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와 수치의 역사 까치글방 144
한스 페터 뒤르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만났을 때 상당히 혼란스럽고 황당할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을 읽고 풍속의 역사를 만나는 사람 역시 느낌은 비슷할 것 같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에서 과거사에 관한 부분은 한정된 자료를 놓고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인지 비슷한 주제와 관심을 가진 서적을 보면 제시되는 근거 자료들이 상당히 많이 겹친다. 그런데 그 같은 자료를 놓고 주장하는 이론의 차이는 때때로 황당할 정도로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 책과 풍속의 역사가 그런 전형적인 예인듯 싶다. 같은 근거를 놓고 서로 읽어내는 방향이 극과 극.

풍속의 역사에서 개방과 문란의 상징으로 제시됐던 그림과 문서가 한스 페터 뒤르의 나체와 수치의 역사에선 오히려 절제와 사회적 규제의 증거로 채택되어 있다. 제목은 나체와 수치의 역사이기 때문에 중세인들의 개방적인 성모랄과 원시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던 그런 내용이 아니라 (그런 내용은 오히려 점잖은 제목의 풍속의 역사에서 충족이 될듯) 그들이 엄격한 규범 아래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흔히 중세과 근세인들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되는 초야 공개는 상징이었다는 주장으로, 수많은 풍속화에서 묘사되는 남녀 혼탕은 보이지 않는 엄격한 규제 속에서 행해졌고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 제시되는 증거들이 아까 말했던 풍속의 역사에서 보았던 증거물이라는데 독자로선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푹스의 글을 보면서 머리에 담아뒀던 내용들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느낌.

솔직히 제시된 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듣는 입장에선 어느 쪽이 맞다를 말할 수는 없고.... 이 책을 괜찮다고 말하는 이유는 뒤르의 주장 역시 설득력있게 다가왔다는 것 때문이다. 과거에 어땠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의 가치관과 생활만이 진실이지 어느 것이 보편인지 확실한 정답을 말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반대의 입장을 가진 책을 본 독자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뒤르의 주장 역시 나름대로 확고한 논리를 갖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최초의 혼란이 사라진 다음에는 다양한 관점을 만나는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마지막에 조금 황당했던 것 하나. 총 470여쪽의 두께인데 주석과 참고문헌 소개 부분이 170여쪽.... 자료를 많이 찾아봤단 얘기도 되겠고 자신만의 소리가 적었단 얘기도 되겠고.... 조금은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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