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고 - 저주를 부르는 북
이문영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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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정말 잘 짜인, 탄탄하고 재미있는 역사 판타지 로맨스를 읽었다.  

이 작가의 전작은 잘 썼다는 건 인정하지만 별로 재미없게 봤기 때문에 이건 볼까말까 많이 망설였다.  전작도 결코 로맨스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성들만의 감성적인 코드를 건드리는 부분은 확실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저런 남자 어디 또 없나, 여주가 부럽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음. <-- 혹자는 유치하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로맨스에서 이 부분은 엄청 중요하다.  ^^

사설이 길었는데 이번 자명고는 숙세가보다 조금은 더 로맨스스럽다. 여전히 여주가 부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설적인 재미도 훨씬 더 이쪽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그런 로맨스 코드보다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비극인 자명고 설화를 역사와 판타지를 교묘하게 엮어서 그 뒤에 모두가 납득이 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만들어줬다는데 있는 것 같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 후나 오만과 편견 그 뒤의 이야기 등을 읽을 때 느껴지던 그런 괴리감이 없이 자명고 설화가 본래 그 얘기인 것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질감이 없이 정말 매끈하다. 다 알고 있는 뻔한 결말이 아니다보니 그 새로운 결말을 알고 싶어서 책을 끝까지 잡게 하는 흡입력도 대단하다.   

특히 역사서에 한두줄 단편으로 언급되고 지나간 것들에 살을 붙여서 중요한 설정으로 곳곳에 끼워 넣은 부분들은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굉장히 즐거웠다.  결말도 최상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로맨스 빠순 경력 00년의 독자로서 장르의 정형성 안에서 이 작품에는 결정적인 흠(?)이 하나 있다.  주인공들이 모든 걸 다 버리고 사라지더라도 그렇게 떠나간 그들이 본래 살던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보장을 해줘야하는데 여기서는 호동과 낙랑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얘네들 이제 뭐 먹고 사나?' 걱정.  -_-; 

낙랑이야 몇 달의 적응 기간이 있었다지만 그래도 왕궁의 시녀와 정말 가진 것 없는 평민의 삶의 질 자체가 다를 텐데. 더구나 왕자로 귀하게만 자라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통치와 무술 밖에 없는 호동은 정말로 뭘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을까?   의지할 곳도 없이 단 둘이 가진 것도 없이 나왔으니 남은 건 훤히 열린 고생길 뿐인데. 한동안이야 사랑만으로도 무조건 좋겠지만 오래오래 삶에 찌들리고 고생 지지리 하면서도 계속 행복했을까 등등의 의문이...

작가 입장에서는 이런 구구한 것들이 군더더기일 수 있겠지만 장르의 특수성이라는 게 있다. 현실을 잊기 위해 보는 로설에서는 이런 현실적인 결말에도 확실한 당의정을 입혀줘야만 독자들이 행복해하는데... 이 작가의 능력이라면 한두줄만 보탰어도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 조금만 독자에게 친절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음.  난 정말 속물적인 인간인 모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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