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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단어 도감 - 이런 국어 공부 어때? ㅣ 너는 나다 - 십대 12
노정임 지음, 최경봉 감수 / 아자(아이들은자연이다) / 2025년 11월
평점 :
어쩌면 우리는 매일 무수한 단어를 말하고 듣고 쓰면서도, 정작 내가 어떤 단어를 자주 쓰는지, 어떤 말에 마음이 끌리는지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국어 공부’는 늘 시험과 문법의 틀 안에서만 존재했고, 감정과 삶은 그 언저리에서 배회할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단어는 그렇게 공부해야만 하는 걸까?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문법에 맞춰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이라고 배운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말하는 걸 망설이게 된다. 틀릴까 봐, 이상하게 보일까 봐. 이런 막막함 속에서 『보통의 단어 도감』은 우리 안의 언어를 다시 꺼내어 쓰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내민다. 꼭 어른이 되어서야 가능한 말처럼 여겨졌던 "너 자신을 이해하라"는 문장을 단어 하나로 시작하게 만든다.
이 책은 문법이나 어휘를 주입하는 국어책이 아니다. 편집자인 ‘이모’가 조카 ‘혜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풍성한 언어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수업시간의 필기, 친구와의 채팅, 노래 가사, 자주 쓰는 말투까지—모두가 ‘나의 언어 도감’이 될 수 있다는 발견은 매우 신선했다.
저자는 특정 단어를 확대경처럼 들여다본다. ‘금세’, ‘풀’, ‘기억’, ‘보탬’ 같은 단어들이 단순한 뜻풀이를 넘어 저자의 기억, 감정, 성장과 엮이며 살아 있는 언어로 변한다. 그리고 이 단어들이 청소년 독자에게 ‘너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을 조용히 건넨다. 복잡한 문법 대신, 입술로 발음해 보고, 소리 내어 읽고, 마음에 남은 단어를 써보는 국어 공부. 어쩌면 진짜 공부는 이런 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실용성이나 정보보다 ‘관계’에 있다. 조카를 향한 이모의 편지는 결국 독자인 나에게도 도달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단어, 반복해서 쓰게 되는 표현, 나를 드러내는 말버릇을 곱씹게 되었다. 더불어, 이 단어들이 내 생각의 습관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보통의 단어 도감』은 언어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나를 통해 언어를 확장하게 만든다. 새로운 단어를 외우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는 단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연습. 이 책은 그 출발점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쳤던 ‘보통의 단어’가, 내 삶의 가장 깊은 의미를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어의 힘은 결국 관계의 힘이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조용하고 따뜻하게 전한다. 단어 하나에도 마음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을, 그 마음이 또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단지 국어책이 아니라, 나를 더 잘 말하게 하고,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아주 작은 문장 모음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