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천추범 - 1896년 민영환의 세계일주
민영환 지음, 조재곤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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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기도 하고 또 국사책에서 배웠던 민영환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참석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선택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었고, 을사조약을 항의하는 의미로 자결한 지사라는 평면적인 한국 위인 민영환을 재발견하는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당시 조선 최고의 세력가인 민씨 일가의 중심부에라는 배경에다 타고난 총명함으로 일찌감치 출사한 최상류 엘리트가 미국과 유럽을 거쳐 러시아로 가고 시베리아를 횡단해 조선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안목을 넓히고 성장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공식 문서용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내밀한 고백 같은 건 없지만 건조한 기록 가운데 드러나는 그의 관심사와 행보가 더 객관적으로 그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앞선 서구를 보면서 깨어나고 있음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그의 한계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황령(皇靈)의 도우심이니 하는 류의 곳곳에 드러나는 전제 황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그 대상이 되는 고종에 대한 진실한(혹은 진실하게 보이는) 애정과 흠모는 백년 이상의 시간 차이를 두고 바라보는 내게 경이인 동시에 씁쓸한 연민 등등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게 바로 민영환이라는 존재의 한계로구나 하는. 그래도 시대를 뛰어넘는 사고를 할 수 있는 건 한 세기에 한두명만 나와야지 여러명이 나오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지 싶다는 이유로 이해.

이 여행기를 통해 민영환에 대한 탐구를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방문했던 국가들에 대한 기록도 아주 흥미롭다.  많이 미화된 시각이긴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3자의 눈으로 본 서구 사회의 풍물이나 생활상들은 나도 러시아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했다.  고물가와 불친절, 바가지로 악명 높은 페테르부르그와 모스크바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간절해졌다는 부작용을 낳았음.

이건 현대에서 이미 확정된 과거를 바라보는 사람의 특권인데, 러시라오 떠나는 민영환이 받은 조칙에 실린 '외무대신 이완용'이라는 이름과 동행했던 윤치호의 윤치호 일기가 인용된 부분을 볼 때 마음이 참 묘하고 스산하고 씁쓸하고 역시나 아주 복잡미묘 야리꾸리 했다.

조선 말기에 날리던 천재 중 하나였던 이완용이야... 어쨌든 조선이라는 좁은 땅 안에 있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치고, 윤치호는 일찌감치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또 이 책에 의하면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서 러시아에서 프랑스어 교사를 둔 것도 모자라 프랑스로 가서 공부를 더 한 것으로 나와있다.  그리고 윤치호 일기에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고 부국강병을 위한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결과는 이완용과 더불어 매국노 중의 매국노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윤치호의 행적을 보면서 지금 저 딴나라인지 성나라인지에서 설치는 운동권 출신 인간들이 오버랩 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Ctrl+V 된다.

본래부터 나쁜 X이었던 것들은 사람들이 대비라도 하지만 한때 착했던, 혹은 착했던 척이라도 했던 것들이 본색을 드러내고 나쁜 X으로 변신할 때의 악독함이나 폐해는 전자보다 엄청 더 심하고 유능하고 똑똑하기라도 하면 그 피해는 재앙이나 재난 수준이 되는 것 같다.  

솔직히... 민영환 공의 자결을 위인전에서 읽을 때 난 어릴 때임에도 좀 시큰둥했었다.  이왕 죽을 거면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일본 고관대작이나 하다못해 을사오적과도 맞대면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많을 텐데 하나쯤 죽이고 갈 것이지 왜 혼자만 갔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구시대의 한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저런 무리들과 합세해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민영환이라는 인물은 충분히 높이 평가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절하지 않는 인간의 존재는 참으로 희귀한 듯.  슬프다.

민영환이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러 떠난 때 나이가 만 35세.  비교적 젊었기에 힘든 여정에 눌리지 않고 많은 것을 보고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행은 많이 갈수록 좋지만 이왕이면 젊을 때 움직이는 게 자신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러시아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책을 챙겨들고 그의 행보를 조금은 따라가 보아야겠다.  내 머릿속에는 칙칙한 잿빛 일색으로 칠해진 구한말에 모처럼 매력적인 인물을 하나 만나게 되어 기쁘다. 

