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과 서양 문명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83
다나카 아키라 지음, 현명철 옮김 / 소화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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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의 포함외교로 강제로 개항을 한 뒤 일본 막부가 무너진 메이지 유신 직후에 일본의 외교 사절과 그 수행원들이 서구 문물을 답사하기 위해 떠났던 19세기 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871년의 세계 일주 기록이다.

새로운 문명을 과감하게 흡수하기 위해서인지 사절단의 나이는 아주 젊다. 가장 우두머리인 대사가 40대, 하급 수행원의 경우는 20대 초반과 10대 후반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행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 현대의 다나카 아키라는 그 기록을 발췌해 소개하고 있다.

미국부터 시작해서 유렵 각국, 아시아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이들이 본 것과 느낌, 기록은 시대를 불문하고 서구를 처음 방문하는 동양인(혹은 다른 문명권을 방문하는 인간)이 느낄 법한 그런 내용들이기에 기억에 크게 남는 건 없다. 그보다 더 내게 기억에 남는 건 이 사절단들이 일본에 돌아와 어떤 역할을 했고, 그들이 속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한 저자의 짤막한 기록들이었다.

읽는 내내 가슴 아프게 겹쳐지는 것은 민영환의 세계일주기인 해천추범. 그때 조선의 근대화를 꿈꿨던 사절단의 상당수는 친일파 중에서도 최고의 악질이 되어 나라를 팔아 먹는데 앞장 섰고, 그들을 이끌었던 민영환은 을사늑약의 비운에 항거하며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역사에 만약이란 건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그 수레바퀴가 우리 민족에게 조금만 더 자비로웠다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갔던 그 사절단들도 지금 이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원들이 일본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책의 제일 마지막에 이와쿠라 사절단 명단과 당시 그들의 직책, 그리고 그들이 나중에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짤막한 기록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부디 몇십년, 혹은 한 세기 뒤에 지금 이 시대를 이렇게 아쉽게 회고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하긴... 이미 2007년 12월에 망조는 시작되었지. 이제는 어떻게 수습을 하느냐가 관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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