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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 따위는 없다 - 교양으로서의 동양철학
신메이 P 지음, 김은진 옮김 / 나나문고 / 2025년 7월
평점 :
#도서협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나 자신 따위는 없다
📗 신메이 P
📙 나나문고

요즘 ‘자기다움’이 유행이다.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SNS에서도, 강연에서도, 책 속에서도 반복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나’를 찾으려 할수록 더 지치고 허무해진다. 도대체 ‘나’라는 건 실체가 있기나 한 걸까?

어떤 정체성으로 나를 규정할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사회적 역할, 이름표, 이력서 속 스펙들이 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집착한다. 실패가 곧 정체성의 붕괴로 이어지고, 일상의 모든 순간이 허무함으로 채워지는 그런 날들이 있다.

『나 자신 따위는 없다』는 철학서이지만 자기고백록처럼 읽힌다. 저자 신메이 P는 동경대 졸업, IT 대기업 입사, 개그맨 도전 등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인생의 바닥에서 무너진다. 무기력의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다 마주한 것은 서양철학이 아니라 동양철학이었다. 붓다의 무아, 용수의 공, 노자의 도, 신란의 타력 등, 집착할수록 괴로워지는 ‘나’라는 환상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간다.

이 책은 어떤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기면서도 허를 찌른다. “나 자신 따위는 없다”는 말은 자기를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도리어 ‘나’라는 개념이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동양철학의 오래된 명제를 일상의 언어로 보여준다.

책에는 일러스트와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지만, 그것이 철학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는다. 저자는 철학을 단순히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녹여낸다. 예를 들어 ‘공(空)’ 개념을 설명하면서, 단체 회식 자리에서 소외된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언어라는 마법, 자아라는 픽션을 해체하며 독자에게 묻는다. “정말 너는 있는가?”

이 책은 철학을 모르는 사람도 시작할 수 있는 친절한 길잡이다. 동시에 철학을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낯선 질문을 던진다. 철학이 삶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를 말로만이 아니라 체험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나는 없다’는 가장 현실적인 자기 구원의 문장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보다 ‘어떻게 살아갈까’를 묻는다. 실패했기에 철학이 읽혔고, 철학을 통해 실패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불 속에 파묻혀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손잡아주는 책이다. 어떤 책은 지식을 주고, 어떤 책은 숨 쉴 공간을 준다. 이 책은 후자다.

혹시 지금 ‘나’라는 존재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한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프레임이 필요하다. 철학은 무겁지 않아도 된다. 웃고 떠들다 보면 그 속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그게 동양철학의 방식이다. 허무에서 출발했지만, 이 책은 끝내 위로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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