이건 옥의 티인 것 같은데, 하바롭스크에 있다는 향토박물관 사진 옆에 '발해와 거란(금) 유적이 다수 있다'는 설명이 있던데 저자가 착각을 했거나 발해와 거란, 금으로 써야할 부분이 잘못 편집된 거지 싶다.  거란이 세운 나라는 '요'이고 금나라는 여진이 세운 나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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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고양이를 복제했어? - 생활 속의 생명공학 이야기
라인하르트 레네베르크 지음, 이광일 옮김, 만프레트 보핑어 그림 / 들녘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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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잘 보면 코믹한 캐리어처가 나와 있는데 저 그림에서 기대되는 만큼은 아니지만 꽤 재미있다.  생명공학이 이뤄온 업적이며 이 책이 나온 시점에서 최신 결과를 식생활, 건강, 자연 환경, 복제까지 우리 실생활과 연관된 내용들을 찾아서 엮어내는데, 읽을수록 저자의 공력에 감탄이 나온다.

과학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 대한 아주 심도 높은 지식을 가질 수 있고, 반대로 전문 저술가는 적절한 예시나 테마를 찾아내는데 능숙하지만 이게 결합되기는 쉽지 않은데 라인하르트 레네베르크는 그 두가지가 어우러진 능력자라서 생명공학 입문자들에게 문턱을 확 낮춰준다.  그리고 책 내용 중간중간에도 저 표지와 비슷한 류의 그림들이 어려운 내용을 요약해주고 있어 흥미를 배가시켜주고.

보통 생명공학 관련 서적은 미국의 과학자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돌아온 한국인 과학자들이 쓰는 경우가 많아 알게 모르게 미국 중심적인 (가끔 영국의 사례로 섞이긴 하지만) 내용이 되기 쉽다.  그런데 이 책은 홍콩과 독일을 오가면서 연구하는 사람이 저자라서 그런지 생명공학 연구에 미국과 다른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독일의 연구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음.

본의 아니게 짧은 기간동안 생명공학 관련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읽다보니 나온 시차에 따라 연구 결과가 다른 내용들도 발견할 수 있는데 DNA와 줄기세포 부분은 벌써 이 책에 쓴 내용들이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도 몇개 있다.  자료로 이 책을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그 부분들에 대한 교차 검색과 검증이 조금 필요할 듯.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생명윤리에 대한 정리.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것 같은 뜬구름 잡는 내용이 아니라 납득하기 쉬운 논리 정연한 논리였음.   

제목도 가볍고 포장도 가벼움을 지향하고 또 내용물 역시 최대한 먹기 좋게 요리를 했지만 그 영양소는 그대로 살아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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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역사 - 뗀석기에서 유전자 재조합까지 살림지식총서 356
송성수 지음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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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책의 소제목 그대로이다.   

넓게 보면 과학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걸 인간 생활의 실제적인 편리성과 진보를 가져온 기술 (technology)에 한정을 시켜서 구석기 인류가 개발한 (혹은 발명한?) 최초의 도구인 뗀석기에서 시작을 풀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대와 중세 기술의 역사.  철학과 이성의 시대였던 고대에 오히려 기술이 천대를 받았고 중세 때 대접을 받았다는 내용을 보면서... 비가 안 오면 속 타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역사에서도 역시나 구현된다고 잠깐 실소를 머금었다.

근대의 기술부터는 비교적 잘 아는 내용, 그리고 산업혁명을 전후해서 기술과 낙관의 세기였던 19세기의 발전은 어릴 때 옆집 남자애한테 빌려읽었던 그 과학사 전집 내용의 성인용 축약본이다.  달라진 건 그때 읽었던 책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찬미와 찬양이 가득했는데 문제점도 이제 부각되고 있고 디지털이며 정보통신, 유전자에 대한 얘기들이 더해져 있다.

문체도 짤막짤막하니 알아보기 쉽고 (과학분야 저자들 글쓰기의 특징인듯. 미사여구 없이 건조하지만 보기가 쉽다), 에피소드와 적절히 섞은 기술사 얘기가 눈에 쏙쏙 잘 들어온다.

과학 분야에 대한 영양부족이 심각한 내 뇌에게 올해는 불균형이 아주 조금은 바로 잡히는 한해가 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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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 샌드위치 40가지 - 빵과 자연의 어울림 살림 로하스 4
김보선 지음 / 살림Life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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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봤을 때는 솔직히 그 흔하디 흔한 샌드위치 책인줄 알았다.  

그래도 일단 도착한 거니까 구경을 해보자는 심산으로 잡았는데 앉은 자리에서 포스트잇을 10개도 넘게 붙였다. 그것도 다른 책이라면 붙일 걸 찾느라 고민인데 이건 너무 많아서 떨궈내면서 붙이는 즐거움~ 

해외 여행을 많이 하는 세상이라 유럽이며 일본의 유행에 거의 실시간으로 따라가고 있고 그 트랜드를 따른 샌드위치 카페들도 많이 생겼고 이런저런 브런치를 하는 곳이 많아지다보니 솔직히 특별한 샌드위치를 만나기가 쉽지는 않다.  간혹 좀 특이하네~ 내지 오호~ 훌륭하네~ 정도의 샌드위치를 만나긴 하지만 그런 건 가격이 너무나 후덜덜하거나, 아니면 집에서 응용해보기에는 재료 구하기 등 난이도가 높다. 

