부 상용어휘들의 철자를 고의로 틀리게 적는 것을 말한다)로, 이것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나이 좀 있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불량어를 장난으로 사용하지만, 인터넷에 코박고 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이 불량어가 표준어로 각인될 수 있으며 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는 러시아어의 꼬라지가 어떻게 돼 있겠냐는 것'이었다. 이 말하면서 이 학자가 두 주먹을 불끈쥐고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아무튼 러시아어의 10년, 20년 후 전망에 대해서는 영어에 치어서 열등감을 느끼며 사는 우리로서는 부러울 수 밖에 없는 낙관론을 폈다. 대국적인 여유라고나 할까, 특히 기름값 엄청 올라서 요즘 표정관리 들어간 자원대국 러시아의 여유만~만함이 이런데서도 느껴져서 슬며시 질투도 났다. 

아무튼 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 것은, 이 학자가 한 말들이 아니라 프로그램에서 미리 준비한 자료였는데 그 내용에서 거론된 다른 나라의 사례, 특히 프랑스의 언어정책을 들어보면 참으로 '아륀지' 인수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 맞는지, 그 사람들이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 맞는지, 배웠으면 도대체 뭘 배웠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사의 경험에서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민족이나 국가가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모국어의 상실, 언어적 독립성의 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문에 국가의 책임은 자신의 국어를 보호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의 경험을 살펴보자. 가장 돋보이는 예는 프랑스이다. 프랑스의 국내언어정책은 불어의 입지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것은 언어정책 관련 법안이 꾸준히 제정되고 있음으로 증명된다. 일례로, 1972년에 '불어 풍요화(?)법'이, 75년에는 '불어 사용법'이 제정되었다. 그후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불어의 순수성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법이 발효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대다수 방송이 불어로 진행되어야 하고, 공중파를 타는 노래의 40% 이상이 불어 노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학자들은 유입되는 영어 어휘들의 불어 등가어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 등가어들은 바로 불어 대중의 입말로 흡수된다. 그 결과 영어에서 온 외래어 단어와 개념 2천여 개가 이미 불어 등가어로 순화되었다. 브라질 의회도 국어인 포르투갈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법을 제정했으며, 이란에서도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직접 아랍어의 유입으로부터 국어를 지키는 법을 승인했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국가 전역에서의 국어 사용을 보장하고 언어문화를 보호하고 장려하는 내용의 '국어법'이 제정되어 있다."

참고로 복거일의 이 책은 안 읽었다. 안 읽었으니 어떠한 내용물이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런 무개념의 제목을 단 책을 세상에 버젓이 내놓는 용기에 별 한 개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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