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 절세에서 조세 피난처 탄생까지 현대 금융 자본 100년 이면사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8
니컬러스 섁슨 지음, 이유영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그야말로 딱 아는 만큼 보이는 류의 대표적인 예일 것 같다.

 

경제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는 나같은 독자에겐 '세상에 이런 나쁜 놈이 많다니!'라는 공분을 주면서 우리가 속거나 착취당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깨달음을 주겠고, 관련 분야에 종사하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과 연관되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 같다.

 

조세피난처니 페이퍼 컴퍼니니 단어로는 많이 들었으나 그냥 나랑은 거리가 아주 먼~ 먼 나라의 얘기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잡게 되었다.

 

더불어 조세 피난처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형성이 되었고 어떻게 그 카르텔을 유지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그 카르텔 바깥의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근접해서 거의 진실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한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건 이 부분에 대해선 난 판단할 어떤 경험도 지식도 없기 때문에) 내가 장담할 수 없는 진실의 깊이에 대해선 다른 평가를 하나 옮기겠다.

 

이 저자의 책이 나온 뒤 유명한 조세 피난처 옹호자 한 사람이 저자를 불러서 "이 책이 오류투성이에 깊이도 없기를 바랐는데 그렇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는 것. 책에 대한 평가 중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는데 내가 섁슨이래도 그랬을 것 같다.

 

책의 내용이 너무나 방대해서 그대로 옮기거나 요약하는 건 솔직히 불가능이다. 다만 읽어나가다 보면 뿌리 깊은 역외 금융과 조세 포탈의 그 전세계적인 방대함과 비도덕성에 대해 입이 떡 벌어지게 될 거라는 건 장담한다. 더불어 지금 한국의 1%가 우리 99%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할리퀸 독자들에겐 낯설지 않은 지명인 저지, 맨 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 그걸 이상향으로 해서 굴러가는 내 조국의 모습에 공포의 전율이 흘러올 정도.

 

저지에 사는 한 익명의 백만장자의 고백을 옮기자면 "내게 부과되는 세율은 우리 집 쓰레기 수거업자에게 부과되는 세율의 약 1/4 정도다. 그러고도 나는 하루종일 골프를 치며 소일하는 반면, 그는 아마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집세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저지에서 산다는 것이 바로 이렇다. 돈만 있으면 좋은 것을 누리 수 있다."

 

수백억 자산가면서 의료보험료는 몇천원을 내고 외국에 가있는 자식들을 건물에 위장취업시켜 세금을 포탈하던 우라나라의 어느 분과 소름끼칠 정도로 오버랩이 된다. 현직장관 중 1명 중 6명이 백만자자 이상으로 부유하고 부자들의 의회. (농부가 의회에 있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저지 의원들의 모습에서 노동자를 위한 당이라고 표방함에도 청소노동자 출신 의원은 선거 때 제대로 돕지도 않는 어느 당이 겹쳐진다. 먹물 많이 먹은 그 당 어느 양반들보다도 정말 일 잘 하던 분이었음) 그것이 당연하고 이걸 반대하는 사람에겐 장관이 대놓고 이민을 가라고 폭언을 퍼붓는 사회. 이 저지를 끈질기게 구현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이 땅에 실현됐을 때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저들이 얘기하는 세계화의 기초를 쌓아가던 그 과정에서 그걸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케인스가 등장하는데... 내겐 이 책이 비판의 대상이었던 케인스와, 최악의 케인스주의자라고 비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의 계기도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읽거나 접했던 케인스 관련 내용들은 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케인스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다룬 책을 읽지 않고 약점을 부각한 비판을 접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이론의 헛점에만 몰두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의 경제 이론이 갖고 있는 중요성과 장점에 대해서 놓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만능의 파라다이스로 묘사되던 세계화의 허구를 냉철하게 파악한 책.

 

읽으면서 정상적인 경제 흐름과 조세를 무력하시키는 그 강력한 카르텔에 분노하면서도 '포기하면 편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지만 이런 암울한 현실을 처절하게 펼쳐놓으면서도 그래선 안 된다고 저자는 줄기차게 주장한다. 2007년과 2008년 그 모순이 폭발한 게 차라리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나을 수도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최소한 생각하고 분노하는 건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겨놓는다.

 

'나쁜 사람들이 뭉칠 때 착한 사람들은 필히 연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착한 사람들은 하나하나식 멸망해 갈 것이다. 경멸스러운 투쟁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희생은 동정받지 못 한다.'

 

영국의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한 말이라고 한다. 런던 내부의, 이 책에서 악의 근원지로 묘사되는 소위 시티 금융자본의 비리에는 입이 떡 벌어지지만 그럼에도 이런 진정한 보수를 가진 영국이 부럽다.

 

이런 보수라면 나도 보수에 설 용의가 있음. 그러나 한국의 보수는.... 하아... 떠올리기도 부끄럽다.

부디 최소한 조세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도 하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그렇잖아도 암울한데 한국의 저지섬화는... 진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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