그런데 이 책은 비교적 흔한 (물론 이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긴 할 것 같지만) 구하기 쉬운 재료들을 독특하게 조합하고 있다.  이게 정말 궁합이 맞나?  때론 고개가 갸우뚱하게 하는 정도로 파격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충 보더라도 맛있어 보기고 먹고 싶은 것들.  좀 게으른 인간이라 보통 요리책을 보고 금방 만들어보는 일은 잘 없는데 이 책은 읽자마자 바로 시도를 해봤다.  (너무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고민을 좀 했다는... ^^)

1차로 시도한 게 양배추 와인 볶은 핫도그.  겨자잎이 없어서 그건 로메인 레터스로 대체하고 만들어봤는데 양배추와 소시지가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볶은 거라 숨도 죽어서 훨씬 많이 먹을 수 있도 부드러워서 좋았음.  너무 잘 자라서 거의 정글을 이루고 있는 내 로즈메리도 있고 냉장고에 버섯이 많이 굴러다니고 있으니 조만간 로즈메리 향 버섯 샌드위치도 해보고 매운 쇠고기 버거도 해봐야지~ㅇ

샌드위치 좋아하는 사람은 추천.  브런치 식당을 꽤 다녀봤는데 어디에도 만나보지 못했던 독특한 샌드위치들이 꽤 있으니 샌드위치 메뉴를 내으려는 카페 창업 준비자들에게도 추천이다. 

이 책 덕분에 당분간은 샌드위치 사랑 모드가 될 것 같다.  홍차와 곁들여도 좋겠고, 친구를 불러 같이 먹을 때는 스프나 하야시 스튜 정도를 끓여서 함께 곁들이면 폼도 나고 아주 든든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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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은 아삭아삭 토마토
황지희 옮김, 이시하라 유미 감수 / 넥서스BOOKS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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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요리책들이 쉽게 만들기, 간단하기, 손님상 같은 커다란 주제 아래 여러가지 다채로운 요리들을 선보이거나 샌드위치, 전골 같은 주제를 정해놓고 그 다양한 변주를 해주는데 이건 재료를 기본으로 한 요리법들을 선보이고 있다.

토마토 하나를 갖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응용이 가능할지, 솔직히 조금 회의를 갖고 봤는데 이 책은 대박이다.

몸에 좋다는 건 알지만 스파게티 소스나 샐러드에 조금 곁들이는 걸 제외하고는 선뜻 잘 찾아먹게 되지는 않는 토마토를 갖고 할 수 있는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음식들과, 간혹 어디선가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그냥 스쳐지나갔던 음식들을 쉽고 간단하게 따라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해놨다.

다 마음에 들지만 별다른 부재료없이 토마토만 갖고 할 수 있는 음식들은 진짜 괜찮다.  아직도 고기를 끊지 못하고 있는 죄많은 인간이라 저것만 먹고 살 수는 없지만 토마토 스테이크나 오븐구이 같은 건 사이드로 곁들이면 고기를 조금이라도 덜 먹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영양학적으로도 좋겠고.

토마토와 일본 요리를 결합시킨 퓨전풍 요리는 한식에도 응용을 할 수 있겠고 (단 우리 부친이 외식을 하고 오시는 날에만) 토마토를 활용한 소스들, 샐러드도 마음에 들고, 드라이 토마토나 집에 흔히 있는 케첩, 토마토 주스를 활용한 요리법들도 쓸모가 많을 것 같다.

보통의 요리책이 어느 정도 재료와 기구, 공력이 필요한데 반해서 이 책은 원룸 자취생 정도라도 해먹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어서 (모든 게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유용할듯.  보니까 이 '몸에 좋은 아삭아삭'이 브로컬리며 양파, 양배추, 생강, 파, 당근까지 있는 것 같던데 내가 많이 사랑하고 애용하는 야채인 양파와 많이 먹어야한다는 건 알지만 샐러드나 찜, 볶음 말고는 잘 먹어지지 않는 양배추에 관한 책도 조만간 사봐야겠다.

연휴 끝나면 가지랑 호박 사다가 토마토랑 넣어서 라따뚜이 만들어 먹어야겠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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