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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평점 :
#도서협찬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 스물두 번째 레인
📗 카롤리네 발
📙 다산책방

가끔은 너무 벅차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은 날이 있다. 현실의 무게는 말없이 등을 짓누르고,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책임이 나를 가만히 짓눌러 온다. 누군가는 이런 순간을 그냥 “지친다”라고 말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삶의 전부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의 몫을 짊어져야 했던 누군가에게 “너 자신을 먼저 생각해”라는 말은 얼마나 허무하게 들릴까. 매일을 버티듯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꿈조차 사치로 느껴질 수 있다. 가족을 돌보며, 자기 인생은 미뤄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들춰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조용한 싸움은 분명 존재한다.

카롤리네 발의 『스물두 번째 레인』은 그런 조용한 싸움을 살아가는 소녀 틸다의 이야기다. 수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스물두 바퀴를 돌며 자신의 감정을 다잡는 틸다는, 알코올 중독 엄마와 어린 여동생 이다를 돌보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베를린 박사과정이라는 커다란 선택지가 주어진다. 틸다는 갈등하고 망설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씩,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이 소설은 “도망”이 아니라 “숨”을 선택하는 법을 말해준다. 끝없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리듬으로 균형을 맞춰가는 방식이다. 틸다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감정과 삶을 통제하고, 수영이라는 반복을 통해 안정을 찾아간다. 결국 그녀는 남이 정해주는 방향이 아닌, 자기만의 이유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작가는 틸다의 이야기를 과잉된 감정이나 극적인 서사 없이 풀어낸다. 오히려 담담한 문장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틸다의 변화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우리가 무뎌진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성장과 회복은 결국 일상의 미세한 균열 속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단지 누군가의 성장기가 아니다. 감정을 애써 숨기며 조용히 견디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속삭여주는 책이다. 특히 마음이 조금 지쳐 있는 요즘, 이 소설은 우리가 잊고 있던 용기와 조용한 희망을 다시 건네준다.

책을 덮고 나면 이런 말이 떠오른다. “괜찮아,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눈에 띄는 변화나 성취가 없어도,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용기라는 것을 틸다가 보여준다. 스물두 바퀴를 돌며 그녀가 찾은 평온처럼,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숨을 쉴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지금, 당신의 하루도 무거운가? 그런 당신에게 이 책은, 아주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가 될 겁니다.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틸다의 레인을 따라 함께 헤엄쳐보는 건 어떨까?
이키다 @ekida_library
다산북스 출판사 @dasa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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